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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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당연시 여기고 있던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
 
<엄마>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먹먹한데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하는 소설은 칠순이 된 노모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몇 년 전에는 손바닥에 콩알만한 물혹이 생겨 몇번을 수술하고도 아버지와 시골일을 다 하시며 밥이며 빨래까지 남의 손을 빌지 않고 모두 하셨다. 아프다는 말씀 한마디 하시지 않고.. 그해 나도 손목에 물혹이 생겨 똑같은 수술을 받아 보았지만 난 손을 쓰지 못했다. 손목이기도 했지만 신경을 누르고 있던 것을 제거했기에 붕대를 말고 얼마간 지내야 했다. 얼마나 답답한지 그때 더욱 엄마가 위대해 보였다. 난 응석만 부리고 있는것 같아 다음에 시골을 방문했을때 엄마의 손을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무언가 고장난듯한 엄마의 손,그런 손으로 아무말씀 안하시고 우리의 먹거리까지 챙겨주시는 엄마, 나도 내 딸들에게 그럴 수 있을까.
 
'너도 너 닮은 딸을 낳아봐라..' 엄마가 하시던 말씀을 내 딸들에게 하고 말았다. 요즘 한창 사춘기인 두 딸들이 자기 의견이 너무 강하고 중3인 딸과는 한해를 어찌 싸우며 보냈는지 모르게 보냈다. 다행히 고입이 잘되어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정말 한해를 모두 전쟁처럼 싸우기만 하며 보낸듯 하다. 싸우다 지치면 딸에게 '너도 너 닮은 딸 나아봐..' 하면 딸은 '엄마 그런 욕이 어딨어..' 하며 눈을 흘겼다. 나도 그 시절에 엄마에게 그렇게 대했을까. 내 지난날을 뒤돌아 보면 막내이지만 엄마에게 내 딸아이처럼 대들며 크지 않은것 같다. 시골생활이라 늘 집을 지키고 엄마의 일손을 덜어드리기 위하여 청소며 개울에 나가 빨래며 곧잘 하여 칭찬을 받고 공부도 엄마가 말씀 하시전에 했기에 큰소리를 듣지 않으며 큰 듯 하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또 다른 바람이 있었을까..
 
두 딸을 두었기에 요즘은 더욱 엄마와 가까이 속마음까지 털어 놓으며 긴 대화를 전화를 통해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여자만의 대화를 하지 않은것 같은데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고 있음일까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다보면 길어진다. 속마음까지 다 들추고나면 시골에서 자식을 위해 사느라 엄마를 제대로 한번 돌보지 않은 엄마가 측은하기도 한데 그 모습은 곧 내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살만큼 살았다면서 모든것 용서하면서 너무 악을 쓰지 말고 살라는 엄마의 말씀, 좋은게 좋은거고 그래야 너도 복 받는다. 하시는 말씀이 가슴을 저며들게 한다. 큰아이가 외고시험을 보는 날 아버지의 생신이었는데 아이의 시험이 잘못될까봐 식구들에게 깜박 잊고 미역을 사지 않았다면서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는 말씀을 외고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드리자 말씀 하시는데 난 멍했다. 그날 아침엔 난 딸에게 미역국을 먹였기 때문이다.
 
시골에 다녀오거나 문득 문득 <혹시 엄마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라는 전화가 온다면..>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아직 큰 일을 당하지 않았기에 늘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날이 내게는 오지 않을것만 같은데 이 소설을 읽다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골에는 엄마의 친구분이 치매에 걸려 날마다 동네를 돌며 밭작물이며 열매를 다 따가시는 분이 계시다. 식구들은 할머니를 찾아 동네를 뒤지기도 하는데 엄마는 늘 그분이 우리집 밭작물인 콩이며 고추며 포도나무의 포도며 대추등을 따 가시니 치매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하시는데 난 속으로 우리 엄마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엄마와 아버지가 치매가 아니라서.. 혹시나 그렇게 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런 일이 발생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끔찍하다. 하지만 늘 미지수를 두고는 있다. 연세가 연세이니..
 
