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청소년 현대 문학선 1
김주영 지음, 김세현 그림 / 문이당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그것은 사람들이 가오리라고 말하기도 하는 '홍어' 였다. 언제나 부엌 문설주에 너부죽하게 꿰어 매달려 연기와 그을음을 뒤집어 쓰고 있던 말린 홍어가 보이지 않았다. 하찮은 홍어포 한 마리였지만,그것은 어머니에겐 내가 아홉 살 되던 해부터 집을 떠나 버린 아버지로 대신될 만한 건어물이었다. 

작가의 다른 책인 <객주>에서도 보면 우리말사전이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낯설기도 하고 곰삯은 맛이 나는 우리말이 많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간혹간혹 만나게 되는 잘 쓰지 않거나 잊혀져진듯한 우리말들이 작가만의 묘미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홍어, 그 홍어를 부엌 문설주에 걸어 놓아 언제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처럼 집나간 남편을 대하듯 하던 홍어가 눈이 무척이나 많이 내린 날 밤 낯선 여자가 부엌에 들어서 잠을 자면서 홍어의 그림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깐깐하기로 소문이 난 어머니는 남편이 집을 나간뒤로 바깥 출입을 할때도 소복을 단정히 입고 나간다. 삯바느질로 집안이 생계를 이어나가던 어머니와 열네살의 아들 세영에겐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로 이렇다 할 일이 없던 집에 지난 과거를 씻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듯 12월 3일에 어머니가 이름을 지은 '삼례' 가 들이닥치면서 부터 어머니와 아들의 삶은 변하기 시작한다. 삼례가 읍에 드나들면서부터 삯바늘질 거리가 늘어나기도 하여 좋았지만 그녀는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집을 나가고 만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그녀의 등장으로 인하여 어머니의 삶에도 변화가 일고 그녀에게 정을 주었던 어머니는 표현은 하지 않지만 많이 실망을 한다.

그로부터 낯선 여인이 아이를 업고 와서는 '호영' 이라는 아이를 놓고 달아나기도 하고 그들의 옆집에 사는 알듯 모를듯 하는 남자의 정체 또한 묘하다. 호영이가 들어옴으로 하여 어머니는 장에 나가 수탉과 함께 암탉 두마리를 산다. 닭이 나은 알을 호영에게 먹이려는 어머니, 그런 수탉을 옆집 개인 누룽지가 물어 죽이면서 옆집 남자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고 바느질 일손이 덜기 위해 들인 아줌마와 옆집 남자와의 묘연한 관계. 어머니는 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게 되어 외삼촌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는데 어느날 외삼촌이 온다며 부산하게 집안을 정리하기도 한다. 외삼촌의 등장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근처에 있거나 집에 올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세영,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출현이 반갑지만은 않다. 

세간살이도 정갈하게 다시 정리하고 집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고치고 아버지 맞을 준비를 하던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 오시고 그날밤에 눈이 소복히 내린 아침, 불현듯 어머니의 그림자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이었까. 간간히 읍에서 술집에 있던 삼례를 찾아가 그녀에게 술집에서 벗어날 돈을 마련해 주기도 하고 자신의 외가 친척이라 하며 거두어 주었던 삼례를 찾아간 것일까. 모호하게 보였던 세상은 소년의 사팔눈 때문인지 아님 다른 이유인지 소설은 모호하게 끝난다. 하지만 소설속의 풍경은 어린날의 추억을 되살려 주기에 만족스러우며 옛 사진을 들추어 보듯 흑백사진처럼 펼쳐지는 풍경들은 그 영상만으로도 좋은데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가 한몫을 하여 더욱 좋다. 다른 소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 알듯 모를듯한 애매함이 서려있기는 하지만 특이하면서도 참 아름다운 소설이라 좋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흔적처럼 늘 부엌에 걸려 있던 홍어, 삭힌 홍어의 새콤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맛이 이 소설에 들어 있는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