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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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읽다
 
 
책표지의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곁눈질을 하듯 검은 눈동자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흰동자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음이 무언가 그 눈속에 숨기고 있음이 들어난다. 잘 치장한 그녀지만 자신의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위장처럼 보여진다. <무서운 그림>이라고 하여 무서운 그림들만 나오는줄 알았는데 무서움보다는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작가가 그림을 그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이나 그림에 감추어진 '두려움' 등을 작가가 보는 선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음 그림으로 우리가 미술시간에 흔하게 접하던 크로키의 대가 '에드가 드가의 에투알' 우아한 발레의 한 장면을 멋지게 잡아 내었다고 그렇게 배웠건만 작가는 다른 표현으로 이 그림을 말한다. 발레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며 작가가 그릴당시에는 지금처럼 예술의 한 분야인 발레가 아니었으며 무대뒤에서 '에투알'의 후원자가,그녀를 돈으로 산 사내가 서 있는 것이다. 그녀를 산 사내가 무대 뒤에서 너무도 당당히 쳐다보고 있기에 현실의 비판의식을 가지지 않고 아름다운 그림을 한 점 그려낸것이 '무서움'이라 표현했다.
 
뭉크의 사춘기,그는 사춘기나 다른 작품보다도 <절규>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그림의 특징들은 그의 비참한 가족사를 겪은 그의 감정들이 잘 나타남을 말해준다. 그의 정신적인 불안신경증과 피해망상이 그림에 녹아나 있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다섯살때 죽고 그가 열네살때 누나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뒤 아버지도 뭉크가 수물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으며 몇 년 뒤에 남동생도 죽고 여동생은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병과 광기와 죽음이 내 요람 위를 떠돌았고 내 온 생애에 걸쳐 내게 따라 붙은 검은 천사가 되었다.' 라는 그의 이야기처럼 그의 그림은 그런 그의 마음의 표현인듯 하다.
 
자기 여동생을 사랑했던 크노프의 '버려진 거리' 무언가 그림에서 음산함하고 모래위의 성처럼 견고해 보이지만 금방이라도 파도에 휩쓸려 무너질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몽환적이면서도 암산한 그림. 평생 자신의 여동생만을 사랑하며 자신의 그림속에 여동생의 얼굴만 그렸던 그이기에 그의 그림은 무언가 그의 잘못된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암울하다. 작가는 이 그림은 추억에 사로잡힌 채 파멸해 가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 오기 때문에 무섭다고 했다.
 
그외 여기에 등장하는 브론치노의 <사랑의 우의>는 그림의 괴이함이 무섭다고 했으며 브뢰겔의 <교수대 위의 까치>는 교수대 근처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그들의 모습은 둥글둥글 하지만 그들이 교수대 근처에서 모여 있는 것은 당시에 만연하던 '밀고'. 그러지 않으면 밀고를 당할까 하여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이 두렵다 했다. 르동의 <키클롭스>.. 커다란 한눈으로 잠자는 알몸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색채가 풍부하지만 이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는 흑색, 고독,죽음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색채가 다양해졌다고 한다. 그의 유년시절은 부모에게서 버림받듯 하여 그 암울함이 그림에 녹아난듯 하다. 그 암울한 유년기를 벗어나려 노력한것이 환갑이 되어서야 진가가 나타났다하니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 감개무량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그림들은 우리가 그냥 보여지는 그림으로 보기보다는 그림에 숨겨진 작가의 내력이나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역사적 사실들에 촛점을 맞추어 그림을 재해석하듯 하여 그림을 다시 보게끔 만든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보면 그림들은 <무섭게> 다가온다. 당당함과 자신감이 묻어나는 홀바인의 <헨리 8세>의 그림도 무차별적으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람을 처형해 나가는 황제밑에서 그를 그려야 했던 홀바인의 공포를 무서움이라 표현했으며 호가스의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에서는 딱딱한 어른들의 복식속에 갇혀 있는 하는 아이들의 웃음과 뒷배경으로 그려진 죽음의 그림자,그림이 완성되고 막내가 죽는 일이 발생하면서 그림에서는 막내의 죽음을 암시하듯 그려진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움이라 했다. 다비드의 <마리 앙투아네트 최후의 초상>이나 일랴 레핀의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아들> 그림에서는 그토록 사랑하고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려 했던 장남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괴로워하는 이반 뇌제의 처절한 눈빛이 무서움이라 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천재지변도 유령도 아닌 바로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마음에 새겼기에 곁눈질하는 '사기꾼'의 번득이는 눈을 그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 마지막에도 말했듯이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이 숨김없이 잘 표현한 그림들을 무서움이라 했다. 제목처럼 <무서운 그림>이라 내용도 무척 무서운 내용인가 했지만 그림을 설명하며 작가의 모르는 부분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 같아 괜찮았다.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느낌 조금더 읽고 싶은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면서도 거기에 인간의 마음까지 숨김없이 표현해 내었으니 무서운 그림보다는 또 다른 인간의 다른 면을 그림이 표현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명화를 보는 또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다. 명화를 이렇게 읽으니 더 가깝게 느껴지며 서양화가 아닌 우리 그림들도 이런 관점에서 만난다면 더 재미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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