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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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등단 40년의 노작가 박완서님의 에세이인 이 책을 읽노라니 읽은지 조금 지났지만 전작이라 할 수 있는 <호미>가 생각난다. 그 책은 작가님이 직접 화단에서 키운 봉숭아씨를 선물로 받은 것이 있는데 씨를 뿌리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간직을 하고 있다. <호미>에서도 보면 단독주택에 살면서 노년의 삶이 게을러지기 쉬운데 화단을 가꾸며 남보다 바지런하고 꽃을 피우는 식물사이에 나는 ’잡초’ 를 결코 용서를 못 하시듯 손수 화단에서 몇 시간씩 노동을 하시면서도 틈틈이 그 일상을 글로 담아 내어 읽는 맛과 작가이지만 노년의 삶을 좀더 깊숙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책에서도 화단을,마당을 가꾸시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을 한다. 먼저 단독주택을 선택하실 때, 지금은 갈 수 없는 개성에 있는 고향집 앞마당에 있던 ’살구나무’ 를 기억해 마당에 살구나무가 있는 집을 선택하신 것 하며 목련나무와의 긴긴 십여년의 싸움끝에 사람이 아닌 그 나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엔 남을 위하여 베어버린 아쉬움을 남긴 이야기가 서민적이면서도 어쩌면 노작가에게서 40여년 동안 쉼없이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왔던 것은 그런 일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환각의 나비> 를 읽었다. 단편들로 구성된 책은 ’여자의 삶,여자의 이야기’ 로 꾸며져 여자들이 품고 있는 깊고 깊은 동굴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찡한 여운도 남겨 주었다. 그 이야기들 또한 자신의 삶이 어느정도는 베어 있을 것이다. 6.25와 그 전쟁의 피해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어야 했던 전쟁세대이기에 작가의 책에는 상흔이 담겨진 이야기들이 빠짐없이 등장을 하면서 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어머니와 오빠에 대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어려움속에서도 소녀가장처럼 삶을 책임져야 했던 작가의 강단진 삶이 마당에 허투루 난 잡초하나 허락할 수 없는 부지런함과 자신만의 틀을 구축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또 작가의 산문집을 접하게 될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는 일상과 관련된 에세이와 책을 읽고 난 리뷰라고 할 수 없이 오솔길로 빠진 이야기지만 책에 관한 이야기와 그리고 작가의 인생에서 큰 획을 그은 ’인연’ 깊었던 ’박경리 선생님’ 과 ’김수환 추기경님’ 그리고 작가의 첫소설 <나목> 을 탄생하게 했던 ’박수근 화백’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꿈에 그리는 고향, 개풍
우리가 흔히 ’서울 가 본 사람보다 안가본 사람이 이긴다’ 라는 말이 있지만 어린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꿈 속 고향에 대한 작가의 향수는 노년의 삶까지 바꾸어 놓은 듯 하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고 명절이면 교통대란을 겪으면서도 귀소본능처럼 찾아가는 ’고향’ 은 어릴적 고향과는 다르다. 산천이 변화고 세월에 이기는 장사없듯이 어린시절 고향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그래도 그 고향을 찾아 우리는 긴긴 행렬을 이어간다. 하지만 작가의 고향은 분단이 아픔으로 인해 어린시절 추억으로만 고스란히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그곳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글 속에서 보여주는 고향에 대한 것들이 때 묻지 않아서 좋다. 그 고향이 초가지붕이던 살구나무에 살구꽃이 환하게 핀 풍경이든 아직 빛이 덜 바랜 고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듯 하다.

책들이 넘쳐나는 작가의 서가, 탐나다.
작가들은 책을 사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책들로 넘쳐날 듯 한데 그 또한 아닌가보다. 한달에 네댓권은 책을 구매를 하신다니 대단하시다. 일본여행을 가셔서도 당신의 책이 꽂혀 있는 곳 보다는 어려운 시절 자식들에게 손수 떠 입혀 주었던 손뜨개책이 놓인 곳이나 마당을 가꾸며 도움이 되는 원예책이라 하니 정말 대단하시다. ’ 나는 그 매장에서 읽던 뜨개질 책과 원예책을 샀다. 원예책은 우리 마당을 가꾸는 데 참고가 될까 해서이고, 뜨개질책은 다시 뜨개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정확성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서가에 읽기 위한 책 말고 때때로 꺼내보고 애무할 수 있는 책을 가까이 꽂아놓을 수 있는 것도 나의 은밀한 기쁨이다.’ 그 연세에도 책 욕심이 끊임이 없고 서가를 정리하여 아파트나 책이 필요한 성당이나 그외 시설에 보내시는 것을 보면 책은 혼자만이 아닌 여러사람과 나누었을 때 더 보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내책장이 넘쳐나기 시작하여 두권이나 그외 겹치는 책이나 내가 보지 않는 책은 주위 사람들에게 잘 나누어주게 되었다. 딸들은 학교에서 읽고 싶은 책을 학교도서관 보다는 엄마의 책장에서 가져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이 쌓이게 되겠지만 내 주위를 둘러보며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것을 배운다.

