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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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네이버 블로그에서 연재를 하는 것을 잠깐 미리 만났었다. 하지만 난 종이책을 더 좋아하기에 두어번 읽다가 그만두었다. 그때 작품의 제목은 ’살인당나귀’ 였으니 ’은교’ 라는 이쁜 제목의 이 작품을 보고는 다른 작품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 작품이 맞다. 작가 박범신의 작품으로 내가 읽은 것은 93년 절필선언을 하고 용인의 외딴집에서 칩거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썼던 <흰소가 끄는 수레>를 비롯하여 ’세상이 화안...해요’ 라는 첫말이 잊혀지지 않는 소설 <나마스테> 그리고 형제가 히말라야 빙벽인 ’촐라체’ 를 등반하며 새로운 삶을 만나는 <촐라체>를 거쳐 김정호의 삶을 뒤돌아볼 수 있었던 <고산자> 까지 읽었지만 그의 또 다른 몇 권의 소설들은 아직도 날 기다리며 내 책장에 꽂혀 있다.’은교’는 전작들과는 다른 작가의 노련미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70세의 노인과 17살의 풋풋한 소녀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이 작품에서 ’사랑은 무죄’ 라고 말한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고 그 사랑을 바라보며 자신안에 충만이 간직하는 것으로도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린 사랑이라 하면 소유하고픈 욕망,갈망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적요 시인의 자신이 가지기엔 너무 아름다운 풋풋하고 여린 17살의 은교를 바라보는 충만한 사랑은 작가의 연륜이 빚어낸 아름다운 도자기 한 점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이적요 시인과 은교의 사랑에 질투와 욕심을 불러 일으키는 베스트셀러 <심장>의 작가 서지우, 그는 이적요 노시인과는 다르게 ’은교’ 라는 사랑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가볍게 가진다. 감히 노시인은 아까워 손한번 대기 힘든 사랑에 그는 너무도 당연하고 당당하게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아끼면서 정교하게 빚어 놓은 사랑을 한순간 짖밟듯 다루는 제자 서지우의 난폭함에 ’살인’ 을 다짐하는 노시인, 그는 끝내 자신의 사랑으로 인해 그 사랑으로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은 어쩌면 ’시詩’ 에 대한 오마주 같은 작품이다. 노시인의 등장으로 인하여 많은 詩가 등장을 하고 얼마전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애너벨 리,싸늘하게 죽다> 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작가의 노련함을 만날 수 있은 작품으로 연륜이 묻어나서 이전의 작품들도 좋았지만 더욱 물씬 풍기는 작가의 맛에 빠질 수 있는 작품인듯 했다. 노시인이 죽고 일년후에 발표하라는 이적요시인의 마지막 노트, 은교와의 사랑도 들어 있지만 제자 서지우를 자신이 죽였다는,세상에 알려지면 지금까지 시인의 명예에 흠집을 낼 내용들에 Q 변호사는 어찌할줄을 몰라 난처함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한은교를 사랑했다는 것과 서지우를 죽였다는 이적요 시인의 고백은,관능적이다.’ 라는 한마디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이 관능적이면서 강렬할것을 미리 암시한다. 

한은교,17살의 그녀는 노시인에게는 ’쇠별꽃’ 이며 ’너의 머리칼이 나의 이마와 어깨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명주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듯했다. 또다른 새벽이 오는가. 온몸의 죽은 세포들이 새벽 봄풀처럼 깨어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죽은 세포마저 잠 깨우는 그런 존재이다. 하루하루 죽음에 다가가는 그에게 ’은교’ 란 새로운 생명이고 사랑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사랑을 지우에게 빼앗김으로 인해 무너져 가는 노시인, 그런 시인의 사랑과 문학적 능력을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려 했지만 자신은 감히 뛰어 넘을 수 없었던 스승의 사랑과 능력앞에 무참히 무너진 제자 지우, 하지만 은교는 지우와 이적요시인의 사이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무너졌는지 모른다. 

’나는 녹음된 너의 목소리를 열 번쯤 들었다. 늙은 매화 붉은 잎이 연방 강물로 투신하는 모습은 봄꽃보다 더 이뻤다.’ 작가의 표현은 대담하면서도 연륜이 묻어나고 그리고 날카롭다. 금방이라도 예리한 칼날에 베일것처럼 날 선 표현들은 곳곳에서 기다리고 예기치 않게 독자를 맞이한다. 그가 ’은교’ 라는 젊음을 표현하는 말들이나 이적요 시인을 표현하는 ’늙음’ 의 표현들 또한 예리하다. 중간세대인 서지우, 욕망을 채우려는 욕심과 자신의 문학적 무능력에 방황하는그의 모습 또한 작가의 포위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사랑’ 에대한 인간의 내면,이중성등을 작가적 연륜으로 잘 표현해 냈다고 할 수 있다. 

은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자신의 가슴안에 품는 것만으로 너무 가슴 아픈 사랑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자신이 저질른 살인이 아니었지만 살인을 계획한 것만으로 살인이라 인정해야만 했던 이적요 시인의 마지막은 처참하다. 하지만 원조교제와 같은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함으로서 ’은교’ 는 더욱 빛이 난다. 자신의 오래된 코란도를 ’당나귀’ 에 비유 했듯이 그 자신이 늙은 당나귀처럼 노련함을 작품의 곳곳에서 발휘함으로 외설스럽지 않은 노인의 풋풋한 첫사랑을 들추어 보듯 아름다움으로 읽을 수 있었다.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간다.’ 라는 말처럼 은교의 가냘픈 ’손’으로 시작된 사랑이 자신의 영혼을 지배하게된 사랑으로 번진 소설 ’은교’ 는 작가의 또 다른 사랑관을 만나듯 경이로웠다. 서지우가 남긴 노트와 이적요 시인이 남긴 마지막 노트의 이야기가 맞물려 가며 엉킨 실타래가 풀려 나가듯 하는 이야기는 그의 표현처럼 ’고요한 욕망’ 처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문득 문득 소설을 읽으며 ’노마지지’ 를 보는 듯,작가가 풀어낸 또 다른 사랑과 인생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생의 마지막에 너를 통해 만나 경험한 본능의 해방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인생,나의 싱싱한 행복이었다. 그게 바로 나 이적요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또 다른 어떤 활어처럼 팔딱팔딱 뛰는 작품을 들고 나올지 정말 기대된다. 그가 풀어내는 사랑도 인생도 우리 삶의 한부분인데 그의 연륜이 묻어나서일까 그의 손을 거치면 감칠맛 나며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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