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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ㅣ 황석영 중단편전집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아이구 울 엄니, 내가 떠나올 때에 객지 나가 고생 말라구 하시더니...어이구 울 엄니...’
황석영,그의 중단편을 만나다 보니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루의 삶조차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의 불합리와 싸우듯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삶을 영위하기 위한 투쟁을 해 나가는 그들을 만나다 보면 가슴이 울컥하며 무언가 올라오듯 한다. <한씨연대기>에서 꼿꼿한 성격탓에 자신의 삶을 버리고 바닥같은 삶으로 한생을 마감한 한씨나 <삼포 가는 길>의 세사람처럼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고향을 찾아 정처없이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또한 내일의 일을 예감할 수 없다. <객지> 에서도 개미처럼 자신들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팔고 있지만 그 이득은 어디로 가고 마이너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사실적인 묘사로 동혁이나 대위처럼 그 현장에서 함께 시위를 벌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올해 떠들석하게 했던 뉴스,용산재건축현장의 시위 참사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객지> 는 객지나가 고생하지 말라는 엄니의 말처럼 어디든 날품팔이를 하러 다니면 일이 자신을 따라 다닐줄 알았는데 자신들의 노동력마져 착취를 당하고 있음을 안 그들에게 내일이란 없다. 그들이 시위장소로 선택한 민둥산인 뒷산처럼 그들에겐 그늘막 하나 없는 삶에 갈증만 더할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마지막 보루처럼 자신들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왔다. ’국회의원들이 오신단다’ 높으신 그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공사에 그들의 노동력은 대단한 힘을 발휘해야 하지만 하루벌어 하루도 연명하지 못하는 그들의 노동력은 파리목숨보다 못하다. 층층이 그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이들 밑에서 그들이 선택해야 할 ’오늘’ 이란 무엇인지...
입석부근,고교시절인 1962년 이 작품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는데 대단하다. 고교시절부터 그의 이야기꾼 기질이 엿보이는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인 <개밥바라기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문학에 대한 외도로 인한 방황이 중단편들에 잘 들어나 있는것 같다. 노동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듯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고 월남전 참전용사들을 대신하듯 그가 뱉어낸 <탑> 이나 그외 작품에서 전쟁후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괴리감이 너무도 사실적이라 그 상황속에 실제 내가 존재하는 느낌이다. 장편 뿐만이 아니라 중단편 하나로도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영향을 발휘하는 그의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관심밖의 사람들이지만 인간 존엄성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모두 넋이 빠져 미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다운 모든 것이 탈진되어 의식이 흐려졌다.나는 배수로 속에 끓어 앉아 토했다. 전투가 끝나버렸는지,아니면 다시 끝없이 시작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누가 남았는지 바라보기조차 귀찮았다. 그래서는 죽은 자들의 굳어진 몸뚱이 사이에 넘어져 졸기 시작했다.' - <탑> 중에서
장편에 길들여져 멀리하던 중단편들의 맛을 그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되찾을 수 있다. <오래된 정원>을 읽고 한동안 먹먹하여 그의 책들을 찾아 읽던 기억이 이젠 중단편들로 인해 한동안 그의 소설속에서 헤매일듯 하다. 백화,가화,동혁 등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고향을 찾고 그들이 꿈꾸던 내일을 언제쯤 되찾을지 소설밖 상상을 하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들이 있어 한해의 마무리를 그와 함께 하는 기분이다. 아무쪼록 읽어야지 하면서 뒤로 미루어 두었던 그의 단편들을 접할 수 있어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다. 그의 새로운 소설 <강남夢>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새롭게 변신한 그의 이야기꾼 기질을 엿보고 싶어진다.
'서리는 매점을 경영하고 전표장사나 돈놀이를 해서 수지를 맞춥니다. 회사측에서는 하급 인부들의 노임과 작업 문제를 합숙소랑 직결시켜서 일임해버리는 게 편리한 거죠.어째선가 아쇼?' -<객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