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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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 나아가 조선시대의 정치적 행위와 역사서의 행간을 읽고 채우는 흥미로운 역사 읽기가 가능해졌다.

'홍씨 집안에서 모은 정조의 글씨가 대략 1천 6백 폭에 이르렀다... 이렇게 정조는 달필에 속필로 편지를 써서 친족이나 신하 들과 왕래하며 주변 인물을 끌어 안고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비밀편지를 교환하며 막후에서 정국을 조율하는 방식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편지광인 정조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정조어찰>, 한 신하에게 보낸 편지가 무려 350여통이나 발견이 되었다니 대단하다. 정조의 시대를 '문화부흥기' 라 알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시대에 문화가 왜 그리 찬란했는지 알겠다. 밤낮 독서와 친족및 신하들에게 편지쓰기를 열심히 했던 그가 독서를 너무 하여 눈이 안좋았다니 알만하겠다.

정조어찰, 원손시절에 쓴 편지는 '예' 자가 붙어 '예찰' 이라 한단다. 임금이 되어 쓴 편지는 '어' 가 붙어 '어찰' 원손시절부터 편지를 즐겨 쓴 그가 남긴 편지는 정말 대단하다. 외가댁인 홍씨 집안에 보낸 편지들을 혜경궁 홍씨가 한데 모아 놓은 것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빼앗겼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으면서 울분을 참지 못하겠다. 빼앗아간 문화재는 양심적으로 되돌려 주어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그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은 많은 시간을 '편지쓰기'나 '독서'에 치중하고 편지로 정치도 조율하고 친족간에 친목도 다지고 신하와의 거림감도 좁힌 그를 보니 무척이나 '인간적인 군주' 였음이 분명하다.

심환지, 어찰은 대부분은 후일을 없애기 위해 되돌려주거나 태워 없앴을 터인데 이렇게 많은 편지를 그것도 받은 날짜와 시간등을 세세하게 구분하여 모아 놓은 신하 또한 대단하며 그의 정치적이며 인간적 뚝심을 알만하다. 이런 대단한 편지가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는것 자체가 우리에겐 정말 '보물' 과도 같으니 역사를,정조와 그 시대를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사진상으로 보여지는 글씨도 달필인데 그 많은 편지를 쓰려 했다면 정말 글을 잘 썼을것 같으며 작은것이라도 신하들과 나누려는 정조의 인간됨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조는 높은 수준의 글솜씨를 자랑하는데 특별히 편지에서 솜씨를 잘 발휘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하고 조리 있게 표현하는 능력은 결코 쉽게 도달할 수준이 아닌데 정조는 국왕으로서 유래가 드물게 탁월하다. 문학적으로도 우수하여 작품성이 뛰어난 편지가 곧잘 눈에 띈다.그렇기 때문에 정조어찰은 정치사 사료로서 비중이 매우 높은 동시에 문학과 서예, 궁정문화와 생활사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도 조명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의 삶 전부가 편지로 이어진것 같은 편지들,죽기 13일전 쓴 마지막 편지에서 그가 언급했듯이 그는 이미 병이 깊었던듯 하다.그 전에도 자신의 병을 표면하 하기도 했지만 한때 <정조의 독살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쓴 편지는 자신의 죽음을 내다 보는 듯 하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추측으로 난무하던 것들을 짧막한 편지들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신하와 농사 지은 쌀 몇 말을 나누는 정감어림이며 유머까지 있어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이모티콘을 쓰듯 '껄껄' 이란 단어를 즐겨 썼다는 것이며 '인간 정조' 를 보는 것 같아 읽는 동안 참 마음이 따듯해졌다. 지금시대를 살았다해도 조금도 모자람없이 나라를 잘 다스렸을것 같지만 자신이 자주 언급했듯이 '다혈질과 태양증' 으로인해 자신의 삶을 단축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가져본다. 정조어찰은 한사람의 정치적인 면 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이면서도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 등을 읽을 수 있으며 우리가 그동안 놓쳤던 부분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어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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