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계속 가라
조셉 M.마셜 지음, 유향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이란 것 자체가 바로 계단을 오르는 일이니까.’
삶이나 인생에서 정답이 있을까.정답 없는 것이 인생이고 삶일 듯 하다. 어느 길로 가나 자신이 가는 것이 길이다라는 말처럼 자신이 개척한 삶에 슬픈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때론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얻을 수 있고 큰나큰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누가 어떤 길로 가서 성공을 했다고 반드시 그 길이 모두의 길이 아니듯이 한걸음도 떼기 전부터 성공을 부르짖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모든 걸음은 한걸음으로 시작하여 정상까지 올를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이 삶의 선물이 되는 이유, 올해 초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작은아버지를 잃었다. 작년 여름에 친정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폐암판정이 나고 그동안 아버지께 살갑지 않게 했던 작은아버지는 그소식에 부쩍 외로워 하시고 슬퍼하시며 그동안 형에게 못한 정을 쏟듯 오며가며 시골집에 자주 들르곤 하셨다. 난 그런 작은아버지의 외로움을 막닥뜨리게 되었다. 슬쩍 마음 한켠에 감추고 계시던 속정을 내게 쏟아 내며 울적해 하셨던 작은아버지는 겸사겸사 명절전에 형님을 찾아뵈야겠다며 서둘러 눈길을 나서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그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일로 아버지는 쓰러지셨고 병은 더 깊어졌다. 쉬쉬 하며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던 병이 깊어져 우리 자식들은 좌불안석이었는데 당행히 아버지는 그 뒤로 일어나셨지만 예전만 못하시다. 하지만 중상을 입고 고통을 당하지 않고 돌아가신것으로 우린 만족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일도 슬픈데 작은아버지의 일은 더욱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를 더 돌아보게 되었고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한번 더 부모님 살아 계실때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친척분들도 아버지를 한번 더 뵈러 오시게 되었고 따듯하게 챙기게 되었다. 고통에 한동안 힘들어 하셨던 아버지는 큰 일을 겪고 나신 후 달관을 하듯 아픔을 들어내지 않으신다. 작은 일에도 크게 웃으시며 우리를 맞이하기도 하신다. 슬픔이 가져다 준 감사한 일처럼 그렇게 우린 또 하나의 슬픔을 준비하고 있지만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처음보다는 삯일줄을 알게 된 것 같다.

아버진 동생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내가 찍어다 보여드린 디카 속 사진들로만 그날의 모든 일들을 보시게 되었는데 그것으로 동생을 잘 보내드린듯 ’좋은데 갔나보다.’ 하시는 말씀으로 일축하셨다. 동생의 사고소식을 듣고 쓰러져 응급실에 계실때 물어보니 당신도 갑자기 그렇게 최후를 맞을까 두려웠던 모양이셨다. ’두려움’ 우린 지금도 날마다 그 두려움이 언제 닥쳐 올지 걱정하고 있다. 평생 인생의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소유’ 의 삶처럼 땅을 일구며 식구들 배 곯지 않는 것으로 만족을 하며 사셨던 아버지는 마지막 그날까지 농사를 지으시겠다며 지금도 날마다 밭으로 나가 농작물을 일구신다. 며칠전에는 감기까지 걸리셔서 무척 힘들어 하고 계시다.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그 낮은 자세가 괜히 목울대를 콱 붙잡는듯 속울음을 울어야 하는 마음, 그런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하여 늘 웃고 큰소리 내고 내 거짓된 행동처럼 부모님께 보여지는 모습이 가끔은 싫지만 고통을 감내하고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떤 일도 참아낼 수 있을 듯 하다. ’인생이란 슬픈것만은 아니란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을 갈망하지 않을 터이고, 기쁨을 찾으려 애를 쓰거나, 기쁜 일이 닥쳤을때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 같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쁨이나 슬픔이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니지. 또 그 둘 중 하나가 자주 우리 여행의 동반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항상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쁨과 슬픔이나 행복과 불행도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내 인생에는 왜 늘 슬픈 일만 있을까.’ 혹은 ’나는 왜 늘 불행한 일만 있지.’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기쁜 일들이 혹은 행복한 일들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지나쳐 갔을까.세 잎 클로버의 말은 행복이다. 수많은 행복속에 감추어진 네잎 클로버,행운을 찾기 위하여 우린 늘 우리 곁에 있는 행복을 놓치고 만다.그처럼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불행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 행복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절망 뒤엔 무지개처럼 ’희망’ 이란 쌍생아가 있으니. 비 온 뒤에 더 맑은 날을 만날 수 있듯이 슬픔과 불행의 터널을 지나다 보면 강인해질 수 있다. ’강인함은 노력과 고통의 선물이다.’ 라는 말처럼.

