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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어떤 것으로 할까,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무엇이 될지 우린 모른다. 아직 마지막 그 순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마지막 식사를 위하여, 좀더 편안하고 아름다운 ’맛의 기억’ 에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요리사 루프레히트의 이야기와 호스피스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작년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아버지가 마지막 식사로 하신 흰죽을 발인을 끝내고 돌아와서 엄마 몰래 얼른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것을 보시고 우실까봐 버리며 실은 내가 울었다. 폐암판정을 받으시고 지난 여름에도 일주일을 나와 함께 병원에 계셨던 아버지, 그리고 올 추석명절 후에도 나와 함께 일주일을 했다.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이 될 듯 하여 날마다 엄마와 함께 먹을 밥을 해서 병원으로 날랐던 난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가 심심하실까봐 군것질 거리도 함께 사다 드리곤 했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는 과자라고는 잘 드시지 않으셨는데 정말 아프시고 입맛이 바뀌신 것인지 과자를 너무도 잘 드셨다. 맛있다며 새우깡 한봉지를 혼자서 다 드시기도 하셨지만 다른 과자도 물로 잘 드셨다. 그 아픈 기억에 좀더 잘해드리지 못함이 이 글을 읽으며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자신이 큰 병에 걸려 마지막을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울아버지 또한 당신이 마지막이 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렵고 무서워 하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편안하게 받아 들인듯 하셨는데 아버지의 상황을 보아서인지 그들의 호스피스에서 함께 한 이들의 맘을 이해할 듯 했다. 환자도 물론 두렵고 불안하지만 옆에서 함께 하는 가족 또한 그 맘은 똑같다. 어찌보면 다른 사고로 인하여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보다 선택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주변을 정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고통이란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 고통을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줄을 놓기 보다는 어쩌면 반대로 ’살고 싶다’ 는 욕망으로 변한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하지? 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에요. 정말로 진심에서 하는 말이에요. 적절한 질문은 ’나라고 그런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 있어?’ 하는 것이죠’ 구드룬 피셔의 말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에 나를 포함한 누구나 걸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다른 이보다 편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타나는 듯 하다.
큰 병에 걸리고 나면 음식이 ’맛’ 조차 잃어버린다. 볼때마다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밥을 도통 잘 못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우린 무엇이든 아버지의 입맛을 돌려 놓기 위하여,아니 병을 좀더 지체시키기 위하여 병에 좋다는 것들을 아버지가 드시게 했다. 그렇게 한 덕분인지 얼마간 정말 잘 드셨다. 당신도 많이 나아진다고 생각하셨고 주위분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먹는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먹을 수 있는 한, 숨을 쉬고 자신을 느낄 수 있죠. 먹는 것은 우리 실존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예요. 그것은 이 호스피스에서 빠르고 놀랍게 작동해요.’ 음식을 먹지 못하면 그 냄새만으로도 흡족해 하며 추억에 젖고 좀더 여유로워졌던 사람들. ’나는 몸에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고자 했어요. 하지만 손님들은 평소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했어요. 그것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돼지고기 안심이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걸 요리하는게 나았어요.’ 병에 좋고 몸에 좋은 것보다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고자 했던 루프레히트,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지금의 한 끼 식사가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어요. 이 음식을 다시 맛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음식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요.’ 이승에서 마지막 식사게 늘 될 수도 있기에 음료하나에도 잼 하나에도 그들이 집에서 먹었던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늘 노력했던 요리사, 그가 환자들과 그토록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식당에서 풍부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아마 처음부터 호스피스에서 요리사로 근무를 했다면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요리사로 기억되는 요리사로 그들의 마음을 읽는 요리사가 될 수 있었을까.
음식은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냄새도 그 음식과 함께 했던 추억도 사람도 중요함을 그는 환자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과거에 음식을 함께 하며 나누었던 추억이며 모든 것들을 기억해주고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해 주어 한끼의 식사라도 편안하게, 아니 한숟갈이라도 편안하게 먹게 해 주었던 그야말로 환자들에겐 ’천사’ 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보호자들은 환자에게 한숟갈이라도 한모금이라도 생에 도움이 되게 더 먹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몸에서 거부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강제적으로 좀더 먹기를 권유하는데 나 또한 아버지에게 그랬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후회되기도 한다. 좀더 편안하게 드시거나 좋아하는 것을 해드리지 못함이 글 구석구석에서 아쉬움으로 눈물짓게 만든다.
’당신은 오늘 내게 크나큰 선물을 해줬어요.’
맛있는 음식으로 때론 음식이 아니면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음악으로 선물을 해 주었던 그가 환자들에게 받는 찬사는 늘 가슴 뭉클하게 한다. 처음엔 환자를 안아도 될까 하고 망설였던 그가 서슴없이 그들을 안아주고 그들의 마음을 읽으며 그들 곁에서 손과 발이 되듯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을 녹여 주었다는 것은 환자뿐만이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 그들이 과거에 먹었던 것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기 위하여 무던히 애썼던 그,’나는 집에서 만든 잼을 먹고 자랐어요. 어릴 적 늦은 여름에 숲을 누비며 열매를 모았죠. 산딸기, 검은 딸기, 블루베리..... 쉽진 않았어요. 손에 가시가 찔렸죠. 그렇게 수확한 열매를 가지고 집에 들아올 때면 얼마나 뿌듯하던지, 뒤돌아 보니 고생도 재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자신의 추억에 비추어 환자 또한 똑같은 과거의 음식을 좋아할 것이라 믿었던 그의 믿음만큼 신선한 잼과 음식들은 그의 마음까지 녹여 주었다. 자신에게 온 크나큰 병을 받아 들이지 못하던 사람들이 점점 루프레히트의 요리에 마음을 열고 죽음을 받아 들이지는 자세가 좀더 여유롭게 편안해졌다는 것이 그런 선택을 받은 이들 또한 행운이 아니었나 한다. 환자를 옆에서 간호하다보면 간호하는 이들이 먼저 지치게 되는데 늘 같은 마음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냈던 요리사 루프레히트,그가 존경스럽다. 그와 환자들이 하나로 조화롭게 어울려 가는 이야기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갔던 이들이 그의 맛있는 음식으로 혹은 음식냄새로 인하여 자신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마지막을 받아 들이며 좀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아리다. 다른 이야기보다 ’죽음’ 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 경건하고 가슴 뭉클하게 읽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경험했기에 더 가깝게 받아 들였던 이야기들, 읽는 동안 아버지가 생각나 머리가 무겁고 너무 울어 눈꺼풀이 무거웠다. 먼저 가신 모든 영혼들이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