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게스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프랭크 밀러는 공동 감독이자 원작자로 영화 <씬 시티(Sin City, 2005>에 참여한다. 전의 영화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비현실적인) 질감을 부여받은 배우들은 하나의 인간이라기 보다는 등장인물로서의 '캐릭터'로 강화된다. 그대신 생물로서의 '생리성'은 제거된다.
이번엔 신판 <새벽의 저주> 감독을 맡았던 잭 스나이더와 함께 아주 먼 과거 스파르타의 용맹한 인물들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영화를 통해 만들어냈다. <씬 시티>가 그래도 어떤 힘의 과잉이 한 사람을 중심으로 전달되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300명(플러스 알파)이라는 집단을 통해 커다란 무더기로 그 과잉을 선보인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서 어떤 '우려'가 나온다. 서구문명의 '씨앗'이었던 [스파르타와 그리스]가 떼거리로 밀려오는 페르시아의 군대와의 이항대립적인 맞섬! 그것이 그냥 심심풀이 영화로만 끝날 얘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온갖 신비한 주술과 서커스적인 괴이함과 공포, 즉 웅장한 볼거리를 먼 시선의 위치(마치 스크린처럼)에서는 제공하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면 스파르타 300명의 군인들에게 터무니 없이 무너지는 페르시아 군대. 이것은 스파르타 군인들이 어려서부터 익혀 온 단련, 규율이라는 '디스플린(discipline)'과 체계적이지 못한, 그러나 그냥 힘만 넘쳐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페르시아 군대라는 대비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대비들로(가령 선과 악) 파급되기 쉬운 성질을 가진다.
이것은 현재로 곧바로 넘어와, '미국과 중동이라는 도식'에서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떤 사람이 프랭크 밀러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반대하는 사람이고, 영화에서 그 무자비하게 침략하는 페르시아 군대가 오히려 미국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글을 언뜻 본 기억이 난다. 나는 프랭크 밀러의 사상이 어떠한지는 전혀 모른다. 설령 그 말이 맞더라도(실은 믿기진 않지만) 그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영화는 눈으로 보는 영화이지, 머리로 생각하게 하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냥 백인들, 미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자연스레 스파르타 군인들에게 감정이 이입이 되고, 즉각적으로 영화 밖에서도 그 페르시아의 대체물로 중동의 말 안듣는 못된? 국가들이 쉽게 들어서게 될 것이다. 요새 벌어지는 미국과 중동 문제에 너무도 쉽게 그 감정의 내용들이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럴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를 그냥 재미로 볼 것이지, 왜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의식있는 체하냐고..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을 터이고, 나도 어쩌면 거기에 가끔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고 말할 영화들도 있겠지만, 그 말의 테두리에 담기엔 뭔가 꺼림직한 영화들도 있는 것이다. 만든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도 말이다.
모든 영화들이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쟝르로 들어가 순진한척 눈만 껌뻑일 순 없다.
그래도 정말 그것을 고수한다면, 우리?도 할 말이 있다.
"감상은 감상일 뿐이다" "비평은 비평일 뿐이다"
서로 큰 목소리로 서로 겹쳐지지 않는 말들만 뱉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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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가벼운 얘기로 마무리를 해보자.
협곡을 이용해서 정말 정말(강조 두번) 잘 싸우는 스파르타 군대의 놀라운 버티기는 영화 밖에서 볼 때,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떼로 몰려들기, 하늘을 가리는 수 많은 화살 공격, 정예 가면 부대, 거인 등 등...
페르시아 군대가 그럼 이렇게 해보면 되지 않나?
스파르타 군대가 좁은 협곡을 무대로 맞서고 있는데, 일단 숫자로 밀어 붙인다. 그럼 협곡을 뒤로 하고 그 좁은 틈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는 형국이 된다. 그럼 기름 단지 같은 것을 그 협곡 안으로 던진다. 그리고 바로 불화살을 쏘면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