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는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물질이다-액체다. 물론 가끔 사용하기는 하지만, 어느 여자들이 꼼꼼하게 브랜드를 챙기고 해박한 지식을 오물조물하는걸 그저 신기하게 지켜볼 뿐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읽지 않았다. 그 남자의 책은 예전에 여러 권 본 듯 한데(젊은 시절, 그 남자의 책 한권 안 읽어 본 사람은 드물겠지만),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분명 향수는 아니었다. 이번에 영화 <퍼퓸-어느 살인자 이야기(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2006)>를 보고 쓸데없이? 더불어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엔 대개 잘 모르는 (비헐리우드) 배우들이 나와서 이국적인 느낌을 갖고 보는데, 생뚱맞게 더스틴 호프먼 비슷한 배우가 나오길래, 긴가민가 했는데 역시나였다. 굳이 왜 더스틴 호프먼을 써야 했을까? 하긴 영화 제작과정이 한 사람의 순수한 의도대로 만든다는게 어려운 일이니, 그 내막을 알길이 없지만 말이다. 물론 그의 연기는 좋다. 하지만 약간 낯선 배우들과 낯선 느낌의 우중충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그를 발견하게 되면, 감상의 몰입이 잠시 영화 밖으로 뛰쳐나오기 때문이다(왜 저 사람이 저기 있지?).
아시아 영화들과 달리 서양 영화를 보면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이 영화만 보더라도, 감독은 독일 출신이고, 주연은 영국 배우, 배경은 프랑스. 그래서 이 영화 자체의 국적은 유럽의 여러나라로 묶여진다. 이러한 여러 인종과 문화의 섞임-거기엔 분명 장점-상승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감독은 우리에게 무지막지하게 뛰는 소녀를 통해 가슴 헐떡이게 한 영화 <롤라 런(Run Lola Run, Lola Rennt'1998)>의 톰 튀크베어(Tom Tykwer)이다. <겨울잠 자는 사람들(Wintersleepers'1997)>, <공주와 전사(The Princess And The Warrior, 2000)>, <헤븐(Heaven'2002)'>그리고 최근 코엔 형제, 올리비에 아사야시, 스와 노부히로 등 쟁쟁한 감독들과 함께 한 다소 싱거웠던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2006)> 등이 있다.
<사랑해, 파리>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이 출연한 부분(눈 먼 청년과의 사랑)을 연출했는데, 속도 편차가 큰 편집으로 다른 단편들에 비해 그래도 지루함은 덜했다. <헤븐>은 남편의 복수를 위해 살떨리면서 한 일이 잘못 엉키면서 테러리스트로 오인 된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나 액션-폭력 영화는 아니고, 그렇게 전개될거 같은 (경찰서 안에서의) 긴장된 분위기가 어느새 위험하지만 은은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어긋난다(그래서 나는 재미있게 봤다. 헬기가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여기서 여자주인공으로 나온 케이트 블란쳇은 꽤 매력있게 나온다. 연약하진 않지만, 특유의 여성미를 내뿜을 수 있는 배우란 생각이 든다. 이번에 새 영화 <바벨>에서는 나오는 부분도 적고 그냥 아프기만 한 연기라 좀 심심했다.
톰 튀크베어 감독은 작가로서의 (젊은) 실험성은 <롤란 런>에서 만족하고, 그 뒤로는 거친 외곽을 부드럽게 다듬고 흔히 말하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는 듯한 냄새가 난다.
상업 영화로 볼 수 있는 이번 작품에서도, 대중에게 익숙한 방식을 가지면서도 언뜻 드러나지 않는 묘한 영상의 장치들이 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처형 장면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사방에 두고 주인공이 보여준 '제스처'는 인상적이다. 다만 그 장면이 약간 짧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마치 향수를 톡 짧게 뿌리지만, 향기는 은은하게 오래 남듯이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 향수 제작 방법이 과학적이면서도 뭔가 신비적인 것인양 비춰진다. 특히 그르누이의 얍삭한 스승(더스틴 호프만)이 마지막으로 향수의 비법에 대해 말할 때, 십여개의 작은 병들이 일렬로 담겨진 상자를 가리키는 장면이 있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향수에 대한 신비감을 더욱 자아낸다.
그래서 나도 향수에 대해서 시간이 나면 공부해 보고픈 맘이 생기더라. 물론 책을 통해서겠지만.
눈으로 듬뿍 향수를 마시게 된 영화인데, 몇몇 장면은 향락(jouissance)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아까도 말한 처형대 위에서 그르누이가 그를 직접 (칼을 들고) 처형하려는 남자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이 그렇다. 두 딸을 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아버지의 심정이 변화를 겪게 되면서 얼굴에 번지는 그 미묘한 환희의 표정..
이 영화에서의 향수香水는 향락享樂인가? 그 주이상스가 잠시 찡그리듯 이 영화에 출현한 것일까?
어쨌든 나중에 다시 이 영화를 볼 것이고
원작 소설도 찾아서 볼 것이다.
그러나 향수를 사러 매장에 가지는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