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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 이야기 - 時設: 시적인 이야기
한강 지음, 우승우 그림 / 열림원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한강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처음 만난 건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에서다.무언가 섬뜩하면서도 다 읽고나면 그녀의 이야기가 이해 되었던 뇌리에 강하게 남는 소설덕도 있지만 그녀의 아버지 '작가 한승원' 때문에 그녀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다 만난 소설 <붉은 꽃 이야기>는 '인연' 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 절에 갔다가 동생이 이쁘다고 한 '영가등' 과 누나인 선아가 따라가게 된 '붉은 등' 은 그들의 삶이 다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절에 갔던 인연으로 인하여 끝내 탈속을 하고 마는 선아, 동생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 여겨 자신안에서 끝내 털어 내지 못하고 부처님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이 소설도 독특하면서도 이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부처님 오신 날에 가족이 모두 절에 가서 등도 달고 맛있는 비빔밥도 얻어 먹고 탑돌이및 연등행사에 참여한 기억이 있어 이 소설은 더 와 닿았나 모르겠다. 딱히 부처님을 믿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처님 오신 날엔 절에 가서 가족의 건강을 위해 등을 다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우연히 시작되었다. 나와의 인연 또한 조금은 깊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소설은 더 내게로 온다.
일을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폈던 누이, 그런 누이의 눈을 벗어나 이웃집의 공사장에 갔다가 발에 못을 찔리면서 죽음에 이르는 나이 어린 동생, 그 동생은 끝내 다음해 절에 피는 붉은 꽃을 보지도 못하고 하얀 꽃이 되어 떠나고 만다. 그런 동생의 죽음을 털어내지 못하고 그 안에서 헤매이던 그녀가 찾아 간 곳은 동생과 함께 갔던 절, 그 절에서 비로소 새로운 삶으로 붉은 꽃이 되는 이야기. 한편의 동화 같기도 하고 한편의 짧은 영화 같은 이야기가 부처님 오신 날이면 이제 늘 곁에 남을 듯 하다.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니 그녀의 인연은 가슴이 아파 팔월이면 절마당에 피는 상사화처럼 오누이의 못다한 사랑이 잔잔히 떠오를 듯 하다.
'치켜 깎은 머리의 소녀가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자신의 몸뚱이만한 굵기의 나무 기둥에 상체를 기댄 채 약간 위쪽의 먼 곳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눈에 깃들인 것은 멍한 백일몽 같기도 했고, 알 수 없는 그리움 같기도 했다. 그것은 은사스님과 원주 스님이 외출한 뒤, 후원의 일을 마치고,다릴 옷들 다리고 쓸 마당 다 쓸고 나서 그가 오후 시간을 보내곤 하던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