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리산,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지며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곳이 지리산이다. 요즘은 지리산 둘레길로 한차례 몸살을 앓고 좀더 세상과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사상의 흑과 백이 갈렸던 곳이기도 하며 그곳에서 산다는 것은 현대문명화된 생활에 길들여지고 타의에 의해 길들여진 것에서 벗어나 자생력이 강한 자연친화력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욕심' 을 버려야 비로소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곳인듯 하다. 다른 산들도 그렇지만 어느 계절에 그곳에 가도 정말 어머니의 품처럼 넓고 포용력이 강해 늘 그곳에 안기고 싶게 만드는 곳이 또한 지리산이다. 그곳에 벚꽃이 만개하고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다고 하면 몸살을 앓듯 싱숭생숭하여 한 차례 하얗게 벚꽃으로 피어난 섬진강변을 달려야만 몸살이 가라앉듯 하는 지리산 소식은 그렇게 지난 봄에 그곳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하얗게 피어난 매화는 섬진강에 분분이 떨어져 지고 몽실몽실 피어난 하얀 벚꽃들 사이로 가슴을 열어 제치고 맘껏 달려 노란 산수유까지 담았던 가슴에 노고단의 안개까지 품고 오게 만들었다. 그 정상에서의 시원함이란 정말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한그루 나무가 된다 하여도 서럽지 않을 정도로 너무 좋았던 나날이었다.

그런 곳에 꽁지 작가의 친구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욕심이란 욕심은 모두 비워낸 그들,버들치 시인과 낙시인과 그의 아내 고알피엠 여사와 최도사등 문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들만의 여유와 행복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지리산인생스토리가 공작가의 입담에 고스란히 녹아나 녹차처럼 맑께 우려나고 섬진강 민물매운탕처럼 칼칼하고 맛깔스럽게 담겨져 있으니 때론 웃으면서 때론 '아하~' 공감을 날리면서 재밌고 칼칼하게 읽을 수 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다 그렇듯 '그들만의 세상' 이 담겨지긴 했지만 인간사가 별거 아니라는 듯 그속에서 들여다보면 희로애락 모두가 지리산 골까기를 흘러 내리는 시원한 물줄기처럼 어우러져 있다. 이 책을 읽기전에 '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을 읽어서일까 두 책을 나도 모르게 맘속에서 비교하게 되었다. 수도원기행은 십여년전에 쓰여진 책으로 유럽의 폐쇄된 수도원을 기행하고 쓴 이야기라 조금은 살짝 무언가로 덮여 있는 느낌이 든다면 이 책에서는 모든 것이 '열려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음담패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런 우리네 속까지 모두 드러내 놓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오히려 더 작가와 그의 친구들인 그들만의 세상사가 더 인간적이고 칼칼하지 않았나싶다. 

산다는 것 별거 아니란 듯, 연세 50만원에 지리산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와 행복을 맘끽하며 사는 그들만의 낙척전인 여유는 우리가 돈주고도 못사는 별천지 다방의 달달한 꿀피의 맛처럼 달디 달게 가슴에 들어와 별이 되어 박힌다. '내가 왜 시를 못 쓰는 줄 아니? 내 시의 바탕이 슬픔인데 여기 지리산에 온 이후로 그게 자꾸 없어져. 그래서 시가 안 되는 거야. 사람들은 말하지. 그럼 기쁜 이야기를 써라.행복하다고 말이야. 그런데 기쁘고 행복한데 어떤 놈이 시를 쓰겠냐고.' 맞는 말이다. 기쁘고 행복한데 누가 시를 쓰고 누가 시를 읽겠는가. 나부터 시라고 하는 글을 쓸때는 내 마음 한구석이 '슬픔' 으로 가득차 있을 때 더 잘 써지고 더 좋은 표현들이 나왔다. 내가 기쁠때는 글을 많이 쓰지 못한 것 같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고 기쁜데 어찌 좋은 시가 써지랴. 버시인의 말처럼 슬프고 내 한구석이 비었다고 생각될 때 시도 나오고 좀더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이 혼자 외로움을 삭이며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점점 하나가 여럿이 되어 가고 있다. 지리산은 그들을 모두 하나로 품어 가고 있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끼리 없는 사람끼리 서로 의지를 하며 외롭지 않고 많은 것을 가진사람들로 거듭난 것이다.

