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품절


’시간이 흐르면서 민화는 문자 그대로 온 백성의 그림이 되었다.’
민화, 조선 백성의 그림이며 전문적인 화원의 그림이 아닌 아마츄어들이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더 정감이 가면서도 실생활 깊숙히 파고 들었던 그림들이 그림이상의 ’뜻’ 을 포함하고 있어 더 좋은 듯 하다. 민화를 예전에는 달력이나 그외 오일장날이면 장 한귀퉁이에서 숫자도를 그려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그때는 그림에 숨은 뜻을 잘 알지 못하여 그저 숫자를 이상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인가 보다는 신기함에 구경을 하기도 했는데 백성의 그림이어서인지 값어치가 그리 크진 않았다. 그려서 가져가는 사람들도 적었을뿐더러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마져도 지금은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우리 관심에서 벗어난 사이 맥이 끊긴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정말 똑같게 그려낸 그림처럼 내게 다가왔던 그림을 만난적이 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던 예전에 학원장님이 그린 카피한 ’민화’ 였지만 정말 세밀하면서도 똑같고 한점 가지고 싶던 그림이 있었다. 한참 그때엔 ’동양화’ 나 그외 서예에 빠져 있던 시기라 그런지 그런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적 미술시간에 모자이크나 그외 방학숙제를 하면 난 꼭 달력에 있는 ’민화’ 를 잘 그렸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림솜씨가 뛰어났던 것은 아니지만 숙제 후 결과도 좋았다. 늘 보아오던 편한 그림이라 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월속에 잊고 있던 민화를 이 책을 통하여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민화, 그 속에 숨은 깊은 뜻 찾기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한다 한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친정엄마의 혼수품에 보면 유독 '모란' 을 수 놓은 것들이 많았다. 베갯잇이며 이불 옷덮개 앞치마 수저집 골무등 수를 놓을 수 있는 부분엔 모란이 무척 많았다.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은 '부귀영화, 무병장수,과거급제및 성공, 다산' 등이 아니었나 싶다. 진시황제도 불로장생을 위하여 불로초를 찾기 위하여 그 많은 시간을 보내었듯이 백성들이야 어떠했을까. 장원급제를 뜻하는 '잉어', '희득연과' 까치가 연밥 위에 내려 앉아 연씨를 쪼아 먹고 그 옆에 갈대꽃을 첨가한 그림은 과거 시험에 잇달아 합격하라는 뜻이란다. 지금으로 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로 포크나 화장지를 주는 것처럼 과거시험을 치룰 사람에게 줄 그림으로는 딱이었던 듯 하다.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모란과 고양이가 함께 잇으면 정오목단이라 하여 아침과 저녁에는 고양이 눈이 둥글지만 정오엔 가늘어지고 햇빛이 가장 왕성하며 모란이 활짝 피는 시각이기도 하여 모란처럼 부귀가 활짝 피어 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다. 수거모질은 돌 옆에 국화,호랑나비,고양이를 배치하여 장수를 의미했다고 한다. 다산을 의미하는 그림으로는 석류 그림 유개백자는 다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상이라 한다. 사물이나 꽃 동물 등으로 좋은 뜻을 표현한 그림인 민화는 그 그림을 걸어 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뜻에 가까이 근접한 생각을 가지게 하지 않았을까. 꿈을 이룬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였기에 백성들에게는 친숙한 그림이 되었을 것 같다.

민화가 단지 그림에 뜻을 감추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기도 한듯 하다. '18~19세기 조선은 얼핏 보면 평온했지만, 그 내면은 급류가 휘몰아치는 격동기였다. 지배계층은 지배계층대로, 피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대로 변화와 부침을 계속했다.' 정조시대에 문화부흥기를 거쳐 세계의 변화에 발맞추듯 그림속에 등장하는 꽃이나 사물도 변화를 거듭한듯 하다. 사실적이던 표현은 좀더 변형을 거쳐 이상향을 나타내거나 호랑이는 동물의 왕인 맹수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로 표현되어 좀더 거리감을 좁히기도 한 것처럼 인간과 가까운, 신이지만 인간의 생활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표현된 그림들을 보면서 그들이 표현한 '해학과 웃음' 을 본다. 그 그림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리이다. 어찌보면 그 시대에는 그들이 '이단아' 처럼 보였겠지만 지금으로는 앞서가는 '선구자' 였던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선보이지 못한 '추상화' 를 우리 선조들은 해학과 웃음을 가미하고 깊은 뜻까지 넣어 우리가 간직한 '꿈' 을 실질적으로 표현해내지 않았나싶다. 그러면에서 보면 그들은 꿈을 그려주는 이상향의 작가들이었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의 표현이나 그림이 뒤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때 빛을 보지 못한 그림과 표현들이 지금시대에 컴퓨터를 만나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어쩌면 그림도 '우리것을 가장 잘 표현해 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화는 비유의 보고다. 은유와 직유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환유의 수사법을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 활용하여 울림을 극대화했다. 민화 제작에 관여한 이들은 분명 마술 같은 비유의 힘을 꿰뚫어보았음에 틀림없다.' 김홍도나 신윤복등 도화서의 화원의 그림들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그들의 그림이나 일대기는 소설속에서 다시 재탄생되어 우리를 즐겁게 하고 그 시대의 그림들에 다시금 관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돌팔이 그림쟁이도 많았을 것이며 그들에 의해 탄생한 그림인 민화도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시대가 그림을 원했고 시대에 맞는 그림을 그려냈던 수많은 아마츄어들의 그림들이 많다는 것은 그를 즐겼던 우리민족의 여유로움에 또한 촛점을 맞추고 싶다. 시와 그림 글씨를 즐겼고 그와 더불어 판소리를 즐겼던 우리민족의 '흥' 은 어느새 '빨리빨리' 라는 조급증에 밀려나 여유로움을 잃어 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그런 여유로움속에 간직되어 있던 문화의 우수성과 찬란함이 다시 빛을 발해보길 바라며 어느나라의 문화인지 모르는 상술보다는 시험때 '과거급제' 가 아닌 '수능대박' 을 기원하며 '꿈은 이루어진다' 는 뜻을 간직한 민화 한 장 선물하는 좋은 문화를 부활해보는 것은 어떤지 생각해보게 했다.
-그림의 저작권은 출판사나 작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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