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상은 모든 길이 시작되는 곳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 정상엔 허공뿐이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Km, 남체 바자르 북동북 14Km 지점에 위치한 6440미터 봉우리 <촐라체>, 상민과 영교가 현실을 도피하여 만난 새로운 벽. 이 책을 읽기전에 작가의 <나마스테>를 읽었다. 나마스테는 히말라야 네팔에서 온 청년 카밀과 사비나 그리고 선우가 등장하여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문제에 대하여 쓴 소설이라하면 이 소설은 그들의 고향 네팔 히말라야를 바탕으로 하여 현실에서도 삶의 벽에 부딫힌 이들이 '촐라체'라는 빙벽과 그들 자신이 싸워서 이겨내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높은 산에 오른 것은 '속리산문장대' 였다. 뒷동산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였던 난 아파트 뒷산을 시작으로 하여 주위의 낮은 산들을 한걸음부터 시작하다보니 500m에서 700m 그리고 천미터를 오르게 되었다. 무엇이든 한걸음부터 시작이라는 맘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시작을 하니 내 건강은 물론 산에서 얻은것들이 너무 많아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계절마다 만나는 산의 다른 모습에 반하고 철마다 피는 야생화에 반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잊지 못해 늘 마음속에 산을 그리고 있었는데 한번이 실수로 사고를 당하고는 조금은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곧 다시 산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클라이밍소설이라 더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던 정선생과 상민,영교 형제는 촐라체에서 '만나자마자 우리는 서로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늘을 먼저 보았던 셈이었다.' 라고 표현되었듯 서로에게 드리워진 '그늘'을 보았기에 캠프지기를 했던 정선생 또한 상민과 영교형제를 자신의 모습처럼 받아 들이며 그곳을 지키지 않았나싶다. 이혼을 했지만 그녀를 잊지 못해 그녀가 처음으로 준 '차랑고'를 들고 촐라체를 찾은 남자 상민,그와 영교는 어머니로 인하여 형제가 된다.하지만 영교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지인을 칼부림하고는 도망치듯 상민과 촐라체로 달려왔기에 그속에는 늘 자신의 칼에 찔린 남자가 도사리고 있다. 정선생 또한 자신의 아들인 현우가 모든것을 버리고 산으로 향하며 '...그리워서' 라며 떠났기에 현실에서 방황을 하다 상민형제를 만나며 촐라체를 오르는 그들을 지켜본다.

자신들을 하루이틀 지탱해줄 장비만 챙겨 떠난 촐라체빙벽 클라이밍, 형제이지만 그들 사이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정상을 쉽게 오를 수 있으리란 생각과는 다르게 만나는 난관속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면서도 형제임을 확인하며 정상에 오르지만 정상엔 '허공' 뿐이다. 쉽게 좁혀지지 않던 둘 사이의 벽은 동생 영교가 크레바스에 추락하면서 벽은 허물어지고 만다. 자신이 살기 위하여 줄을 끊었다고 생각했던 형때문에 이를 악물고 살아나오려 했던 영교는 '열반에 든 자' 의 피켈로 크레바스를 빠져 나올 수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지만 둘이 함께 내려가기엔 너무도 험난 길. 형을 위해 미리 하산길을 떠나는 영교, 하지만 상민은 자신의 숙제처럼 여겨졌던 자신에게 산을 가르쳐준 형을 찾아 나서듯 떠난 길에서 영교가 만나 크레바스속 열반에 든 자의 양식으로 힘을 얻고는 하산을 하며 영교를 만나지만 그들의 몸은 벌써 만신창이가 된 상태. 그들을 죽음 직전에 발견한 캠프지기 정선생의 도움으로 살아 나올 수 있었지만 신체의 일부를 촐라체에 남기듯 잘라내야 했던 그들과 아직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던 정선생의 여행은 곧 히말라야로 달려가 빙벽 촐라체와 함께 하고프게 만든다.

이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될 때 그냥 지나치기만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때 관심을 조금만 더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에게는 현실에서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촐라체'를 하나 정도 가지고 있을터인데 막상 그 앞에 서서 한걸음부터 시작을 하면 허물지 못하는 벽이 없을 듯 하다. 오르지 않은 정상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것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영교의 말처럼 '허공' 만 존재할뿐 그 이상 무엇도 없다. 정상을 밟는다는 것보다 그 정상을 밟기 위하여 기울인 노력이나 땀의 의미가 더욱 깊게 새겨지는 촐라체, 형제이면서 서로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그들이 그들사이에 존재했던 크레바스가 없어지고 촐라체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든것을 버리고 비우고 '자신'으로 서로를 대했기 때문인듯 하다. 

조금 거리감이 있다 싶은 사람끼리 산에 가보라 그러면 그들의 시작과 끝은 정말 차이가 난다. 산을 오라다 보면 서로 손을 잡아 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을 하고 조분조분 이야기를 할 기회도 많이 생기기에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감은 하산길엔 볼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사랑의 증표인 차랑고' 마져 촐라체로 인하여 다시 연결고리가 되고 영교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도록 용서의 힘을 발휘하게 만든 촐라체의 여운은 책을 읽고 난 후 눈사태처럼 더 커져버려 놓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작가의 다른 책 <나마스테>와 함께 <촐라체>를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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