지리산의 품에 안겨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어느 누구의 이야기라도 이상향의 이야기처럼 섬진강 물 위에 떨어진 매화꽃잎처럼 아름답게 들린다. 졸졸 작가가 풀어내는 글솜씨 말솜씨도 한 몫을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네로서는 간단하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큰 결심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삶이기에 더욱 값지게 들린다. 그들의 삶은 시인의 눈에 비치면 그대로 삶이 시가 되고 사진작가의 눈에 비치면 한 폭의 사진이 되고 자연 또한 음식이 되어 재탄생 된다. 한 낱 지리산의 일개 돌덩이처럼 굴러 다니던 그들이 뭉친 '섬진강 동네밴드' 이야기와 '지리산 학교' 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재밌다. 시를 창작하는 것보다 서로 즐겨는 시간이 더 많은 그들에게선 진정한 삶의 글이 나올 듯하다. 다재다능하게 여러 악기를 다루는 버시인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모두가 모여 하나가 되어 새로운 '하모니' 가 되어 지리산을 더 뜻 깊게 알릴 수 있음이 좋은 듯 하다. 그저 삶이 유희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그곳이 이상향이 아닐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지리산이 품은 알토란 같은 그런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도 그곳 '지리산'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이 아니고 다른 곳이었다면 그곳엣 하나의 소리가 되어 흘러 내릴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품어주고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곳이 바로 지리산인듯 하다.

'이곳에 온 지 10년, 무엇이 변했는지 한번 돌아보았죠..... 시간,시간이었어요. 서울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에요. 이제 제일 큰 변화더라고요. 조각을 하고 싶으면 하고, 팥빙수를 팔고 싶으면 팔고 가게를 닥고 몇개월씩 순례를 떠나고 싶으면 떠나죠. 지리산은 참 이상해요. 누가 와도 어울려요. 조선백자처럼요. 조선백자는 베르사유 콘솔에 올려 놓아도 시골집 뒤주에 놔둬도 어울리잖아요. 중국의 자기도 일본의 도자들도 그렇지는 못하죠. 지리산은 백자처럼 누구라도 품는 그런 산인 것 같아요.'

어떤 이가 무슨 이유로 그곳에 왔던 그의 과거를 들추지 않고 그곳에 한자리를 내어 주고 뿌리를 내리고 살게 만들어 주며 품어 주는 곳이 지리산인듯 하다. 위 글에서 얼마나 잘 표현해 놓았는지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곳에 나 또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어지게 만든다. 지난 봄에 그곳에 여행을 가서는 우리도 언젠가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자 라는 막연한 말을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그곳에 가면 누구라도 반하게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품처럼 보듬어 주고 그 속에서 사는 이들끼리 모두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가며 살게 되니 그곳에서 피어난 매화꽃처럼 혹은 하얗게 몽실몽실 피어난 십리벚꽃과 같은 이야기들의 뒷세상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50만원만 있으면 될 거야. 그러면 1년치 집세를 내서 집을 얻고 그리고 젓가락이 있으면 돼...... 술자리의 시작은 성서구절처럼 이약하다. '안주 고르시죠. 여기 메뉴 있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끝은 창대해서 이제 주인도 취하고 객도 취하고 안주는 계산도 없이 넘치고 기타는 울리고 노랫소리는 드높아 밤을 지새우게 된다. 나는 그 모퉁이에 앉아 누군가 해 놓은 낙서를 읽었다.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기 싫어 나는 도시를 떠났다.' 결코 도시에서는 얻지 못하는 것들이 그곳엔 있다. 지리산에. 지리산 그곳에서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세상사 욕심이란 욕심은 다 지나는 바람에 버리듯 자신을 비워 버리고 지리산행복학교에 한자리 내어 정착하고 싶게 만드는 꾸미지 않은 여유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따듯한 이야기에 가슴이 훈훈하다. 욕심은 끝이 없지만 그 욕심을 버리면 행복은 그냥 따라오는 원 플러스 원 제품처럼 '지리산 행복학교' 에 녹아 있다. 나이가 좀더 든다면 나도 전원생활을 해 볼까 하는 로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겉으로 들어나는 부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누구보다 마음은 부자인 것이 새삼 부러우면서도 스멀스멀 가슴에 밀물처럼 밀려든다. 누군가의 삶을 살짝 엿보면서 이런 행복을 맛본다는 것은 내 삶이 더 향기로워질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다시금 그곳을 찾는다면 길가다가 잔치국수 한 대접 혹은 칡즙 한 컵 행복하게 마셔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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