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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만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떠남과 만남' 여행이란 일상에서의 떠남이고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랄까.작가가 의도한 주제에 근접한 답인지 모르겠지만 나 나름의 해석이라면 그렇게 정의하고 싶다.이 책을 펼쳐든것은 그가 떠난 남도여행을 살짝 엿보고 싶었고 나 또한 그런 여행을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내 안에 꿈 꾸고 있기에 책을 들었다.첫 페이지에 그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그려진 남도여행 지도는 내 부러움의 목표물로 충분했다.모든것을 뒤로 한 채 그저 걷기와 히치하이킹으로 새로운 사람과 사물과 풍경과 그외 모든것들을 만나고 픈, 나 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누구나 간직한 꿈일지 모른다.
내 모든 일상을 잠깐 접은 채 베낭 하나 둘러 메고 떠난것은 보통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십여년에 한번씩 자신에게 한달간의 쉴 여유를 주는 작가는 이십여년 근무한덕에 두달간의 자신만의 여유 시간을 가지고 남도 여행을 떠난다.구례에서 시작한 남도 여행은 잠깐 잠깐 들른 여행지가 있어 나름 더 옆에 한자리 끼어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벚나무가 즐비하게 늘어 선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따라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이곳 저곳 발길 닿는대로 들러 쉬고 싶을때 쉬며 정말 섬진강을 제대로 즐기면서 여행하고픈 소망,그 마음을 대신하기에 이 책은 약간의 내 소화제 역할을 한듯 하다.
목적지를 정하고 하는 여행은 웬지 넥타이를 매고 하는 여행처럼 답답하다. 하지만 목적지보다는 발길이 가는 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하는 자유여행이 여행다운 여행인듯 싶다. 그러면서 누군가 흘리고 간 여행의 뒷이야기를 살짝 주워 드는것도 맛인듯 하다.해안가를 거닐다 만나는 굴 캐는 할머니들이며 누군가 모래사장위에 써 놓고 간 '나의 신부,영원히 사랑한다.' 등의 흔적에서 무언가 빈 존재감을 주워 드는 맛도 남다를 듯 하다.여행은 그냥 눈으로 즐기는 여행도 있지만 내 지식의 창고에 쌓인 고리타분한 것들을 꺼내어 바닷물에 깨끗이 씻어 가면 짜맞추며 다니는 지식여행도 즐거울 듯 하다.나 또한 여행을 하기전에는 그곳에 대한 사전지식을 검색하고 프린트해서 들고 다니면 찾아보기도 한다. 작가만큼의 넘치는 지식은 아니어도 벌교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꼬막 소화다리' 등 연상할 수 있는 그러면서 무언가 하나 확인하듯 하는 여행,새로운 것의 만남이다.
솔직히 아직은 혼자하는 여행을 해보지 못했기에 작가가 느꼈을 여행간의 외로움이나 그리움 등은 경험해보지 못했다.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뿐만이 아니라 그가 말한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혼자 있으면 함께 있고 싶다.함께 있다 혼자 있게 되면 그립고, 혼자 있게 되면 작은 일로도 서로 다툰다.그렇게 얼고 녹고 다시 얼고 녹으면서 마침내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또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23p 살다보니 그런 감정들을 이제는 조금은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늘 함께 있다 출장이라도 가서 혼자 있게 되면 빈자리가 무척이나 허전하고 옆에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듯이 혼자만의 여행을 한다면 옆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것 같다.
작가는 여행중에 섬진강변에 버려진 빈 병 하나를 보면서도 진리를 깨우치듯 일깨워준다.
ㅡ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런 사람은 섬진강에 오지 마라.슬픈 사람만 와라.자기를 잃은 사람만 와라.저 푸른 강물에 자기를 두고 간 사람만 와라.다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만 와라. - 29p
비단 슬픈 사람만 섬진강에 갈 수 있는것도 아니요,자기를 잃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강물에 자기를 두고 간 사람만 갈 수 있는것이 아니련만 괜히 글귀처럼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슬퍼질 듯 하고 내 자신을 잃을것 같으며 푸른 강물에 내 자신을 두고 올것만 같다. 압록을 여행할때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섬진강물을 바라보았을때의 느낌이 그러한듯 하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내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 싶었지만 물음표의 더욱 깊게 내 가슴을 파고 든듯 했다.말 없이 흐르는 물이건만 유독 섬진강물이 왜 화두같은 의미로 던져지는지. 다시 꼭 찾고 싶은 섬진강이 작가때문에 의미가 더 늘어난듯 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처음엔 설레임이 후반부에 들어서면 수도를 하고 나온 수도승처럼 무언가 한자락 철학을 걸머쥐고 온것 같은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를 한다.그것은 아마도 비우고 새로운 무언가로 채웠기 때문에 신선한 지식이 파고 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ㅡ산다는 것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그것은 어리석음이며 미련이며 우유부단함이다.그러고는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고 그것이 차마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135p
ㅡ 작지만 전통적으로 지은 한옥 속에 들어가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걸 보면 어쩌할 수 없는 토종인가 보다.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흙이 그리워지는 것이다.살면서 흙이 좋아져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흙 속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지 않아야 죽음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 261p
ㅡ 인생은 길이다.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이다. 마음이 모질고 팍팍하여 한 그루의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길일 수도 있다.그러나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천촌리의 길처럼 솔잎이 깔려 있고 동백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길일 수도 있다.나도 인생의 어느 부분인가에 솔잎이 깔리고 주위가 꽃이 가득한 그런 부드럽고 포근한 길이고 싶다. -266p
책을 읽어나가보니 작가와 함께 홍주를 한잔 하며 작가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기분이다. 그 길 위에는 떨어진 솔잎도 있고 동백꽃도 있고 나뭇잎도 있고 누군가 먼저 걸어간 발자국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 주워 들으려 하지 않고 그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 다면 괜찮을 듯 하다.여행을 할때는 어느 한 곳을 목표로 가는 것보다는 어느 지역을 정하고 가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유명한 곳을 점을 찍듯이 들리다 보면 남는 것이 없다. 천천히 느림이 미학을 느끼며 누군가 놓치고간 부분을 챙겨보며 구석진 민박집 방에서 외로움도 챙겨 들고 가족의 소중함도 느끼며 울컥 내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여행,한번 꿈 꾸고 싶다.사진은 작가가 아닌 사진작가 윤광준의 작품으로 실려 있다. 작가의 감정이 묻어 있는 작가의 사진이었다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보지만 포토에세이처럼 여행의 별미처럼 가끔 만나는 사진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간접여행을 할 수 있는 책인듯 하다.
'떠남과 만남' 이 책에서도 누군가는 실망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모자란 2%를 채웠을지 모르지만 한 줄 내가 잊고 있었던 아니 모르고 있었던 글귀 하나 소중하게 건져 올린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내가 소중하게 주워든것은 '인생은 길이다' 그 길로 떠나고 그 길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떠나고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떠남과 만남이 있어 한번 그 길 위에 홀로 서고 싶은 간절함을 내게 안겨준것 같다.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작가처럼 오롯이 내모든것으로 채우는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