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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예전의 삶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은 재가 되어 버린다....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나의 모든 기능을 잃고 단지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다면 생은 내게 어떤 느낌일까..? 그런 절망의 순간에 쓴 글이라고 이 책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밝고 아름답다. 갑자기 찾아온 뇌졸증으로 온 몸의 기능을 잃었지만 세상과 마지막으로 소통할 수 있는 왼쪽 눈꺼풀, 그 눈꺼풀을 20만번 깜빡여 책 한권을 남기고 간 저널리스트 보비, 그의 마지막 날개짓이 너무 아름다우면서 슬프기만 하다.
나 또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하여 사십여일간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이 오면 얼마나 지루한 병원생활이 이어지는지 정말 창살없이 갇힌 감옥에서 그 긴시간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정신병아닌 정신병자가 될 것만 같은 착각에 잠시 옥상을 찾아 잠깐의 휴식과 자연과 바람을 만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내던 그 지루함이 그 또한 느꼈음을 읽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맺혔다.
잠수복을 입게 된 어제와 오늘을 놓고 볼때 생의 일부분을 지우라면 잠수복을 입던 날을 영원히 지워버리고 어제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던 날을 얼마나 절실하게 그리워 하고 그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값진 날이라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얻는 감사함이란... 마지막 절망앞에서도 절망에 굴하지 않고 남은 생을,주어진 생을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받아 들인 작가의 영혼의 대단함이란 정말 눈물겹다. 몇 미터 앞에 있는 책을 펼쳐 읽지도 못하고 앞에 앉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못하는 아빠이면서도 자신이 아이들에게 마지막을 남기려 하루에 반쪽 분량밖에 쓰지 못하지만 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이와 함께 그가 했던 처절한 몸부림은 한자 한자 온 몸으로 각인한 글자들은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그의 영혼처럼 움직임이 처절하게 묻어 있는 듯하여 읽는 동안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자신이 절망앞에서 병실앞에 까지 왔다가 되돌아 가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그, 다른이들이 생각하는 절망만큼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고 마지막 찰나까지 붙잡으로 노력함이 여실히 녹아나 있다. 자신을 올아맨 뇌졸증으로 인한 잠수복을 벗고 화려한 나비가 되어 날개짓을 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나비가 되려 버둥거린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그는 전해주고 잠수복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나의 여름이 병원에서의 지루한 자유와의 싸움이었듯이 그 또한 비슷한 시간에 병상에 있어서인지 글을 더 다가온것 같다. 길고 긴 여름이 끝나고 난 다시 날개짓을 위해 하루하루 나의 의지와 싸움중이어서 그가 전해준 ’아름다운 마지막 날개짓’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마침내 내 병실에 도착한 사람들의 표정은, 산소 호흡기 없이 깊은 물 속에 잠긴 잠수부의 표정과 흡사하다. 병실 문 앞까지 왔다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발길을 돌려 파리로 돌아가 버린 사람들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이중으로 고통스럽다.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특히 놓쳐 버린 기회에 대한 떨쳐 버리기 어려운 미련이라는 두 가지 감정 때문이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세계에서 한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지만, 반대로 한 달은 마치 번개처럼 순식간에 달아나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