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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걷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
강제윤 지음 / 홍익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그 섬에 가고 싶다...
’나는 인간은 ’동물’ 이라는 사실에 더 주목한다. 다시 말하자면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일훈<모형 속을 걷다>
언제부터일까 국내여행중에서도 유독 ’섬여행’을 해보고 싶어 우리나라 유인도에 대한 자료가 모여 있는 것을 포스팅해 놓았던 적이 있다. 가족과 가끔 여행을 하다보니 유인도이면서 조금 크다 싶은 섬을 돌아보는 여행도 꽤 괜찮은것 같아 가족들 의견을 물어보니 좋다고 하여 07년에 통영 비진도에 오월 황금휴가를 기해 가려고 계획을 해 놓았는데 아뿔싸, 산행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모든것은 수포가 되고 말았다. 처음으로 섬이라고 가본곳이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 이었다. 그것도 야밤에 긴가민가 하면서 들어가서 겨우 모텔잡아 짐 풀고 저녁먹고 잠자기 바빠서 섬이란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거제도> 그리고 <외도>에 들어가며 <지심도>를 가려 했지만 뱃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는 설명을 들으며 지나는 것으로 만족했다. 거제도에서 <소매물도>와 <매물도>도 그냥 눈으로 만족하며 돌아 나왔다. 그리곤 간곳이 가까운 <간월도>와 유람선을 타고 유람한 <난지도> 07년 10월에 <신안 증도>를 갔다. 민박을 잡아 일박을 하리라던 예정은 섬에 들어가서 보니 한바퀴 돌아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여 올라오며 더 많은 여행을 했던 기억이 난다.그래도 그 한적함만은 잊지 못한다.
하지만 작가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혼자서 걸어서 여행을 하니 그야말로 <섬>이 자신안에 들어올 수 있었던것 같다. 가족이나 여럿이 모여서 섬에 들어간다면 세세하게 섬을 둘러 보기에는 의견이 맞지 않을것 같다. 우리는 조용하고 순수함 보다는 시끌벅적하고 때가 묻은 세상에 어울려지내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때론 섬여행을 가면 심심하기도 하고 얼른 뭍으로 나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도 하다. 섬에 들어가면 익숙지 못한 심한 바람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뭍보다는 부족한 것들이 많으니 쉽게 이용하던 슈퍼도 드물고 무엇하나 쉽게 구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짐을 풀지를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때론 모든것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모르고 <고립>의 시간속에 파묻힐 수 있는 섬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문득 문득 든다.
작가는 섬에서 태어나서인지 섬생활에 익숙해 보이는 것 같다. 육지와는 동떨어져 있어 그야말로 노인들만 긴시간을 지키고 있는 듯한 섬, 그들은 그곳이 자신들의 세상이기에 그곳을 벗어나 생활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다. 섬노인들은 섬에 맞추어 섬이 된듯한 생활이다. 이 책에서 섬에 대한 여행정보를 얻을 생각은 말아야 한다. 섬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질박함이 녹아나 있고 작가의 단절된 문화에 대한 지식과 섬에 대한 역사를 비롯해 <섬>으로 남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다. 가끔 만나는 섬을 닮고 바다를 닮고 달을 닮고 섬노인들을 닮은 그의 시가 가슴을 울린다.
한번쯤 이렇게 미련없이 모든 것을 비우고 떠나고픈 생각이 간절하게 만드는 책이다. 여행은 또 다른 나와 만나는 것이며 비우는 연습이라고 했던가. 그는 우리나라 유인도 500여개 중에서 3년만에 100여개의 섬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 안에 아직 살아 숨쉬는 우리나라 섬을 담아 두며 더이상 섬이란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든다. 섬도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며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는 곳이며 더이상 육지화 되어 섬으로의 역활을 망각하는 것보다 섬으로 남길 바라는,섬으로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다. ’섬의 보물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릴 것이 또한 두렵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섬의 길은 시작이 없고 끝도 없다. 길은 섬 안의 어느 곳으로도 열려 있으나 섬 밖의 어느 곳으로도 닫혀 있다.’
배에서 첫발을 섬에 내딛는 순간은 모든 것들이 내게로 열려 있다. 섬은 곧 내 앞에 잡을 듯이 있고 한뼘밖에 되지 않는것 같아 작은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다. 그곳이 ’삶’이라 생각하며 여행을 했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으련만 기대보다 시시함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보면 바다가 길을 막는다. 배가 없이 일렁이는 파도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도 없고 그렇게 유일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수단인 배를 선착장에서 기다리다 보면 별별 생각들이 다 든다. 내가 살지 않고 더군다나 낯선 단어인 <섬>은 자신의 가슴을 쉽게 풀어 헤치지 않는다. 섬을 떠나는 배에 올라타고서야 비로소 <섬>이 보인다. 아쉬움에 점점 그 크기마져 작아져 한 점이 되고 만다.그 아쉬움을 만나러 섬여행을 하고 픈 것일까.
실상 삶에는 표지석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삶은 정해진 방향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가 걸어간 길에는 <정>이 묻어 난다. 섬사람으로 자라서인지 섬사람속에 유난히 잘 비집고 들어가 자기의 자리를 만든다. 그렇게 바다도 되고 바람도 되고 길도 되고 다 허물어진 절터가 되었다가 이름없는 무덤이 되었다가 해변을 걷는 백구가 되었다가 붉디 붉은 동백이 되었다가 다시금 그 자신으로 돌아온다. 동물과 짐승의 차이는 ’동물은 움직이는 것’이라 하여 걷기를 택했다는 그가 부럽다. 그만이 누렸을 섬에서의 자유와 외로움이 사진과 글에서 떠나지 못하게 잡는다. 자유롭게 발길 닿는 대로 그가 걸어 갔을 섬여행에는 ’자유와 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보존해야 될것들에 대한 날카로운 그의 생각이 한자리 깊게 파고 들어 있어 더 좋다. 인생의 스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내 이웃에 있다는 것을, 자식을 걱정하는 팔순의 노모에게서 삶의 나침반 같은 이야기를 듣을 수 있고 아직 식지 않은 정이 남아 있는 따스함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섬여행 언젠가는 그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