’소설을 재미로 읽지 공부하려고 읽지는 않으니까.’ - 책들의 오솔길
노작가의 책에 대한 이야기는 리뷰라기 보다는 책에 대한 것을 쓰면서 ’오솔길’ 로 빠진 이야기라고 하여 더 재밌다. ’책들의 오솔길’ 제목부터 참 근사하고 무언가 책에 대한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잃어버린 것들의 책’ 은 우리집에도 있지만 난 아직 읽지 않았는데 글을 읽다보니 얼른 읽고 싶어졌다. 리뷰를 이렇게 써다 재밌겠다는 생각도 가져보게 되었다. 꼭 책에 대한 감상문처럼 작성하기 보다는 내 재밌는 이야기를 써도 좋겠다는 것을 살짝 훔쳐본다. 책들의 오솔길에서는 내가 읽은 책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정민작가는 다른 책을 읽어 보았고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도 읽은 책이고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라는 가끔 꺼내 보는 시집이며 박경리의 유고시집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도 읽은 책이고 ’빈센트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 는 예전에 읽은 책이라 더 가깝게 오솔길을 느긋하게 걸어볼 수 있었던 것 같다.노작가님이 풀어내는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하니 위에 나열한 책들이 더 재밌어졌다. 작가들은 남의 책을 잘 읽지 않을것만 같은데 일본이 무라카미 하루키며 국내의 구간 신간을 아우르며 독서를 하시는 듯 하여 존경스럽다. 주말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며 가다가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온 말중에 ’정적인 취미활동인 독서나 영화감상 음악감상등은 많은 행복을 준다. 하지만 동적인 취미활동은 정적인 취미활동보다는 많은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들으며 운동을 즐기는 남편에게 이제 ’정적인 취미인 독서’ 를 많이 하라는 충고를 해 주었는데 나이가 들어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것이 ’독서’ 인 듯 하다. 마당을 가꾸듯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고 계신 노작가의 독서이야기를 읽고 나니 덥다고 게으름을 피웠던 내가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리움을 위하여.
’그리움’ 내게도 박경리 작가님은 그리움의 대상이며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신것만 같다. 내가 독서에 깊게 빠져들게 된 것이 박경리 작가의 <토지21권> 이란 작품으로 인해서이다. 늘 사진을 보면 텃밭을 일구어 계신 모습이라 이웃집 할머니같은 옆집 할머니 같은 생각을 가졌는데 작가의 책을 읽으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토지의 작품에서도 보면 인물 한 명 한 명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지난 봄엔 악양의 최참판댁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작가의 혼과 작품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는데 작가의 마지막을 생생히 옮겨 주신 글을 보니 그리움이 더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천진한 웃음을 남겨 주시고 ’사랑하세요’ 라는 말을 남기신 김수환 추기경님, 여고때 천주교 학교를 다녀서인지 믿음은 없지만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을 보면 남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와 닿았던 추기경님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노작가에게 <나목>이란 소설을 탄생하게 해준 박수근화백님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맛깔스럽게 그리움과 함께 한다. 작가에게도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위의 세 분은 우리에게도 큰 그리움이다. 사람은 가고 작품은 오래도록 남아 아직도 읽혀지고 대대로 읽혀지겠지만 연세가 지긋하신 작가에겐 더할 수 없는 그리움이리라.작가의 책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다. 이제서 시작이듯 몇 권 읽어 보았지만 일생동안 풀어낸 글이 지금도 쉼없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마당을 가꾸시고 주위를 둘러 보시고 흐트러짐 없이 강단진 모습을 이렇게 책으로 보여주심이 더 없이 감사하다. 나이가 들 수록 글과 말을 아끼기 보다는 좀더 퍼내어 남겨 주심이 감사하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읽지 못한 작가의 책을 읽어볼 기회를 가져야 할 듯 하고 우리에게 그리움이 되지 않게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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