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최효찬 지음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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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370여 페이지의 두툼한 책. 어느 곳도 버릴 곳이 없는 자기계발서.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해 본다. 아니 자녀교육 서적을 자기계발서라고 소개하다니 조금은 엉뚱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도 분명 내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하는 마음에 참 열심히 4일간 읽고 내린 결론이 조금은 엉뚱하긴 하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11개의 한국 명문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재 생존하지 않고 있다. 모두들 그들 자녀와 손자들에게 큰 족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어쩌면 이 책이 없었다면 그들 가문과 연관된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의 공개 강연에서 언급하는 약간의 교훈만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이 책은 11가문의 자녀교육 비법을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어느 가문의 아버지가 실수한 교육에 대해서도 나름의 비판을 겸하기도 한다.

 

매우 객관적인 책이다. 그냥 11가문을 골라서 그 가족들이 쓴 책이나 글들을 대충 요약한 잡지가 아니다. 저자인 최효찬 선생님은 신문기자로 현재는 대학에서 전문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세계와 우리나라 명문가의 교육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분이다. 이 책에 앞서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집필하였다. 어쩌면 그 책의 내용과 일정부분 유사한 면도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이 책에도 케네디 가문과 퀴리 부인 집안에 대해서 소개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전개상 매우 유사한 케이스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저자의 비판에 대해서 좀전에 언급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두 아들과 딸을 미국 대학의 교수로 키운 어느 아버지의 교육철학을 설명하면서 그 아버지도 인정한 실수를 비판하였다. 그 실수는 딸에 대한 편애였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렸다고 소회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녀가 자신들의 꿈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한 것만은 현재까지도 감사한다는 고백을 담고 있다. 그 아버지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 분명 그 교육철학은 선대에서부터 내려온 것임이 분명하다. 다만 아버지도 사람인지라 특히나 예뻐한 막내딸에게 좀더 정을 많이 준 것이다. 하지만 여러 자식을 모두 훌륭하게 키우려 한다면 분명 편애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편애에도 불구하고 모두 잘 자란 경우는 자녀들도 남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 속에 소개된 11 가문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아버지가 교육의 주체이었고 특히 책 읽기를 즐겨하여 잔소리보다 행동으로 본을 보였다. ‘책 읽어라’, ‘공부해라란 말보다 그저 책 읽기를 즐거워하는 모습을 늘상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도 책 읽기를 즐겼고 읽은 책의 내용을 토론하거나 이야기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일찍부터 남다른 습관을 길러 주었다.

 

하지만 11 가문 중 일부는 자녀들이 일찍부터 좋은 버릇이 들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자녀의 특성을 배려하라는 교육관을 갖는 경우에는 일단 믿고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아버지 스스로가 터득했던 필승의 노하우를 전수하여 주었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100일을 노력해라와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자녀와 대화를 나눠 현재 진행상태를 점검한다. 또한 바른 길로 단숨에 안정 상태에 돌입할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배푼다. 퇴교시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하루에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현대의 아버지들은 10분 정도가 안될 것이다. 이 시간은 아이에게 온전히 제공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저 자동으로 고개만 흔드는 그런 대화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전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버지께 배운 것들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된다. 만약 이런 유전을 깨버리고 변화를 바란다면 이 책속에 다양한 해결책들이 제시될 것이다. 분명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결국 아버지인 내가 바뀌어야 내 아이도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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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와시다 고야타 지음, 김정화 옮김 / 와우라이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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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어느덧 은퇴 하신지 20년 가까이 되셨다. 명퇴 후 거의 20년간 아르바이트로 현재까지 지내신다. 늘 이것도 하고 싶은데 여유가 없구나 저것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막상 하려니 불안하구나 등등 말씀을 하신다. 처음에는 늘 진지하게 받아들여 힘내시라고 돈은 걱정 마시라고 말씀 드리지만 막상 아버지나 나도 여유가 없었다. 그런 미안한 마음이 10년이 넘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정작 나에게 더 도움이 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생각된다.

1.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2.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에게

3.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4.     자신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5.     자신을 모르고 현실도 모르는 꿈 많은 사람들에게

기타 등등의 유사하거나 다른 제목들이 가능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이런 다양한 제목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나와 아버지는 상당히 유사한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다. 늘 일탈을 꿈꾸지만 용기없고 현실을 핑계로 생각만 많은 특징을 갖고 있다. 다행인지 나는 매우 현실적인 아내를 만났고 그 아내의 지혜로 내가 잘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직업으로 하면서 살고 있다.

