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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고 성령을 품어라 -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을 승리로 이끌어주는 책
앤드류 머레이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죽이고 성령을 품어라
앤드류 머레이 지음
요즘 서평을 쓰면서 꼭 제목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특히 번역서의 경우 원 제목과 유사한가 아닌가 원작자의 뜻과 같은가, 번역자의 새로운 해석이 담겨있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원 제목은 Forsake me, Hold take Spirit이다.
forsake미국식[fər|seɪk] 영국식[fə|seɪk]
1. (특히 책임져야 할 대상을) 저버리다
2. (특히 즐겨 하던 것을) 그만두다
간단히 해석하면 ‘나를 버리다’로 해석할 수 있다. 나를 버린다는 뜻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육체를 죽이다, 나의 과거 태도를 버리다, 내가 즐겨 하던 것을 그만두다, 나를 비우다 등등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나를 비우고 성령을 채워라로 해석해도 적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번역하신 분은 이 책의 전문을 모두 해석하면서 수차례 제목을 수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머레이 목사님이 원하던 제목, 본문의 내용과 가장 부합하는 제목을 찾았을 것이다.
나를 죽이고 성령을 품어라. 그렇다면 왜 나를 죽여야 되는 것일까? 일단 성령을 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꼭 죽여야 되는 것일까? 성령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는 곳은 신약의 오순절 다락방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수많은 이방민족들이 모인 그 곳에서 방언과 성령의 불이 내려왔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던 때에도 물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성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보필하는 존재이시다. 방언이 가능하도록 도우시는 능력의 존재이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연약한 우리에게 선물로 오신 분이시다. 왜 죽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제대로 똑바로 살기 위해서 과거의 나를 버리고 성령으로 비워진 나를 채워야 하는 것이다.
머레이 목사님은 다양한 관점에서 성령충만할 것을 이야기한다. 먼저 자신을 버려야 성령이 거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만이 전부가 되게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라고 전한다. 끝으로 제목과 같이 나를 죽이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다. 크리스찬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다. 내 뜻이 아니다. 자기가 아니다. 자신과 자기가 충만해서는 그 뜻을 놓치게 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마음이 성령 충만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마음과 생각만 있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 그래서 멘토가 필요하고 모범이 필요하다. 바로 그리스도 주께서 우리의 모범이 되셨다. 그분의 행적과 성경의 기록대로 우리가 모방하며 살아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면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살게 된다.
왜 성령 충만해야 할까? 자기를 비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이 채워진 컵에는 다른 것을 채울 수 없다. 물을 비우면 그 대신 공기가 채워진다. 나를 비우면 무언가가 채워지게 된다. 채워져서 바람직하고 좋은 것은 성령뿐이다. 미움, 시기, 질투, 악함이 채워지면 자기로 가득한 것과 비교해 나쁘거나 비슷하게 된다. 이렇게 나를 비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믿음, 순종, 겸손, 복종이 필요하다. 요셉과 같이 믿음으로 오래 참고 기다리고, 종이 되어 순종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복종하면 큰 축복을 받게 된다. 민족 부흥의 시작이 된다. 이 모든 그의 행적에는 겸손이 깔려있다. 자신 외에 모든 이들에게 겸손하였다. 한때 어린 날 그의 꿈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순진함은 있었지만 그 후 그의 모습 어디에도 거만과 불순종은 찾을 수 없다.
머레이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쓰여진 글임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우리가 글을 쓴다면 과연 얼마나 쓸 수 있을까? A4 용지 한 장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억지로 수십여 장을 쓰게 되더라도 중언부언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과 같이 컴퓨터로 쓸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는데 이 글에는 중언부언이 없다. 다만 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두번 정도 반복된다. 그런 부분은 놓치지 않게 된다.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하심도 크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