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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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바다 한복판에서 불쏙 솟아올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올렸다.주변에 있던 어부들도 물고기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금복은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의 출현에 압도되어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물고기는 거대한 꼬리로 철썩 바닷물을 한 번 내리치고는 곧 물 속으로 사라졌다.' 산골에 살던 금복에게 대왕고래의 출현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고래>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금복이 평대에 지은 영화관은 고래모양이었다. 그녀의 딸 춘희가 감옥에서 평대로 돌아와 마주한 것은 '한때는 융성했으나 몰락하고 만 고대도시처럼 평대는 아침안개에 휩싸여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냈다. 멀리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건물들 사이로 우뚝 솟은 극장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그녀의 엄마인 금복이 세상을 바꾸듯 평대를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던 영화의 징표인 극장에 불을 질러 대참사를 일으킨 방화범으로 수감생활을 하다가 겨우 그곳을 찾아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이 소설은 제목인 '고래' 처럼 무척이나 대단한 추진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450여 페이지에는 작가가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처럼 쉼 없이 쏟아내 놓은 전설같은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물어 다시 쏟아 내 놓고 끝도 없는 이야기들은 언제 끝을 맺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계속 이어진다. 사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금복이 좋아했던 '영화' 처럼 세상사,인간사가 모두 '허구이면서 영화' 와 같다는 의미처럼 거침없는 이야기들은 독자를 고래의 뱃속으로 유인해 놓은 듯 하다.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고령화 가족>이란 작품에서였다. 그 작품을 유쾌하게 읽어 작가를 주목하게 되었고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고령화 가족' 은 빠르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어 진도가 빠르게 나가는데 반해 이 책은 조금 더디게 읽었다. 끝도 없는 작가의 이야기의 마술에 걸려 든 것처럼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하겠더니 급기야 끝맺음 또한 다른 책들과 다르게 끝은 맺는다.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이라면 뇌리에 각인을 깊게 남길 작품이다. 

이야기는 2대에 걸친 두여자의 이야기다. 엄마인 금복과 그녀의 딸인 춘희, 작가의 구라로 본다면 춘희는 아버지라고 알려진 인물이 죽고 사년만에 태어난 딸인데 도무지 여자냄새라고는 없다. 엄마인 금복이 페르몬을 흘리듯 남자들이 줄을 이어 따라올 화냥기에 비해 춘희는 야생의 상태로 자란 자연 그 자체라고 해야할 듯 하다. 이야기는 완전 허구이면서 그 허구안에 세상사를 모두 담고 있어 허구라고 보기엔 조금 난해하기도 하다. 엄마인 금복은 산골소녀이면서 가난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그녀의 손이 다으면 모두가 '황금'으로 변하듯 그녀는 그야말로 모든 일에 성공을 거두어 들이듯 세상사를 휘어잡듯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 역시 죽음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 한푼 손에 쥐지 못하고 화염속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자신마져.

엄마의 그늘에서 자라지 못한 춘희는 엄마인 금복이 남겨 놓은 평대벽와에서 그녀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벽돌을 구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남긴다. '벽돌의 여왕' 과 같은 이야기를... 고래가 거친 물살을 헤치고 나가듯 금복이 하나의 풍랑을 이겨내면 거침없이 그보다 더 큰 풍랑을 만나고 곧 그녀는 그녀만의 방법으로 헤쳐나간다. 그녀가 부두에 처음 도착해서 본 대왕고래에서 느낀 ' 죽음을 이겨낸 거대한 생명체가 주는 원초적 감동' 처럼 그녀는 독자들에게 감동거리를 자꾸만 만들어 나간다. 부둣가에서 건어를 만들어 팔던 일이며 자신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여주던 네손가락의 건달의 이야기나 춘희의 아비인 걱정과의 삶이며 모든 것을 다 잃고 국밥집을 하다 빈털털이가 된 상태에서 국밥집 노인네가 감추어둔 비밀금고 같은 돈이 천장에서 쏟아져 그 돈을 밑천으로 그녀가 즐겨 마시던 커피로 다방을 낸 것이며 다방에서 얻은 수익과 그외 돈으로 벽돌공장을 만들고 고래모양을 본뜬 영화관을 짓고 정말 그녀는 사람이 아닌 신처럼 모든 일의 주동자가 되어 지내지만 모든 것은 한순간 물거품처럼 '영화'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녀의 영화와 같은 이야기 끝나고 그녀의 딸인 춘희의 이야기가 다시 야생녀의 모습으로 생생함을 전해주며 작가의 구라가 또 이어진다. 어쩌면 전설같은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져 소설을 손에서 놓고도 한참을 '어리벙벙'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긴 읽었지만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이야기들은 스쳐 지나간듯 하지만 잔상이 깊게 남는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삶과 죽음' 을 생각하게 해준다. ' 끝없이 상실해가는 게 인생이라면 그녀는 이미 많은 것을 상실한 셈이었다. 유년을 상실하고,고향을 상실하고,첫사랑을 상실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젊음을 상실해버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모두가 빈 껍데게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싱그러운 수련의 육체 앞에서 뼈저리게 확인해야 했다.' 금복 그녀가 발버둥치며 산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엄마의 죽음과 가난에서 벗어나려 '고래'의 영원한 생명력과 추진력을 닮아보려 했던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 모든 부귀영화가 개망초가 흐드러진 버려진 땅으로 둔갑하듯 '일장춘몽' 처럼 덧없음을 느끼게 하는 영화같으며 작가의 허구에 한없이 빨려들었던 소설 고래는 그의 작품을 한번 더 찾아보게 만들며 '우린 사라지는 거야.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춘희와 점보가 영원으로 나눈 말처럼 그를 확실하게 기억하게 만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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