소설 속 엄마도 머리가 아프지만 자식과 남편에게는 자신이 아픈것을 감추고 살아왔다. 아니 모두의 기억속에서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잊혀진 존재로 살아왔다.화자인 <너>의 이야기가 곧 나의 가슴에 와 닿으며 내 이야기가 된다. 동물도 잘 되지 않는 집에 들어와 강아지 키우고 새끼를 몇 번을 내고 밭작물이며 꽃이며 엄마의 손이 가는 곳은 풍성하다. 남편이 아내를 잊고 지내듯이 자식들 또한 그런 엄마의 존재를 잊어가도 엄마는 그림자처럼 자식들을 걱정하면서 자신의 삶이 아닌 가족의 삶으로 일관한다. 그런 엄마의 존재를 엄마로 받아 들인 사람들이 있을까.화자가 <당신>이 되고 부터 진정한 엄마의 숨겨진 이야기가 나오면서 목울대가 콱 막힌다. 엄마도 여자이고 가족의 구성원 이었는데 남편마져 대화를 단절하듯 그에게 미역국 한번 끓여주지 않고 늘 앞서서 걸어갔다. 그렇게 식구들 뒤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온 엄마, 그녀가 사라졌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큰아들의 기억에서도 큰딸의 기억에서도 작은 딸의 기억에서도 남편의 기억에서도 오롯이 다시 살아나는 <엄마>라는 여자의 존재, 그랬다 엄마의 부재는 엄마의 존재를 다시 부활시켰지만 엄마는 그 어디에도 없다. 파란 슬리퍼를 신고 발등에 상처가 깊이 폐인 사슴같은 눈망울을 한 엄마는 그들의 지난 기억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어디에도 없다. 이제는 모든 일에 답이 나오는데 엄마가 없다.찾을 수가 없다.
 
제일 가까운듯 한 엄마와 딸의 사이에도 엄마는 어떻게 존재하였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기억에 없다. 딸의 책을 자신이 직접 읽고 싶어 글을 배우려 했던 엄마, 그런 딸을 자랑하시며 딸에게 내색을 안했지만 딸의 소설을 모두 알고 있던 엄마,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을까.. 모든 자식 걱정에 당신은 늘 같은 모습으로 사셨던 소설속의 엄마가 내 엄마이기도 하고 내 모습이 되기도 하여 더 가슴이 미어지게 했던 소설이다.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 아니 그런 엄마가 존재함을 일깨워 주어 고맙다. 아직 내겐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이 더 고맙다. 할 말도 많고 해드릴 시간도 많이 남았음이 감사하다. 아직 난 고해성사를 하지 않아도 됨이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
 
더 늦기전에... 더 늦기전에 무언가 할 일이 남아 있음을 말해주려 소설속 엄마가 말씀을 하신듯 하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니 모든 일에 답이 생기네. 오빠, 엄마가 원하는 거 그거 다 해줄 수 있었어. 별일도 아니었어. 내가 왜 그런 일로 엄마 속을 끓였나 몰라.비행기도 안 탈 거야.'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 '엄마의 실종은 그가 까마득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 속의 일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그 문짝까지도.' 엄마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고 나면 나도 그럴까.. 그때되면 엄마의 소중함을?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빈집의 마루에서 울고 있는 당신의 끅끅거리는 소리가 더 높아진다.' '감은 금방 열린다. 칠십년도 금방 가버리더라.' '나 죽고 없으면 감 따 먹으며 내 생각하라는 뜻이여.' 어디에나 엄마는 존재했다. 내가 알지 못하든 알 든.. 하지만 그 존재를 받아 들이지 않은 것은 우리들이다. 그런 현실이 될까봐 <엄마를 부탁해>는 일침을 가하는것 같아 책을 그냥 덮을 수가 없었다. 내 가슴을 팍팍 긇어대듯 작가의 글들이 정말 더 늦기전에 뒤를 돌아보게 해 주어 감사하다. 소설속처럼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엄마께 전화라도 해 봐야 겠다. 춥지는 않은지 그리고 가슴에 오래도록 묻어 두었던 말들도 이제는 꺼내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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