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관춘' 을 배경으로 하여 8개의 이야기가 단락단락 나뉘어진 연작소설이다.일락서산(日落西山), 화무십일(花無十日), 행운유수(行雲流水), 녹수청산(修水靑山), 공산토월(空山吐月), 관산추정(冠山秋情), 여요주서(麗謠註書), 월곡후야(月谷後夜), 이렇게 8개의 이야기가 제목부터 한문으로 쓰여져 있으며 본문에서 한문과 사투리가 많이 나오지만 그리 딱딱하지 않고 읽으면 읽을수록 구수하면서도 정감이 어린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배경은 70년대로 관촌은 예전에 보령쯤인듯 하다. 근처 홍성등이 나오기도 하며 서해안 지방의 구수한 사투리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는 구수함으로 더해져 빡빡함속에서도 빛을 발해 읽으며 가끔 웃음을 짓게 만든다. 작가가 한문을 많이 구사한것은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한 할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 하다. 무서우면서 어려움의 대상이었던 할아버지는 피하려 하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근간根幹이 되어있음을 소설속에서도 나타낸다.
 
일락서산...'부디,족보만은 잘 간수해야 허느니라..'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 사대부의 가문이었다가 당신의 대에서 그치고 한갓 유생에 머물러 선대에 못 댄 한이 맺혀 '족보' 만은 잘 간수하라는 마지막 말씀이 읽는 내 가슴에도 맺히는듯 안타까움으로 자리한다. 살아 생전에는 엄하면서도 한집안의 기둥으로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하였지만 그러면서도 작가에겐 간식거리를 기꺼이 나누어 주시고 인자함까지 보여주셨기에 더욱 어른으로 자리한 할아버지,내게도 그런 희미한 추억의 할아버지 모습이 남아 있어서일까 더욱 애잔하게 읽혀진 부분이다.
 
화무십일.. 북에서 피난 내려온 윤영감네 이야기. 어찌어찌 하다가 행랑살이를 하듯 작가네 집에서 잡다한 일들을 해주며 피난생활을 하던 윤영감네의 안타까운 이야기. 피나 내려오던 길에 만난 부모를 잃은 고아를 며느리로 맞아 들이고 아들을 전장에 보내지 않기 위해 숨겨 생활하다 바람난 며느리가 손주를 데리고 집을 나감으로 인하여 아들이 목 매달아 죽고 윤영감네마져 며느리를 찾아 떠나는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 화무십일,작가가 말하려 하던 것은 윤영감네의 행랑살이의 짧은 행복을 화무십일이라 표현했을까 아님 며느리를 빗대어 표현했을까.. 관촌에서 작가자신도 어쩌면 화무십일이나 마찬가지 아니였을까.
 
관촌에서 작가의 삶에서 '옹점'이와 '대복' 가 없었다면 이 소설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을 것이다.작가 자신의 삶에서 옹점이와 대복이가 차지하는 부분은 상당히 컸으리라 본다. 그들이 있어 유년시절의 추억거리가 살아 움직이듯이 펼쳐질 수 있었고 그의 곁에서 옹점이는 작가의 손과 발이 되어 주듯 하며 능수능란한 살림솜씨며 어른들 속에서 작가를 보호하며 힘이 되어준 존재인것 같다.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누구나 한명쯤 이렇게 깊게 잔영을 남긴 친구나 인물들이 존재할 터인데 자기자신과는 신분이 다르다면 다른 '옹점'이며 '대복'이가 있어 관촌수필이 더욱 빛날 수 있었으리라.
 
이 소설을 읽으며 난 박경리 선생의 '토지'가 생각났다. 토지에 비유한다면 '토지 그 이후' 의 삶이 되겠다 싶을 정도로 관촌의 인물들을 자세하면서도 어느 이야기 하나 모가나지 않도록 잘 다듬고 관촌에 꼭 있어야하는 인물처럼 잘 그려주어 읽는 맛과 함께 그곳에 가고 싶을 정도로 넘 잘 쓴 소설이 맛깔난 음식을 먹은것처럼 읽는내내 기분이 좋았다. 너무 빨리 읽으면 채할것 같고 할아버지의 벽장속에 감추어둔 '꿀단지'처럼 야금야금 아껴먹어야 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아껴서 느리게 음미하며 읽어야 할것 같아 뜸을 들이며 읽었다. 한문이 나와 어려움은 없을까 지레 걱정하였지만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고 우리 70년대의 잊고 있던 추억을 되새김질 하듯 이 소설을 만난다면 잠시 푸근함에 빠져 들 수 있다. 작가의 유년이 추억을 되새기는 자전적 소설이 내 잊었던 유년시절을 들추이며 나도 한번 되돌아보며 앞마당에 퍼질러 앉아 공기놀이를 하던 동무들을 되새겨보게 만든 '관촌수필' 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만났다는 것이 큰 행운으로 자리하여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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