’역경을 통해 얻은 강인함은 역경에 다시 부닥쳤을 때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법이라오.’
큰딸이 중학생이었을때는 공부좀 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고 녀석은 잘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 자신감을 잃었는지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시험’ 소리만 들어도 속이 좋지 않은 현상을 나타내며 자괴심에 빠져 스스로 혼란에 빠진 듯 했다. 잘하던 과목들도 자신감을 잃고 그런 딸을 보며 늘 하는 말이지만 ’첫 술부터 배부르려 하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가라’ 했다. 모든 일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정상을 밟을 수는 없듯이 조금 노력했다고 모든 공부를 다한듯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며 ’인생도 그렇고 공부도 마라톤이다.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 공부인데 지금부터 눌러 앉아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자신과의 마라톤이라 생각해.’ 했지만 녀석에겐 그런 충고도 그저 배부른 엄마의 잔소리 쯤으로 들렸었던가 보다. 하지만 모자라던 과목에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가진것만으로 반은 이룬것이라 했더니 좋았는지 더 열심히 그 과목에 매달리고 있고 그런 모습을 보여줘 고맙기도 하다. 늘 정상에 있을 때는 오르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몰랐고 내려가는 길은 단숨이라는 것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시작부터 힘들게 고지를 향해 올라가다 보면 정상의 길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정상에 더 오래도록 머물 수 있으며 하산길은 쉽게 내려갈 수도 있다. 녀석이 힘든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의 노력이 미래의 어느날에는 꼭 강인함으로 자리하여 단단한 결실을 맺기를 바랄 뿐이다.’인생이란 올라가야 할 수많은 언덕과 산을 우리에게 들이밀고 있단다. 아마 우리 마음과 정신의 어느 한쪽에선 올라가는 것이 내려가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게다.’ 

’인생이란 한 번에 한 걸음씩 걸어가는 여행이란다.’
늙은 매가 제레미라는 손자에게 들려 준 이야기중에 석수장이들이 몇 대를 거듭하며 산 정상까지 향하는 계단을 만든 이야기 중에 ’그래도 계속 가라.’ 라는 말은 삶이 힘들고 슬프고 불행하다고 포기하기 보다는 역경을 거듭하며 일어나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절망을 지나 희망이란 절망의 동반자를 만날 수 있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을 하듯 첫 술에 배부르지 않듯이 한걸음 한걸음 노력을 하다 보면 무언가 얻을 수 있는것이 인생이라는 말인듯 하다. 내 아버지의 삶을 엿보아도 아버지의 인생에서 크게 성공이나 행복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사건이나 일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불행한 삶을 사셨다고는 말할 수 없듯이 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거짓없이 하루하루 노력하는 참된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것만으로 감사하고 고맙다. 암이라는 커다란 고통을 안고 계시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올해 농사도 지으시겠다는 희망찬 의지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한걸음 한걸음 고통과 싸우다 보면 좀더 천천히 ’마지막’ 이란 것과 마주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을 나 또한 가져본다. 이 책은 절망하고 싶을 때 어디에선가 날 우연히 기다리고 있을 ’희망’ 을 가져다 준 책이다. 늙은 매의 말처럼 절망도 우리 안에 있고 희망도 우리 안에 있다. 그래도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 다는 희망이 있기에 삶은 살 만 하고 오늘을 지탱하고 내일을 기다리지 않나 싶다. 양지만 걸을 수 없는 삶, ’그래도 계속 가라’ 라는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자신안의 희망을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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