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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 핑크 - 할인행사
도리스 되리 감독, 마리아 슈라더 외 출연 / AltoDVD (알토미디어)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이런 독일 영화는 처음이다. 영화에 대한 내 경험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독일 영화하면 왠지 파스빈더 감독의 아스라한 비애가 슬쩍 떠오른다. 아마 이 영화 파니핑크도 자세한 정보를 안 보고 그냥 넘겼다면, 그냥 괜찮은 유럽 영화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뭔가 흐뭇함이 든다. 거기엔 영화에 대한 만족도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거칠데 도드라지지 않고 마치 한 바구니에 귀여울 정도로 잘 담겨 있는 느낌이다.
먼저 독일(유럽이라고 치면)의 현재, 그래도 지구상에서 이성과 물질의 혜택을 잘 누린 사람들의 겉과 다른 공허한 내면이 엿보인다. 거기다 서른이 넘은 혼자 사는 노처녀라면, 그 휑한 가슴은 더할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파니핑크는 그런 소외감을 달래고자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마음에 대한 동양적 비전에 의지하기도 하고, 어떤 모임에서 자기의 관을 미리 만들면서 삶에 대한 묵묵한 여유를 얻으려 하기도 한다. 거기다 우연히 현대판 흑인 주술사 청년을 만나는데(처음 등장은 카리스마가 있는데, 알고보니 엉뚱한), 이 친구가 결국 파니핑크에게 소중한 인간경험과 큰 자극이 된다.
이러한 음울한 사회성을 파니핑크를 통해 부각시키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은 아니다. 여기선 어디까지나 한 사람, 파니핑크가 주인공이고, 그러한 것들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하나의 배경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파격적인 우주선?에 대한 것도 나오지만, 그것이 영화의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진 않는다. 그냥 하나의 흥미로운 요소이고, 그것이 결국엔 영화에 필요한 그리고 주인공에게도 역시 필요한 무언가를 선사한다.
바로 성장이다. 갑작스런 부재, 사라짐은 큰 허탈감을 줄 수 있지만, 파니핑크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것이 파니핑크가 받아들일 하나의 단계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즉 어떤 갈증이나 결핍을 밖에서 찾아 헤맸다면, 이젠 슬슬 자기 내면-파니 핑크 자신으로 회귀라는 성숙한 사이클을 얻게 된다. 이 영화를 '여성 영화'라고도 하는 거 같은데, 그러한 의도와 목적성에 넣을 만큼, 여성의 문제에만 집착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어느 남자라도 충분히 즐겁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감상이 끝나면, 잔잔한 재미가 먼저 다가오는 영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 그리고 뭔가 개운하게 솟은 성장한 인간의 가슴도 잠시나마 그려진다. 덤벙 덤벙하는 귀여운 여주인공의 모습이 흐뭇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