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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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작가의 완숙함이 엿보이는 단편들이 읽는 동안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노년문학' 을 거론할 정도로 작가의 연륜도 만만치 않은데 아직도 왕성한 활동에 글에서 그 원숙함이 살아 있어 더 친근감이 더해진다. 이 책의 단편들은 중년을 지나 60대나 70대의 세대를 만나는 이야기들이 많아 다음 작품들에 대하여 더 기대를 가지게 한다.

그리움을 위하여... 자신은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집일을 돌봐주던 사촌동생이 다시 찾은 사랑과 그리움이 큰 충격으로 전해졌던 작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남해의 섬, 노란 은행잎이 푸른 잔디 위로 지는 곳,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그런 섬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그리움이 샘물처럼 고인다. 

그 남자네 집... 얼마전에 티비에서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동네를 작가와 독일번역작가인가 하는 사람이 찾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의 옛 기억을 찾던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작가의 예전 기억의 동네를 찾던 것이 이 작품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옛 추억을 더듬던 그가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라는 마지막 맨트처럼 아껴두었던 추억의 쓸쓸함이 묻어났던 작품이다.

단편들은 60~70대의 삶과 부딫히고 있는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마흔아홉 살' 에서는 고부간의 갈등이 시부의 팬티를 세탁기에 집게로 집어 던져 넣으며 '쨍그랑' 소리라도 나듯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그녀가 효부회의 회장이 되어 홀로된 노인들의 하초를 주무르듯 닦아주며 친구들에게 문제가 되기도 하고 후남아 밥먹어라에서는 나름 결혼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듯 미국에 가서 결혼생활을 하는 그녀는 아이들도 장성하여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치매가 찾아와 자신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 친정엄마를 보면서 예전에 엄마가 자신을 부르던 '후남아 밥 먹어라' 라는 말에 그동안 평생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스르 놓아버리듯 하며 밥 뜸 드는 냄새와 연기 냄새 흙냄새와 어우러진 기막힌 냄새들이 '후남아 밥 먹어라' 라고 엄마가 다시 한번 불러 주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듯한 아련함.. 

시골에서 교장으로 퇴직한 그가 아들과 손자들을 보기 위해 며느리의 살탕발림같은 말에 현혹되어 잘나가는 동네에 같은 아파트를 평수가 다른 것으로 두 집을 장만하여 늘 자식들 집의 불빛을 보며 살지만 그게 자식들에게는 올가미가 되고 그들에게도 올가미가 되는 식탁을 밝혀줄 초를 사면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거저나 마찬가지' 에서도 친척의 회사에서 만났던 언니의 번역일을 봐주며 알바처럼 받은 돈을 모아 오백만으로 그녀의 별장을 빌려 살게된 그녀를 점점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그녀를 별장지기처럼 '거저나 마찬가지' 의 취급을 하는 당하며 그녀가 생각해낸 탈출구는 동거남의 아이를 갖는것, 삶의 벽에 부딫힌듯 하면서도 그들나름의 타계책으로 새로운 삶을 헤쳐나가는 삶이 읽는 묘미를 준다. 삶이란 정말 살아볼만 한 것이다. 그 귀절에 맞는 단편으로 '대범한 밥상' 의 이야기는 우리의 오해와는 다르게 삶을 그들만의 방법으로 헤쳐나가는 새로운 삶이 그려진다. 아들과 딸을 잃은 사돈지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들때문에 한집에서 살고 한 밥상에서 밥을 먹고, 동거를 하게 된 이야기.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삶이 끝났다고 보는 순간, 새로운 삶이 그들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만든 작가만의 해결책에서 연륜이 묻어난다.삶이 작가를 만나 좀더 폭 삭아 발효가 된 듯한 단편들이 희망을 안겨준다. 나 또한 칠순이 넘은 부모님이 계시기에 소개된 단편들이 좀더 가까이 다가와 안겨 생각할 틈을 주었다. 내 엄마가 만약에 치매에 걸렸다면 다른 식구들은 엄마를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내 일상이며 내 삶이란 것을, '인기척을 내기에는 이미 늦어 버리기도 했지만 그들의 목소리에서는 맛있는 걸 저희들끼리만 휘딱 먹어치워버리려는 다급하고도고 게걸스러운 식욕 같은 게 느껴졌다.'  남의 입에 오르면 이런 게걸스러운 소재로 여겨질 삶의 무게가 내가 닥치면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 단편들이 늘 먹던 평범한 밥상같은 밋밋함이 있는듯 하면서도 나름 좋았던 책이다. 이번 기회에 작가의 미루어 두었던 책들을 읽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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