 

내 아버지는 완고하시고 현명한 아내의 조언을 끝없이 놓쳐버리신 분이다. 하지만 당신께서도 이제는 달라지려 하신다. 누구보다 닮은 나이기에 아버지를 도울 방법을 찾은 것이 이 책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더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내가 받은 감동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현재 하고 있고 가장 잘하는 것을 계속해서 하자. 매 순간 시시해 보이고 남들과 비교해 대단한 일이 아닐지라도 그 일에 사명감을 갖자. 그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나의 인생이다. 생각한대로 믿음대로 후회 없이 열심히 살자.

 

내게 있어 가장 큰 사고의 기준은 남의 이목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기심과 이타심을 가장한 이목에 신경을 곤두세워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새 마흔 살을 코 앞에 두고 보니 내가 현재까지 해 온 일이 가장 재미있고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 이 일로 두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 줄 수 있는 경험이 생겼다. 오랫동안 시시한 일이라 생각했던 나의 일이 점점 의미 있는 일들이 되고 있다. 오직 믿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방법이 정답임을 새삼 크게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의 모대학의 철학과 교수님이다. 많은 제자들과 상담자들의 직업과 향후 진로 고민들을 상담하고 느꼈던 생각들을 이제 원로 교수가 되어 참으로 편하게 이야기한 책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정곡을 찌른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과도 겹치는 면이 있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라. 원하는 전공이 아니라도 분명 네게 주어진 인생의 길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 좋은 전공을 마쳐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졌다. 들어가는 것만이 끝이 아니다. 결코 성공이 아니다. 아직 남은 인생이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때 펜팔로 지낸 친구가 있었다. 전교1등을 하던 친구인데 서울대에 진학하여 외무고시 공부를 했던 친구였다. 모두들 졸업 전에 합격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고 그 후 시험을 포기했다. 그 뒤로 모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오래 일했고, 해외로 유학을 떠났다. 그후로 연락이 끊어졌는데 최근 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귀국후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그때 이후 불만에 가득했던 나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현재의 내 모습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결국 내게 겸손을 알게 해 준 책이다. 나와 같이 오랫동안 다른 일을 꿈꾸며 이중적인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하게 자신의 현실과 자신의 재능을 다시금 점검하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 바로 이 책이 그 기회를 줄 것이다. 나는 내게 책 읽기를 즐기는 재능이 있음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 누군가의 경험과 문장을 만나는 재미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또한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이 좋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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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더 행복해지는 연습 - 멈춰 섰을 때 비로소 깨달은 인생 교훈 25
짐 히글리 지음, 노혜숙 옮김 / 미디어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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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더 행복해지는 연습

부제목 : 멈춰 섰을 때 비로소 깨달은 인생 교훈 25

 

처음 이 책의 부제목을 보았을 때 파워포즈라는 책이 생각났다. 모든 문제의 해결과 성공의 열쇠는 잠시 멈추는 것이라는 내용의 책이다. 일단 멈춰보면 상황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처럼 그냥 가자는 식으로 하게 되면 원하는 목표와 다른 결과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가고 있는 길이 어느 때부터 틀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세 아이들의 아빠로 어느 날 암 선고를 받고 바로 이 멈춤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같이 저자도 크리스찬이다. 하지만 딱히 신앙심이 좋다는 고백은 없다. 그런데 모태신앙들은 기본적인 사고면에서 하나님의 영향을 받고 산다. 바로 저자도 그런 면에서 분명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다. 은혜라고? 병과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이란 생각을 말한다. 그는 20년 가까이 쉼없이 살아왔다. 자신의 고백처럼 아이들의 말에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자신의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그의 스프링 목이 드디어 부러져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무의식적인 끄덕임을 계속할 수가 없다.

 

바로 깨달음의 시간인 멈춤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암이란 병은 결코 축복만은 아니다. 이 고난을 저자는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갈까? 그의 병은 가족력이 강하다. 어머니, 아버지, 형 모두 환갑 전에 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런 이유로 그는 오래 전부터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혹시나역시나가 된 것이다. 해마다 정기검진을 했는데 딱 한해 1년을 지나쳤다. 1년만큼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일에만 빠져 살았던 것이다.

