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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 랜덤 워크 - 영화와 음악으로 쓴 이 남자의 솔직 유쾌한 다이어리
김태훈 지음 / 링거스그룹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가뜩이나 난장판인 방은 다이빙 장비,암벽 장비,스키 장비까지 한 자리를 차지해 카오스 이론의 현장 실습실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음악평론가 영화평론가 연애상담사 라디오DJ 로 그가 끼지 않는 자리는 없는듯 하다. 자신의 방을 표현한 말처럼 걷고 싶은 곳이 있음 바로 접수해 그곳으로 방향을 틀고 행동에 들어가는 그는 그야말로 행동파이며 술과 담배를 오랫동안 함께 한 어머니의 말처럼 ’우리집 늙은 공수부대’ 정도라고 할까. 그를 무어라 단정하기엔 어렵지만 털털한듯 한면서도 어디서건 자신의 의견과 지식이 거침없이 나와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 결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의 삶은 디지털보다는 달달한 커피를 시켜 놓고 메모지에 청하는 음악 한 곡 시킬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다방디제이’ 를 한다면 정말 적합하게 잘 어울릴듯하다. 영화와 음악 어느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천호동 재개봉 영화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을것 같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서 더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았을까 읽는 동안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엔 크게 한방 웃어주는 센스까지 발휘하며 혼자서 읽다보니 그의 삶속으로 나도 모르게 슬쩍 깊게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재개봉관을 여고때와 여고를 졸업하고 바로 한참동안 친구들과 드나들며 영화를 신나게 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영화관에서는 중간에 필름이 끊어졌는지 영화가 갑자기 안나오는 경우도 발생을 하고 한참 잘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찍찍’ 하며 쥐한마리 실감나게 나타나셔서 영화관을 발칵 뒤집어 주는 센스까지 발휘해주시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런 시대를 거친 독자라면 그의 삶을 어느정도 이해를 하며 미소를 머금고 읽을 수 있다.
추위를 싫어하는 그가 ’스키’ 를 배우는 장면에서는 또 한번 웃음이 나왔다. 나 또한 추위를 싫어하는데 탄생은 ’겨울아이’ 이다. 어린시절엔 겨울에 밖에서 오빠들과 어울려 노느라 집에 들어올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그런시절 날 지탱해주는 것은 흑백으로 보는 ’주말의 명화’ 였는데 그가 풀어내는 구수한 얘기 속의 명화도 그런 향수를 자아내어 더 실감이 나고 좋았다. 영화와 음악사이에서 ’팝칼럼니스트’ 이지만 요즘은 어느 한부분 구분 짖지 않고 ’엔터테이먼트’ 처럼 모든 부분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그도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컸지만 좀더 들어나지 않고 있다가 주목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의 유럽은 우리 세대의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내가 살아온 시절은 영화는 보는 것으로 음악은 듣는 것으로 존재를 했는데 어느순간 음악도 보는 것으로 존재를 해버렸다. 오디오에서 비디오시대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첫사랑과 같은 ’영화와 음악에 대한 향수’ 는 지금의 것보다 예전의 것에 더 진하게 남아 있는 듯 하다. 그 많은 향수를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는 남자여서일까 그의 이야기가 구수하고 내 추억을 더듬는것 같아 솔직한 이야기에 빠져 잠시 추억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문화의 향유란 마약 중독과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한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음악 그리고 책은 정말 마약이나 다름없다. 빠져들면 들수록 점점 깊은 늪처럼 헤어나올수가 없고 더 강한 것을 원한다. 그래서인지 액션 영화를 보면 다른 무언가로 포장이 되어 나와도 감동은 잠깐이고 ’좀 약한데...’ 하는 소리를 하게 된다. 점점 강한 것에 길들여진 관객은 감성을 자극하는 코드엔 무감각 하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런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내 옆에서도 그런 소리를 듣기 때문에 가끔은 영화를 보러 갈때 혼자 가는 것은 어떤지 하고 가기도 한다. 누군가 함께 가다보면 그사람의 감정을 이입받은 것처럼 내겐 여운이 남는데 무반응의 옆사람 감정을 따라가는 경우, 영화는 재밌어 재미없어로 음악은 괜찮아 별로야로 판가름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예전의 영화나 음악은 ’추억’ 이 함께 했지만 지금의 그런 경우가 덜 해서일까 감동이 덜 한 경우가 많다. 유행, 한번 흐르고 나면 그만 인 것처럼 어느순간이 다시 되돌아 올것을 알지만 아나로그로 오랫동안 길들여진 입맛이 디지털에는 약한 것인지도 모른다. ’ 친구를 잃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다. 함께 했던 시간을, 그 시간의 증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잃어가는 것이다.’
’형, 기억 용량에 문제가 생겼나 봐. 잊어버리는 건 100만 개인데 머릿속에 남는 건 두세 개도 안돼.... 그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호기심을 잃어벼렸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거지. 늙은 꼰대들은 더 이상 세상에 대해서 신기할 것이 없거든. 그러니 무엇을 듣고 보건 간에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지가 않는 거야.’ 그런면에서 보면 그는 혜택을 두둑히 받은 사람같다. 그가 용량은 어떨지 모르지만 기억량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기억장치에 아직 그의 반쪽이 들어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처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로 뛰어가는 아직은 행복한 사람인듯 하다.
영화나 음악을 장르로 구분하기 보다는 ’ 영화나 음악은 행복하고 재밌으면 되는 것이다.인생도 마찬가지다... 아 행복했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괜찮은 것처럼 말이다.’ 라는 말이 와 닿는다. 솔직하면서도 담백하게 자신의 삶을 풀어 나간 그남자의 ’랜덤워크’ , 앞으로도 그의 길은 어디든 열려 있는 것 같다. 그가 담고 있는 이야기중에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제부터인듯 하다.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모르지만 구수하고 털털한듯 하면서도 날카롭게 파헤치는 그의 이야기가 좋다. 사람냄새 풍겨나는 그의 앞으로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