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서커스
천운영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갑자기 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은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전해져왔다. 소스라치게 놀라 옆에 않은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입을 벌린 채 서커스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 눈은 형 목에 그어진 흉터로 향했다.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서커스, 그것이 진짜 서커스다.’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첫만남의 느낌이 좋다. 동생의 앞에서 재주넘기를 잘하던 형, 그 형은 동생의 박수에 더 멋진 재주를 보여주려다 전선줄에 목이 걸리면서 목소리도 잃었고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지 못한 형을 데리고 중국신부를 맞기 위하여 여행을 갔던 그들은 서커스 구경을 한다. 위험하면서도 솟아 오르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땅 가까이 내려오는 서커스를 보며 어쩌면 그들의 위험한 인생을 보듯 곡절많은 서커스에 취한 형의 목에 선명한 흉터, 형을 책임지던 윤호는 그곳에서 그와 형의 맘에 맞는 신부감을 만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형수 될 사람, 그 서커스 하던 여자랑 닮은 거같아. 작고 예쁘고,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쇠소리처럼 이상한 바람빠진 소리를 내는듯한 형의 목소리, 그는 목소리와 함께 인생을 잃었다. 맘에 둔 남자가 있었지만 한국이 속초로 떠난 남자를 그리워 하는 해화, 그는 윤호형제와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엄마가 챙겨주는 꽃밥통을 안고 부천의 어느 오리고기를 주메뉴로 하는 식당에 시집을 오게 된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당뇨로 한쪽발을 절단하였지만 그녀에게 남은 삶도 얼마되지 않는다. 해화가 시집을 오고 그녀는 시어머니에게서 엄마오 같은 느낌을 받으며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지만 동생 윤호는 그녀에게 쏠리는 맘때문에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에서 서성이듯 형부부의 주변인물로 산다. 그런 동생이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보따리 장사에 나서고 어머니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여 배롱나무밑에 묻히고 나니 형은 그에게 남겨진 그녀를 잃을까봐 동물적이며 험난하게 변해간다. 그녀를 손목이나 발목에 전선으로 묶고 잠을 자기도 하고 그녀를 엄마여기며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것도, 여기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도 싫습니다..... 한판 서커스를 끝내고 난 기분입니다. 이젠 그만두어야겠습니다. 서커스 짓거리 말입니다.’ 어느날, 해화는 그 집을 벗어나 자신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 하지만 그녀에게 남겨진 삶은 험난하기만 하다. 중국에서도 이방인이었고 한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그들의 삶은 속초로 내려온 그녀의 남자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연하게 윤호는 그를 만나 그의 동생도 만나고 해화의 친구도 만나기도 하지만 형의 여자이기에 다가가질 못하다 그녀의 가출소식을 듣는다. 아내의 가출이후 급격히 변한 형,그런 형을 데리고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다 문득 느낀 형의 존재, 자신을 떠난 형을 그리워 하는 동생. 하지만 어느날 형은 다시 동생에게 돌아온듯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안개가 덮힌 바다에 던져 자유로운 삶은 얻는다. 

자신의 여자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맘에 품었던 여자도 떠나고 어머니도 떠나고 형도 떠나고 발해사를 연구하던 여자의 남자도 떠나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없다. 화려한 서커스가 끝나고 외로움과 어둠만이 남은 것처럼 그에게 남겨진 빈껍데기 같은 삶, 잘가라 서커스. 우리의 삶이 한판 서커스 같다. 소설은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데 단순한듯 하면서 인생의 오묘함이 깃들어 있어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리 단순하지만도 않다. 남자와 희망을 찾아 한국에 온 해화와 발해사를 꿈꾸지만 아버지의 빚을 갚기위해 한국에 와 노동자가 된 해화의 남자,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그들이 잡으려던 희망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인호와 윤호 형제 또한 한판의 서커스와 같은 인생을 살다 간다. 한판 걸지게 놀지도 못하고 인호는 슬픈 삶은 마감하고 모두가 떠나가도 난 후의 덧없는 세월만 붙잡고 있는 윤호의 삶은 또 어떠할까? ’어째 이제 옴까’ 해화의 구수한 연변 말씨와 함게 등장하는 이방인들, 그들의 삶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 경제의 밑바탕을 버티고 있는 그들은 사회에서 너무 천대를 받고 자신들의 삶을 ’천대’ 에 저당잡히고 살듯 변변한 삶이 없다. 해화 그녀가 형의 곁을 떠나지 않고 좀더 자신의 삶으로 받아 들이며 가족을 만들고 이방인이 아닌 삶을 살기를 바랬는데 그녀도 윤호형제도 모두가 슬픈 삶, 하지만 작가를 알게 된 괜찮은 소설이었다.

'궁전 모양이나 화려한 성모양으로 근사하게 포장된 여관 건물들,마천루처럼 솟은 건물들은 껍데기뿐인 빈 상자처럼 보였다.그것은 허상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는,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버릴 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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