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 The Lives Of Others, 2006)
훔쳐보기는 에로영화를 자극하는 살 떨리는 시선의 기술이 아닌가? 근데, 이 남자(HGW XX/7)는 훔쳐듣기라는 도청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감시한다. 도청은 어떻게 보면 뉴튼 역학 시대의 덕목인 '객관적인 관찰'의 세계상과 비슷하다. 즉 관찰자는 그 사물과 감정적으로 단절된 공간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하면 된다. 실험대 위에 구르던 쇠구슬이 멈췄다고 손끝으로 굴려서 어떤 조작된 결과를 얻는 건 찰리 채플린 영화에나 나올법한 발상이다. 이정도로 운을 띄우고...
이제는 영화에서 왠만한 것들은 다 구사된 거 같다. 그래서 극단적인 자극으로 '반전'이라는 것을 써먹기도 하는데, 그것도 약발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약의 종류에 비해 효과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감기약이 달라봐야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반전이라도 앞서 몇 번 써먹은 것들은 곧바로 상투적인 감정을 부채질하며 관객들의 욕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결국 영화가 기댈것은 그러한 자극적인 양념이 아니라 '영화다운' 영화로 가는 길이다. 두어시간 흐르는 영화의 공간이 충실하다면, 거기에서도 상투성은 일상의 소박한 반복으로 자연스레 묻어서 우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즉 자극적인 양념 하나로 결정적인 맛을 내기보다는 어떤 진국에 넣는냐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 영화 <타인의 삶>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상투성과 호들갑을 떨며 놀래지 않아도 될 만한 반전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영화의 빛깔이나 무게가 갑자기 바뀌진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길게 다져 온 '타당성' 위에 그것들을 쌓아놓기 때문이다.
도청과 감시하느라고 애쓴 HGW XX/7는 위즐러를 가리킨다. 영화 초반에 보여 준 그의 견고한 인상과 영화가 흐르면서 관객도 모르게 변화된 그남자의 모습은 놀랍다.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난 것일까? 그러나 재미는 이것이 단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어떤 갈래질되는 순간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엘리베이터 안에서 축구공을 손에 든 꼬마와의 만남을 꼽을 수 있다. 꼬마의 순진한 말은 위즐러 요원을 자극하고 직업병을 도지게 만들었다. 즉 뭔가 불미스러운건 체크하는 버릇(그래서 영화 초반, 강의중에 어떤 학생의 의미심장한 질문을 듣고 출석표에서 그 학생을 볼펜으로 체크하는 모습처럼). 그래서 이름을 물은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못 듣고 다시 묻는다. 그러자 위즐러는 전혀 다른 버전으로 다시 묻는다(그와 동시에 그도 다른 버전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 이름이 뭐지?" 여기에 이 영화의 순발력 있는 센스가 빛을 발하는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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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의 선택은 이 영화를 보면, 모처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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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엔 가슴에 살살 꽂히는 음악이 나온다(특히 이 영화에서 누군가를 완전히...). 남자주인공이 직접 피아노로 연주도 하는 데, '착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Die Sonate Vom Guten Menschen)'라는 곡이다. 가브리엘 야레(Gabriel Yared)와 스테판 무카(Stephane Moucha)가 음악을 맡았다(Yared, Moucha-Das Leben der Anderen). 가브리엘 야레(가브리엘 야리드라고도 표기하던데..)의 프로필을 보면, 영화음악과 오랜 연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 고다르와도 작업을 했으며, 로버트 알트만(위험한 사랑, 1987) 그리고 실험적인 애니를 만드는 르네 랄루의 <간다라>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베티 블루>, <연인(L'Amant / The Lover)>, <시티 오브 엔젤>, <뉴욕의 가을>, <콜드 마운틴> 등이 있다.
대충 알라딘에서 찾아 본 가브리엘 야레가 참여한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