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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수워져.'
작가의 글은 쉽게 친해지기가 어렵다. 그녀가 풀어내는 진실이 불편해서도 이지만 그녀의 표현방식이 글을 읽고 있음 왠지 공감각이 무시되면서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전작 <저지대>를 읽으며 느낀 느낌이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응축된 시적 표현' 이라기 보다는 도마위에서 잘게 잘게 난도질 당한 짤막한 표현속에 독재치하에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진실' 이 숨김없이 드러나 더욱 섬짓하다.
이 글은 차우셰스쿠의 독재치하에서 세상을 떠난 두 친구 '롤프 보세르트' 와 '롤란트 키르시' 를 위해서 쓴 작품이라고 했듯이 이 작품속에서 그녀의 친구인 롤라의 자살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학기숙사 방을 '네모' 로 표현해 놓았듯이 그들은 억압과 감시 불안속에 생활을 해야만 했다. 체육교사에게 강간을 당한 후 그녀에게 일기를 남겨 놓고 그녀의 벽장에서 내 허리띠로 목을 메어 자살을 한 롤라, 대학에 다니는 동안 러시아어를 전공하려 했던 그녀,' 뭔가를 소원한다는 게 어렵지 목표는 훨씬 쉽다.' 라고 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마음짐승이란 할머니의 자장가를 빌어 풀어내진다. 롤라가 죽은 후 알게 된 세 명의 남자 에드가와 쿠르트 그리고 게오르크와 '나' 가 겪은 루마니아 독재치하의 실상은 숨막히듯 갑갑하다. '아직도 그녀는 루마니아에서의 삶에서 어떤 것이 연출된 것이고, 어떤 것이 우연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라는 말처럼 연출된 것인지 아님 우연인지 모르는 억압된 생활속에서 그들은 독일로 망명을 하게 된다.
억압된 '네모', 비상구가 없는 네모처럼 그들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는 트렁크마져 그들의 감시대상이 된다. 롤라가 남긴 일기장을 트렁크에 넣어 둔 후 이틀뒤에 없어진 것을 알게 되면서 트렁크 속 마져 안전하지 않음을 알고 철저하게 자신의 보호망을 만드는 그녀, 세 명의 남자친구와 함께 여름별장에서 그들이 읽는거와는 차원이 다른 지식과 접하며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그마져도 너무도 벽이 높다. 독일로 망명을 한다고 해도 그들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개 같이 따라다니는 경감 프옐레, 그를 견뎌내지 못하고 친구들이 하나 둘 시체로 발견된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는지 죽음이 강요되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런 억압된 현실이 너무도 갑갑하다.
'오늘도 실컷 뛰어놀았으니, 이제 네 마음짐승을 쉬게 하려무나, 노래가 끝나면 할머니는 아이가 깊이 잠들었다고 믿는다. 할머니는 말한다.' '말을 함녀서 나는 혓바닥에 뭔가 버찌 씨처럼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진실은 내가 숫자를 센 사람들과 내 뺨 위의 손가락을 기다렸다.' '책이 오는 그곳, 독일에서는 모두 생각을 한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종이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고 버릇처럼 손 냄새를 맡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사는 나라의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처럼 손이 까매지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들이 창틀에 있던 화분에서 꽃을 뽑아내고 흙을 손으로 부쉈다. 에드가의 아버지가 말했다. 흙이 싱크대 위로 떨어졌지. 그들의 손라가 사이에 실뿌리가 매달렸다. 대머리가 오래책을 한 자 한 자 읽었다. 브라질식 간 요리, 닭 간에 밀가루 입히기. 에드가의 아머니가 번역을 해주어야 했다. 당신들은 소 눈알 두개가 둥둥 뜬 수프 맛을 보게 될 거야, 대머리가 말했다.' 삶에 자유란 없다. 창가의 작은 화분마져 뿌리 채 뽑혀 그들의 손아귀에서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무언가 숨겨진 것은 아닌지. 그런 속에서 생각마져 박탈당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독일로 망명을 해도 감시와 억압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다. ' 나는 그 나라를 떠났다. 나는 독일에 있었고 경감 프옐레는 멀리서 전화와 편지로 목숨을 위협했다. 편지 윗부분에는 두 개의 손도끼가 교차되어 있었다. 편지마다 누구 것인지 까만 머리카락 한 올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생각난 영화가 있다 <타인의 삶> 누군가 내 삶을 엿보고 감시하면서 꼬투리를 잡으려 하고 있다면 그 삶이 진실에 오롯이 다가갈 수 있을까. 연극배우처럼 각본대로 움직이듯 하면서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녀의 글에서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날것의 비린내가 확 인다. 시궁창을 뒤지고 다니는 개처럼 그들의 뒤를 바짝 쫓고 다니는 경감 프옐레,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은 하나 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그녀는 그런 슬픈 진실을 고발하듯 긴 글이 아닌 짤은 시적 표현으로 더욱 '진실' 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담아 두면 불편하고 뱉어내면 정말 웃으어지는 진실, 그녀 안에서 할머니의 자장가처럼 이젠 편히 잠을 자고 있을까 진실들이.
차우셰스쿠의 독재치하인 1970,80년대의 숨막히는 진실, 우리 또한 그 시기에 비슷한 억압의 시기를 거쳤기에 불편함은 읽는 순간 쉽게 녹아 내린다. '우리를 끝내 구해준 것은 인내였다. 그것만큼은 우리를 놓아 버려선 안 되었다. 찢기더라도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줘야 했다.' 역사의 진실을 쓰는 작가들을 보면 참 대단한 듯 하다. 사실그대로의 날것인 불편한 진실을 양념을 뿌리지 않고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며 독자에게 내어 놓아 맛을 보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면도 있다. 모두가 똑같은 맛을 알아차리는 것도 아니고 평가는 주관적이라 가지각색이겠지만 그녀가 토해내는 진실은 불편하면서도 자꾸만 손이 가는 무언가 묘한 맛이 숨어 있는 '날것 그 자체' 이다. 할머니의 자장가처럼 이제 마음짐승을 쉬게 할 때인듯 하다. 그녀도 나도 그리고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