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이들은 저주라고 말하겠지.
난 삶이라고 말하겠다.삶이라고...


놀라운 삶일까.. 오스카 와오는 제목처럼 놀라운 삶을 살다 갔을까.. 소설은 도미니카 공화국이란 낯선 문화와 푸쿠라는 한가족의 삼대에 걸친 저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듯이 작가는 저주라고 생각하는 푸쿠도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스카 할아버지에서 엄마인 벨리시아 그리고 오스카와 누나인 롤라로 이어지는 가족의 저주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 때문에 무참하게 짓밟히고 만다.

할아버지인 아벨라르는 트루히요로 부터 자신이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맘에 드는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마는 트루히요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파티에 재클린과 아내를 데려가지 않지만 그렇게 지키려했던 딸들과 아내 그리고 자신도 독재자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과 감옥 그리고 재산마져 모두 잃고 만다. 감옥에 들어간 후에 막내딸을 임신한것을 안 아내는 그 딸을 낳고 죽고 말아 막내딸은 남의 손에 넘겨져 다시 팔려가는 신세가 되어 자신의 비밀도 모르고 노예처럼 크다가 고모인 라 잉카에 의해 구출되어 자신이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삶, 역시나 순탄치만은 않다. 그런 삶을 이겨내기 위하여 뉴욕으로 향하여 삶의 터전을 잡지만 암덩어리를 품고 살아가는 신세가 되고 그의 아들인 오스카는 거구의 몸에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을 만화와 SF에서 찾듯 빠져 산다. 오스카의 누나인 롤라 역시 불행한 삶을 살다가 자신의 긴 다리를 이용한 육상에 뛰어난 소질이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새 삶을 찾는다.

자신의 컴플렉스인 겉모습때문에 애인도 없고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본 오스카는 할머니의 집에 갔다가 이웃에 사는 여자 이본을 보고 사랑을 느끼지만 그녀는 오스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짝이었고 그녀에겐 이미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향하는 사랑을 꺾을 수 없던 오스카는 그녀와의 마지막 여행을 끝으로 처음으로 키스도 해보고 그녀와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지만 끝내 자신이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푸쿠에게 굴복하고 만다. 

소설은 누나의 애인이었던 유니오르의 회상처럼 전개되어 나가는데 오스카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엄마인 벨리시아의 이야기가 나올때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트루히요의 독재정치에 대하여 작가의 강한 비판이 담겨 나온다. 독재자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풍자적이면서도 한가정과 삼대에 대한 푸쿠에 맞추어 잘 풀어나간 것이 너무 솔직한 면이 들어나 읽다보면 약간은 어색한 면도 나온다. 하지만 느슨한 마지막 부분까지 읽고 나면 공감이 간다. 푸쿠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려는 삼대의 안쓰러움처럼 언제나 길모퉁이에 도사리고 있는 뜻하지 않은 난관, 하지만 작가는 그 모든 것들이 <> 이라고 했다. 독재자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푸쿠가 내리 짓밟아 놓아도 어쩔 수 없는 삶은 연속되며 그것 또한 그들의 삶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벗어나려 해도 그에게 씌어진 올가미처럼 푸쿠에서 한발자국도 빼지 못하고 지속되는 삶처럼 어쩌면 그 일부분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인생이란 그런거다. 아무리 열심히 행복을 모아봤자 아무것도 아닌 듯 쓸려가버린다. 누군가 나한테 묻는다면, 난 세상에 저주 따윈 없다고 대답하겠다. 삶이 있을뿐.그걸로 충분하다고...  작가는 푸쿠에 대하여 말하는 듯 하면서도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 던지는 듯 하다. 저주라고 생각할때 그것은 나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 삶인것이다. 삶도 푸쿠도 행복도 모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는것 같다. 푸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생각의 차이이기에 오스카의 삶, 그리고 할아버지와 엄마인 밸리시아의 저주 또한 그들의 삶이었고 오스카의 짧지만 자신만이 사랑을 찾으려 했던 약간은 무모한 삶이지 않았나 싶다. 좀더 미래안적인 대처를 했더라면 결말은 달라질 수 있던 삶이었는데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