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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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 들거나 직맹에 들거나 어쨌든 조그만 핑곗거리만 있으면 죽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까지도 증오했다...


자기 자신까지 증오했던 과거, 작가가 표현한  '기독교와 맑스주의' 인 손님은 그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끼쳤길래 자기 자신까지 증오하며 살게 만들었을까.. 황해도 신천마을에서 살던 형 류요한과 류요섭, 그들은 한국전쟁후에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지난날의 과오때문에 커튼으로 온집안의 햇빛을 차단한채 사는 요한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듯 지난 과거 그가 저질른 떠도는 영혼들 때문에 그의 일상은 평화롭지 못하다.

동생 요섭이 북한 방문을 하게 된 어느날, 북한으로 떠나기 삼일전에 갑자기 형 요한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화롭게 운명하였다 하지만 요섭은 석연치 못하다. 형을 화장하며 그는 남몰래 골편 하나를 챙겨 넣는다. 목사로 있는 그는 북한 방문에서 가족을 찾지 않으려 자신의 고향을 거짓으로 답했지만 북한측에서 그에게 은밀히 접근하듯 하여 그의 고향방문과 가족들을 상봉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형이 전쟁중에 저질른 과오, 형의 손에 의해 죽어간 영혼들이 그의 곁을 떠돈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만나기도 하고 고향을 방문하며 지난 과거와 영혼들과의 화해를 하듯 형의 지난날을 풀어 가난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평범하던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아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든다. 자신이 살기 위하여 남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 그렇게 <손님>은 신천마을 사람들의 삶을 엄청난 힘으로 뒤흔들어 놓고는 역사에 오점을 남기듯 그 과거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다시금 그 과거와 화해를 하게 하듯 살아 남은자들의 발길을 그 상흔의 장소로 이끈다.

적은 내부에 있듯이 그들 자신속에 자리한 이념이 무엇이길래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보아야 했는지 작가는 황해도의 뻣뻣한 사투리와 함께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과 함께 그들의 혼을 달래기라도 하듯 함께 과거와 현재로의 여행을 하며 화해를 해 나간다.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 했는데 읽고 나명 수긍을 하게 만든다. 방북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기도 하고 이 책을 읽는 때 마춤하여 신문의 한귀퉁이를 장식한 그의 발언은 5.18이라 그런지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과 <오래된 정원>을 읽은 독자로 그가 왜 그런 발언을 해야 했나 생각을 잠시 해 보며 요섭이 형의 골편을 고향땅에 묻음으로 인하여 그를 불면의 밤으로 이끌던 영혼들과 작별을 하게 되지만 내겐 더 무거운 짐만 남은 듯 한 느낌이었다. 작가가 기록하지 않았으면 역사에 그냥 묻혀 버렸을 황해도 지방의 전쟁의 상흔은 그를 통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져 언제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읽고 싶은 작품이다. 우린 어쩌면 아픈 상처라고 하여 덧날까봐 쉬쉬하며 덮어두려고만 했지 꺼내어 다독이며 화해하고 작가의 진혼곡처럼 상흔을 달래려고 했던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 '손님' 이 표지의 무거움처럼 한동안 무겁게 가슴을 내리 누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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