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이성부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에서 작가가 지리산 종주시인인 이성부 시인과 함께 하는 부분이 나온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지리산을 오르고 그가 토해낸 <지리산>이란 시집에 이어 이 책은 '내가 걷는 백두대간'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연작시를 쓴다는 것은 어찌보면 정말 힘들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 또한 힘들지만 같은 주제를 가지고 연작시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산행경험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역사와 자연등이 스스럼없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산' 을 만들어 낸 듯 하다. 

시인의 말 중에 ' 나는 의식적인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실행에 옮기면서 이 산행 체험과 대간 주변의 역사 문화 사람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정리해 보겠다는 꿈에 사로잡혔다.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지리산에서부터 많은 시가 되어 나타났다.' 산행 경험이 시로 승화되어 나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산고를 거쳤을까. 어느 시인은 생에 단 한편의 시만 남겼다는 분도 있고 다작을 한 시인도 있지만 산행은 흔히 에세이나 여행서로 많이 다루어졌지 '연작시' 로 다루어진것은 흔하지 않은듯 한데 그 또한 詩로 읽는 맛이 괜찮다. 어쩌면 시가 더 솔직하게 맘을 표현해내지 않아 싶다.

'퇴계가 <유소백산록>에서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 라고 한 것은, 공부하는 과정을 산행의 과정에 빗대어 한 말이기도 하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나 또한 산행을 해보지도 잘하지도 못했지만 시작을 해 보았다. 시작이 우선 반은 산을 오른듯 하여 처음엔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게 되었는데 점점 그 길은 늘어나게 되었고 정상까지 가게 되었지만 처음엔 정말 무언가 꽉 막혀 있던 마음이 산행후엔 모든것이 후련하게 씻겨 내려간듯한 느낌을 받은 경험이 많아 산은 내 동경의 대상이며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 나는 산에 오를 때, '왜 내가 산에 오르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 내가 시를 쓸 때마다 '왜 쓰는가' 라고 묻지 않는것과 같다. 이 산에 오르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렵게 올라가는 과정이 좋고, 이것들이 되풀이 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의 연작시 중에 '산을 배우면서부터' 의 일부분을 옮겨 보면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느껴질 대는 이미/ 그것들 저만치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산과 내가 한몸이 되어/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 잊어버렸을 때는/ 머지않아 이것들이 가까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집과 산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슬픔과 외로움도 산속에서는/ 저희들끼리 사이 좋게 잠들어 있음을 보았다/ ' 그의 시는 읽으면 그냥 산행을 느낄 수 있다. 산에서 흔하게 만나는 조릿대도 그의 시어가 되어 동행을 하던 친구가 늦어져 그를 기다리면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여유 또한 시의 일부가 된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왜 시를 쓰는가' '어떻게 시를 쓰는가' 가 아닌 '그냥 모두가 시' 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에게 산행은 시의 일부이기도 하다.

'거창 땅을 내려다보다' 에서는 우리의 슬픈 역사 또한 시가 된다. '우리나라 산골 마을 어디에도/ 육이오 때 숨져간 억울한 혼령들 없을까마는/ 이 산 아래 거창 땅은/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누가 들어도 노여운 역사 하나를/ 더 가지고 있어 내 발걸음 잠시 멈추어야 한다/...... 어른 남자 뼈 일백아홉 명/ 어른 여자 뼈 일백팔십삼 명/ 어린것들 뼈 이백이십오 명/ 저 눈망울 선한 아기들도 빨갱이라고?/ 이러고도 우리나라 여기까지 왔으니/ 참 요행타!/'  아픈 역사가 그대로 시속에 녹아 들어 구천을 떠도는 그 영혼들과 함께 하고 있는 듯 하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라는 시는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살아갈수록 내가 작아져서/ 내 눈도 작은 것으로만 꽉 차기 때문이다/ 먼데서 보면 크높은 산줄기의 일렁임이/ 나를 부르는 은근한 손짓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봉우리 제 모습을 감춘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수리에 서는데/ 아니다 저어기 더 더 높은 산 하나 버티고 있다/ 이렇게 오르는 길 몇번이나 속았는지/ 작은 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가두고/ 그때마다 나는 옥죄어 눈 바로 뜨지 못한다/ 사람도 산속에서는 미울이나 다름없으므로/ 또 한번 작은 산이 백화산 가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것도 하나의 질서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는 다산 정약용이 일곱살 때 지었다는 한시 '소산폐대한 원근지부동' 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다산은 일곱살때 깨달은 것을 시인은 예순이 넘어서 깨달았다며 쓴 시인데 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인생의 굴곡및 삶의 진리를 보는 듯 하여 욕심 또한 부질없음을 느낀다. 전작인 <지리산> 또한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그가 시로 표현한 지리산은 또 어떤 맛일지 사뭇 기대가 된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을 읽고 바로 읽어서인가 '지리산' 으로 아니 가을 속으로 여행이나 산행을 가고 싶어졌다. 산속에 있음 무념무상으로 비운 후 자연으로 모두가 채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오로지 '자연' 이 내 몸을 다 지배하는 그 순간을 연작시로 만난듯 하다. 산행을 가며 이 책 한 권 들고 가서 다리쉼을 하면서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