 

이 책은 독특한 구조를 갖는다. 25가지 스스로 터득한 인생 교훈들은 과거의 추억 몇 페이지와 현재에서 추억과 연장된 현실 및 교훈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저히 과거로 채워져 현재의 자신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25가지 교훈에는 모두 감사가 넘친다. 사랑스런 가족들과 부모님, 어린 시절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는 집안 내력으로 생겨난 병을 과연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해소했을까? 아니면 죽기전에 그저 담담히 깨달은 것들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책일까?

 

또한 저자는 왜 자신의 아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 것일까? 심지어 막내의 출산 이야기까지 하면서도 그의 아내는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가 이 부분이다.

 

현재 병으로 고생하거나 투병중인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작은 것 같지만 큰 힘과 위로를 줄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분명 저자는 암이 걸린 후에 친구들과 가족들과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있고 책을 쓰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남들에게 이 25가지 교훈을 나누는 삶을 시작하고 있다. 현재의 고난과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의 자유를 만끽하길 바란다. 분명 하나님은 이 가운데 새로운 성장을 만나길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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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 1퍼센트 희망의 승리
레이마 그보위 지음, 정미나 옮김 / 비전과리더십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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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레이마 그보위

 

이제부터, 그동안 제대로 이야기된 적 없었던 아프리카 여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       프롤로그에서 발췌

 

어제 신문에서 이런 광고 기사를 읽었다. 현재까지 아프리카는 노벨상을 20명이 수상하였다. 어떤가 이 말을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 또한 와 그만큼이나 많이 받았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겨우 하나 받았는데 하면서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정작 아프리카 전체의 국가 수를 생각해 본다면 결코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라수가 20개는 넘기 때문이다. 당장 구글링을 해 보면 53개국임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는 2차대전 이전부터 열강의 식민지 각축장이었고 그로 인해 분리 독립하거나 내부 분열로 인한 전쟁을 오랫동안 치르고 있다. 그런 현장 곳곳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조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지지 않겠는가? 또한 일찍부터 식민지 종주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지식층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이 선진국에서 배운 지식으로 고국에서 노력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이 있다. 그들은 고백한다. 나만 생각한다면 편하고 좋은 서구세상에 오래 머물겠지만 헐벗고 굶주린 내 조국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 힘을 보태지 않을 수 없다고

 

이 책의 제목만 본다면 저자인 레이마 여사는 조국 라이베리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여전사와 같은 사람으로 보여진다. 사실 그런 노력들로 인해 2011년 그녀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그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보다 자신의 인생 속에서 한 아프리카의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들을 대표하여 아픔, 시련, 인내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면 어디서부터 이야기하겠는가? 저자도 자신의 뿌리, 자신의 시작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릴적 부모님과 조상들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라이베리아란 조국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라이베리아는 철자나 발음상 liberty(자유)를 연상시킨다. 맞다. 라이베리아는 미국으로 끌려간 흑인 노예들 중 아프리카로 복귀하고자 한 자유노예들을 위해 미국이 세운 나라이다. 그래서 라이베리아 사람들은 영어식 이름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과거부터 이어진 부족 명칭이 남아있고 서로 부족을 구분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역사가 오래지 않은 부족도 있다. 바로 미국인 혼혈들의 경우 신생 부족명을 사용한다. 이들은 이 국가의 초기 엘리트층을 형성하여 토착 부족민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부리게 되었다. 이러한 내부 불균형과 성공하려는 한탕주의 등으로 인해 내전이 시작되었다. 주인공은 당시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하던 중에 전쟁의 고난을 경험하게 되었다. 가족과 흩어지고 다시 만나며 철없던 십대 소녀는 어른이 되었다.

