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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ㅣ 청소년 현대 문학선 8
김주영 지음, 정현주 그림 / 문이당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멸치는 제일 작지만 고래보다 크고 의젓하며,강직하고 담대한 어족이다.그리고 내장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몸체로
일상을 살면서도 알을 밴 흔적만은 감추는 은둔자의 삶을 산다..
<홍어>에 이어 읽은 멸치는 홍어에서는 아버지의 부재였지만 이 소설은 어머니의 부재이다.집을 나간 어머니, 어머니의 부재로 인하여 외삼촌과의 관계도 소원하게 된 아버지, 그는 포수이지만 사냥을 나가서 돌아올땐 언제나 빈손이다. 그가 포획한 것은 토끼새끼 한마리 여지껏 그의 아들도 마을사람들도 구경을 하지 못했기에 그를 신뢰하지는 않는다.
어머니의 집나감과 동시에 아버지는 외가댁을 자신이 차지하고 외삼촌은 내 쫓듯 하여 배가 다른 외삼촌은 유수지근처에 움막을 짓고 산다. 그는 염소 한마리와 함께 살면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도통 모를 정도로 그가 음식을 먹는 것을 본적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네살의 대섭은 어느날 동네친구들과 쥐불놀이를 하다가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하기 위하여 쥐의 몸에 휘발유를 묻히고 성냥불을 그었던 것이 학교 옆 사택의 창고를 태우는 불을 내고 만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이미 창고는 타서 재가 되었기에 그는 외삼촌의 움막으로 피한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엔 이웃마을을 여자가 드나들며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려 하는데 대섭은 그녀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움막으로 가져다 주는 도시락을 받아 먹기는 하지만 그녀와의 마주침은 피한다.
외삼촌과 움막에서 지내며 유수지 주변의 자연에 눈을 뜨는 소년, 너구리 굴이며 새를 관찰하는 일이라든가 외삼촌의 일상을 좀더 가까이 접해가는 소년의 눈에는 외삼촌과 아버지의 관계며 집에 드나드는 여인의 관계등 자신이 풀 수 있는 방법으로 풀고 싶어 아버지가 외삼촌과 함께 사냥을 가기로 했다며 외삼촌과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 거짓말은 진짜처럼 받아 들여지고 아버지와 외삼촌 그리고 소년은 멧돼지 사냥을 나가게 된다. 멧돼지 사냥을 성공한다면 그 소문에 어머니가 돌아올수도 있다는 소년의 생각, 하지만 사냥의 성공률은 아버지의 천식으로 볼때에 성공율이 낮지만 외삼촌을 믿어본다. 유수지 주변의 동물들의 동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외삼촌, 그를 믿고 사냥에 나선 아버지와 그외 사람들.
외삼촌의 동물적 감각에 의해 멧돼지를 사냥하게 되지만 아버지가 맞추었다고 생각한 부위가 아니고 멧돼지는 총을 맞아 죽은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죽어 있다. 그리고 멧돼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외삼촌. 마을에서는 멧돼지 사냥의 성공으로 축제분위기이지만 소년은 유슈지 외삼촌의 움막으로 외삼촌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외삼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년은 유수지 물 속으로 잠수 하여 들어가 외삼촌의 흔적을 찾아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러던 그의 눈에 멸치떼가 보인다.
내게 있어 아버지라는 명사에 묻어 있는 상념은 불안감이었다. 어머니처럼 어느 날 문득 내 곁을 속절없이 떠나 버릴 것 같은 매몰참이 아버지의 표정에서도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설득이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혀에 있는 것일까.아니면 눈이나 귀에 있는 것일까.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강물은 흘러가도 본래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강의 미덕을 잃어버린 탓이다. 그러니까 강은 흘러가는 그대로 두어야 온전한 강의 모습을 지탱한다.
민물에 살지 않는 멸치떼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멸치 떼는 내장까지 환하게 들여다보일 만치 투명했기 때문에 물결 위로 떼 지어 내려앉는 햇살 그 자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햇살이었을까.. 외삼촌과 아버지의 합작으로 인하여 멧돼지 사냥은 성공을 거두고 외삼촌의 작살로 인하여 그도 큰 상처를 입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를 위하여 멧돼지를 죽여주고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외삼촌, 그 둘 사이엔 '소년의 어머니' 가 자리하고 있다. 외삼촌과의 관계를 의심했던 아버지와 아버지 옆에 어머니가 있는 것을 온전한 사랑으로 여겼던 외삼촌의 관계는 사냥의 성공으로 인하여 모두 풀어진 것일까.. 소설은 모호함을 남겨주며 민물에 살지 않는 멸치떼를 등장시켜 아직 소설이 끝나지 않은 것과 같은 여운을 독자들에게 남겨준다. 하지만 유수지 주변의 아름다움과 작가 특유의 우리말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쓰는 문체는 정말 그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느낌이 뭐랄까 무언가 유수지 깊은 곳에 가라 앉은 무언지 모를 앙금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여운을 따라 '작가의 말'을 다시 한번 더 읽어 보았다. 작가는 멸치에 대한 그의 느낌을 세세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 소설 또한 그 멸치를 바라보는 작가의 느낌처럼 모든 것이 '작가의 말'에 함축되어 담겨 있듯 속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면서도 알을 배면 '은닉' 한듯 보이지 않는 모호함이 잘 들어나 있는 말이 그가 표현한 '은둔자의 삶' 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외삼촌의 주거지였던 움막과 유수지, 유수지 그 심연에서 멸치떼와 함께 하나가 되어 노니는 소년의 모습이 경이롭게 보이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