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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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서 아홉이란 숫자는 참 애매하다. 무언가 꽉 차는 듯한 완성이 되는듯 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숫자처럼 한 살 한 살 더해가다보면 아홉이란 숫자에서 한참 헤매이게 된다. 스물아홉이 삼십대를 위한 준비처럼 머뭇머뭇하게 했다면 서른아홉 또한 마흔을 준비하는, 아니 이제 중년이란 나이로 접어든다는 생각에 괜히 우울하고 무언가를 더 늦기전에 시작하기 위하여 마음만 분주했던 나이였다. 그렇다면 마흔아홉이란 숫자는 그 감이 또 다를듯 하다. 쉰이라는 인생의 중턱에 서서 또 다른 고개를 넘어가는 기분은 작가가 글 속에서도 나타냈듯이 어느 작가는 절필선언을 하고 오지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나이란 것이 참 묘한 감정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그런 힘든 고개를 한 두번 넘기도 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작가의 나이 마흔 아홉, 쉰으로 향하는 고개를 넘기 위한 '뒤돌아 봄'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작가의 책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를 못했다. 그저 눈구경으로 만족하며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다른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어쩜 다행이라 생각을 했다.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으면 소설과 소설사이에서 놓쳤던 '틈' 을 읽는 듯 하여 너무 좋다. 사소하면서도 그들이 글쓰기를 위하여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고 그들 또한 평범한 이웃집 누구처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나면 그의 작품에 다가가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그런면에서 이 책 속의 그의 이야기들은 ' 인간적인 윤대녕고 작가로서의 윤대녕' 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거기에 부록처럼 그의 '독서일기' 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별미인듯 하다.

그의 고향은 내가 잘 아는 곳이라 정말 이웃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의 어머니의 고향 또한 내 어머니의 고향과 같다. 삽다리. 그래서일까 그의 이야기들은 가까우면서도 어쩌면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잊고 있던 유년의 첫사랑을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핏속에 흐르는 역마살 때문일까 작가로 들어서기 위한 준비의 길처럼 그가 앓는 몸살이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과 빨리 만나 어떻게 작품으로 해소가 되었는지 느끼고 싶어졌다. 지금까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였다면 이제부터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은 그, '이제부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고 싶다. 자기 자리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세월이 가져다주는 변화를 조용히 받아 들이며 가끔은 누군가 찾아와 기대고 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겉모습은 어쩔 수 없이 변하더라도 속마음은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그루 나무처럼 말이다.' 지금까지의 방황은 어쩌면 한 그루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위한 자리를 보러 다닌듯 하다. 자신이 뿌리를 내릴 튼튼하고 흔들림이 없는 자리를 잡아 그곳에서 한 그루 나무로 뿌리를 내리기 위한 긴 터널을 지나 온 그의 지난날을 뒤돌아 본 시간속에는 누구보다 두드러진 여인들이 있다. 어머니와 아내.

어머니는 달성 서徐씨이며 이름은 외자로 란蘭이다.나의 필명이 서란인데 이 무슨 우연일까.그부분을 읽다가 깜짝 놀랬다. 그는 어머니의 두부 두루치기에서 잊지 못하는 어머니만의 맛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어머니가 만드는 두부 두루치기는 두부를 통째로 냄비에 물을 부어 따로 익힌 다음, 크게크게 썰어 접시에 올려놓고 나중에 양념장을 끼얹는다. 그리고 약간 덜 익힌 대파를 역시 크게크게 썰어 함께 올려놓으면 두부의 흰색과 대파의 파란색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매우 깔끔하고 맛깔스러워 보인다. 또 고추장 대신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를 많이 써서 탁한 느낌이 없고 맵되 입 안에 남는 뒷맛이 개운하다.' 그에게 어머니는 두부 두루치기처럼 잊지 못하는 맛과 색깔로 남아 있다. '특별하지 않기에 나는 오히려 어머니를 더욱 가슴 깊이 사모하고 있다. 그 평범한 속에 삶의 온갖 섭리가 깃들어 있는것이다.' 남과 달라서가 아닌 평범했기에 더 오롯이 가슴에 남아 있는 어머니, 역마살과 같은 여러번의 이사와 아들의 방황에도 늘 흔들림이 없으셨던 분, 그런 어머니를 기억하며 어머니를 추억하며 쓴 '달력과 어머니' 에서도 어머니의 성격이 들어나 있지만 어머니의 정 또한 듬뿍 담겨 있다. 그런 어머니의 품이 있었기에 그가 지금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가 글 속에 담아낸 아내 또한 그의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엔 충분하다. 한달여동안 글쓰기를 마치고 돌아오면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 어제 나갔다 돌아온듯 냉이향이 진한 된장찌개로 맞이해 주는 작가의 아내, 자신은 글쓰기를 위하여 자신의 숨겨진 장소를 찾아 여행을 하지만 아내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속을 잘못 드려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말과 자신의 등단 때 사용했던 낡은 타자기를 버리지 못하고 서재에 보관하기도 하고 십여년을 쓴 낡은 노트북을 간직하자고 하는 아내,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 글을 쓰거나 혹은 글쓰기 위한 준비를 하고 돌아오면 늘 따듯한 보금자리와 함께 자신을 변함없이 기다려주는 아내가 있기에 그의 글쓰기 방랑은 이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가 말했듯이 어머니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기다림' 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날 그가 있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이 무엇보다도 더 힘겹다는 것을 아는 그가 이젠 어쩌면 기다림을 종식시키지는 않을까.

'새삼스럽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 대해서. 한 순간 한 순간이 마치 축복처럼 다가왔다가 새벽의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감을 생각해본다.' '나는 대용량 쓰레기봉툴르 가져와 종이상자 안에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버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가난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비밀이 없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다' 고 하지 않았던가.'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게 된 마흔아홉, 지금까지는 추억이나 그외 자신의 모든 것을 쌓아 두기만 하였는데 비우고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하여 그동안 꼭꼭 담아 두었던 추억을 버리는 것을 읽으며 나 또한 버리지 못하고 쟁여두기를 좋아하는데 쓰레기통을 잘 비울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내 나이 몇 년 후에 한번 추억을 비우듯 버릴것들을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봤다. '오늘 버려진 것들이 앞으로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라는 그의 인용문처럼 삶은 가끔 비우는 철학이 있어야 발전한다는 것을 느껴본다. 

작가의 에세이는 그 삶은 송두리째 들여다 보는 것 같아 거리감이 좁혀져 좋다. 소설로만 접하다 보면 무언가 딱딱하고 겉모습으로 굳어지는데 단단한 것을 이런 류의 책을 읽다보면 그를 말랑말랑하게 해 준다. 좀더 작가 속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마련하게 된다. 뒤돌아보면 삶에서 극적이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으랴. 기쁘건 슬프건 모두가 극적인 순간들이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 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처음 마음이 흔들렸던 첫사랑의 여인도 자신의 터전이 되었던 어머니도 늘 기다림의 끝에 있는 아내도 모두가 삶의 순간들이며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 속엔 우연히 만난 친구도 있고 지인도 있고 모든 인연들과 순간들이 모여 지금을 이루고 있다는 행복한 뒤돌아봄이 공감이 간다.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소설도 좋지만 작가의 에세이가 느낌과 틈을 접할 수 있어 더 좋다.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숨겨 놓았던 순수한 부분을 훔쳐 본듯 하여 뿌듯하다. 그의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 보았으니 이젠 그의 소설들을 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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