 

미국의 원조로 시작된 라이베리아 국민들은 상당수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 저자도 어릴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고난 중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도했다. 하지만 너무도 끔직한 전쟁의 현실에서 그 믿음은 불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분명 그곳에도 하나님은 계셨다.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많은 여성들이 강간의 피해자가 되었고 가족이 죽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참으로 놀랍게도 저자에게는 그런 시련이 모두 피해갔다. 또한 저자의 되는대로 살자는 태도를 하나님은 지금의 저자가 되도록 인도하시고 도우셨다. 마치 그냥 인생을 가는데 누군가 도와줬고 누군가를 만나서 지금의 아프리카 평화운동 및 여성운동을 하게 되었다는 고백들이 책 속에 나타난다. 분명 저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어려운 중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학비도 누군가가 지원해 주었다. 대책없이 나은 아이들도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우셨다. 전쟁 후의 허허벌판에서도 그녀에겐 하나님의 공급과 사랑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속사람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고 나아갔다.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의 말미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다. 평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또한 인생은 그분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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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고 성령을 품어라 -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을 승리로 이끌어주는 책
앤드류 머레이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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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를 죽이고 성령을 품어라

앤드류 머레이 지음

 

요즘 서평을 쓰면서 꼭 제목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특히 번역서의 경우 원 제목과 유사한가 아닌가 원작자의 뜻과 같은가, 번역자의 새로운 해석이 담겨있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원 제목은 Forsake me, Hold take Spirit이다.

forsake미국식[fər|seɪk] 영국식[fə|seɪk]

1. (특히 책임져야 대상을) 저버리다
2. (
특히 즐겨 하던 것을) 그만두다

간단히 해석하면 나를 버리다로 해석할 수 있다. 나를 버린다는 뜻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육체를 죽이다, 나의 과거 태도를 버리다, 내가 즐겨 하던 것을 그만두다, 나를 비우다 등등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나를 비우고 성령을 채워라로 해석해도 적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번역하신 분은 이 책의 전문을 모두 해석하면서 수차례 제목을 수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머레이 목사님이 원하던 제목, 본문의 내용과 가장 부합하는 제목을 찾았을 것이다.

 

나를 죽이고 성령을 품어라. 그렇다면 왜 나를 죽여야 되는 것일까? 일단 성령을 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꼭 죽여야 되는 것일까? 성령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는 곳은 신약의 오순절 다락방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수많은 이방민족들이 모인 그 곳에서 방언과 성령의 불이 내려왔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던 때에도 물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성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보필하는 존재이시다. 방언이 가능하도록 도우시는 능력의 존재이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연약한 우리에게 선물로 오신 분이시다. 왜 죽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제대로 똑바로 살기 위해서 과거의 나를 버리고 성령으로 비워진 나를 채워야 하는 것이다.

 

머레이 목사님은 다양한 관점에서 성령충만할 것을 이야기한다. 먼저 자신을 버려야 성령이 거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만이 전부가 되게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라고 전한다. 끝으로 제목과 같이 나를 죽이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다. 크리스찬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다. 내 뜻이 아니다. 자기가 아니다. 자신과 자기가 충만해서는 그 뜻을 놓치게 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마음이 성령 충만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마음과 생각만 있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 그래서 멘토가 필요하고 모범이 필요하다. 바로 그리스도 주께서 우리의 모범이 되셨다. 그분의 행적과 성경의 기록대로 우리가 모방하며 살아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면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살게 된다.

 

왜 성령 충만해야 할까? 자기를 비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이 채워진 컵에는 다른 것을 채울 수 없다. 물을 비우면 그 대신 공기가 채워진다. 나를 비우면 무언가가 채워지게 된다. 채워져서 바람직하고 좋은 것은 성령뿐이다. 미움, 시기, 질투, 악함이 채워지면 자기로 가득한 것과 비교해 나쁘거나 비슷하게 된다. 이렇게 나를 비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믿음, 순종, 겸손, 복종이 필요하다. 요셉과 같이 믿음으로 오래 참고 기다리고, 종이 되어 순종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복종하면 큰 축복을 받게 된다. 민족 부흥의 시작이 된다. 이 모든 그의 행적에는 겸손이 깔려있다. 자신 외에 모든 이들에게 겸손하였다. 한때 어린 날 그의 꿈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순진함은 있었지만 그 후 그의 모습 어디에도 거만과 불순종은 찾을 수 없다.

 

머레이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쓰여진 글임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우리가 글을 쓴다면 과연 얼마나 쓸 수 있을까? A4 용지 한 장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억지로 수십여 장을 쓰게 되더라도 중언부언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과 같이 컴퓨터로 쓸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는데 이 글에는 중언부언이 없다. 다만 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두번 정도 반복된다. 그런 부분은 놓치지 않게 된다.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하심도 크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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