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간 나남시선 27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배추
 
대추나무 밤나무 잣나무
잎새들 다투어 떨어지고
하마 오늘 밤은 서리 내릴라
 
낙엽 쌓인 밭고랑 누비며
살며시 정답게 배추 보듬어
짚으로 묶어 준다
 
목말라 하면 물 뿌려 주고
푸른 벌레들 괴롭히면
돋보기 쓰고서 잡아 주고
떨어진 낙엽 털어 주고
폭폭 흙 파서 거름 묻어 주고
 
배추의 입김
살아 있는 것의 가냘프고
때론 강한 입김 느끼며
기르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여름 한철 나는 외롭지 않았다
 
 
이 시를 읽으며 언제가 사진에서 보았던 작가의 사진이 생각났다.초가집 앞 텃밭에서 손에 호미를 들고 밭을 일구던 모습이 이 시를 더욱 가슴에 와 닿게 만들었다.
자신의 텃밭을 일구며 소설이 아닌 시로 일상을 정리한듯한 정감어린 시에서 우리내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욕심없는 작가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작가의 정성으로 일군 채소들은 그의 밥상에서 음식이 되고 가족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영양분이 되었을터 소박함이 묻어나는 시가 소설과는 다르게 소설속에서 놓쳤던 작가의 행간의 읽는듯한 느낌이 있어 좋았다.
 
 
눈꽃
 
 
느티나무에 실려 있는
앙증스럽고 섬약한 눈꽃들
포근포근한 눈밭에
폭폭 찍혀 있는 고양이 발자국
 
아아 좋타!
두 팔을 벌리는데
팔 내리는 순간
쓸쓸해진다
찬란한 눈꽃의 비애
 
 
작가가 등단이전에 습작지도를 받기 위하여 김동리 선생을 찾아간 것은 소설이 아닌 시였다고 한다.시심이 본바탕이 되었기에 그의 소설들도 진실되게 쓰여지고 소설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듯 하다.시는 좀더 작가와 친숙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작가의 숨김없는 감정을 엿볼 수 있어 좋고 시어 하나에서도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거짓없는 마음과 그 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여 좋다.'찬란한 눈꽃의 비애' 금방 사그라질 눈꽃에서 작가가 느낀 쓸쓸함-비애 함축된 의미가 이 겨울을 붙잡을 듯 하다.
 
 
우리들의 시간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자연과 함께 벗삼아 살면서 낮추는 자세를 작가는 몸소 실천하며 사는것 같다.그러면서도 작가의 시에서도 그 낮춤의 자세가 잘 들어나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속이 꽉찬 사람일수록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우리에겐 필요한것 같다.주머니가 두둑하면 할수록 그 많음의 크기만큼 우리는 목에 힘을 주고 사는 세상인데 우리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죄가 많은 우리들에게는 낮추어도 낮추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함을 좌우명처럼 얻으며 소설속에서 다 읽지 못한 작가의 행간을 시집에서 만나 잠시 작가의 詩 속에서 행복했음을 시간이 얼마 지난후에 다시 느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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