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과 영화는 자주 만난다. 그런데 정작 독자들은 그러한 책의 단단한 이음새들을 즐겁게 맞이하기엔 시간이 녹녹치가 않다. 시간이 남아 돈다고 또 누가 그런 쉽지 않은 눈의 노동을 택하겠냐만은. 그래도 필요하고 어쩔 수 없는 만남들은 꾸준히 이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을 주선하는 작가들에게도 더운 여름 짧은 경의를 표한다.

 

 

 

 

<영화분석과 기호학>

<영화분석과 기호학>은 어떻게 보면, 기호학과 영화의 FM적인 만남과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거 같다. 메츠의 영화기호학과 히쓰의 마르크시즘적 영화기호학인데, 스티븐 히쓰에 대해선 메츠에 대한 익숙함(단지 이름이라도)에 비해선 생소하다.       영화는 물론 영화포스터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했다는 책이 있다. <영화, 그 기호학적 해석의 즐거움>인데, 저자(백선기)는 미디어와 기호학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썼다. 이론은 외국 이론이지만, 주로 다루는 영화들은 우리나라 영화들이다. 특히 2장은 기호학과 라캉의 정신분석을 가지고 분석을 시도하는데,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다.

 

기호학보다는 그래도 사람의 정신, 심리와 관련된 건 덜 딱딱한 느낌을 준다. 그러한 정신분석의 은밀한 시선이 영화를 훑는다면 영화는 어떤 신음을 낼까?

라캉의 눈이 되어 영화를 본다는 건 이젠 너무 자주 상영되는 책의 광경이긴 하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라캉의 눈을 새로운 카메라 기법처럼 활용하느냐도 중요할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이라면 좀 더 응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정신분석의 은밀한 시선>은 임상 경험이 있는 정신과 의사의 책인데, 차례를 꼼꼼히 보니까, 정신분석 그리고 라캉과 궁합이 잘 맞는 영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균형 감각이 있어서일까? 외국영화와 동양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들이 적절하게, 거기다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쪽과 대중 영화쪽의 비율도 잘 맞춰져 있다.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피터 그리너웨이의 낯설고 도발적인 화면 구성이 인상적인 '필로우 북(왼쪽 영화 포스터)',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 '플라이'와 '데드 링거',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 그리고 알마도바르의 '귀향'과 '나쁜 교육'이 무게감 있게 자리잡고 있다. 정신분석과 어울릴 영화인데, 그 씀씀이가 적었던 빠르고 도발적인 츠카모토 신야의 영화들, '6월의 뱀'과 '악몽탐정'도 눈에 띈다(츠카모도 신야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은 다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장화 홍련', 김기덕의 '시간'과 '활',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과 '극장전' 그리고 괴물 같은 흥행작 '괴물'이 있다. 그리고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영화 '히든'도 보인다.

 

 

***잠깐 딴 길

미하일 하네케 감독이 나온 김에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지의 코드(Code Unknown)'도 (몽타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볼 필요가 있는 영화다(여기에도 히든처럼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다). 영화 편집이 우리 입맛(눈맛)과 다르게 움직일 때, 우리가 재구성해야 할 그 황량함은 매우 낯설고도 기이해진다. 그 '편집의 날것'이라는 영화의 거친 살결을 이 영화를 통해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잠깐 언급한 피터 그리너웨이의 '필로우 북'은 일본 문학 작품의 이름이기도 한데, 탐미적인 기호들이 규칙적인 운율을 띠고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특히 프레임 안으로 새로운 프레임들이 생성하는 그 낯선 침입은 처음에 감당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피터 그리너웨이 영화의 또 다른 절정이 담긴 매력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털시 루퍼 가방(The Tulse Luper Suitcases)'에서도 이러한 화면 분할 구성을 노골적으로 숨기지 않는다.

잠깐 딴 길 끝***

 

부제가 '라깡의 카우치에서 영화를 보다'인데, 그러한 생생함과 은밀함이 느껴질만한 친밀감이 날지 또한 궁금하다.

 

----------------------------------

이 책과 연관된 영화, 감독의 영화들을 몇 개 골라 옮겨본다.

[책과 직접 연관된 영화들 중에서..]

 

 

 

 

 

 

 

 

 

[책에 나온 감독들의 영화 말고 다른 것들..]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영화들도 여기 알라딘에 꽤 살아있다. 데이비드 린치를 처음 접한다면,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피하는게 좋을 것이다. 너무도 이례적인 린치 영화이므로(갑자기 전원일기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나?).. 역시 (좀 어둑컴컴하고 지독한 영화이긴 하지만) 이레이저 헤드를 먼저 보는게 순서가 아닐까. 블루벨벳, 로스트 하이웨이는 다 문제작들이고 정신분석학적으로 감상하기 더 없이 좋은 영화다. 트윈 픽스는 TV 시리즈물에 비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아무 사전 지식이 없다면, 감을 잡기 어렵다[그외 광란의 사랑(여기에 진짜 니콜라스 케이지가 담겨 있다), 엘리펀트 맨. 듄(사구)도 린치다운 영화들이다. 그러고 보니 린치의 페르조나 카일 맥라클란은 영화 '쇼걸'이후 무기력해진 것 같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라는 영화는 그래도 많이 알려진 편이다.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 '건축가의 배', '차례로 익사시키기', '8과 1/2 우먼' 등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들은 감독 이름값을 충분히 해내는 것 같다. 아버지는 건축가고 자신은 미술학도 출신 인데, 영화에도 그러한 것들이 반영되는 듯 하다. 

 

  

 

 

 

 

어떤 영화 평론가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점점 브뉴엘을 닮아 간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 근데 나로서는 도저히 수긍이 안간다. 물론 성이라는 걸 숨기지 않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들춰내긴 하지만, 홍상수 감독이 일상에서 개인과 개인의 틈을 탐색한다면, 브뉴엘은 개인과 사회라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만 그것이 급한 전복을 꾀하기보다 귀족적이고 대가다운 여유가 있다. 즉 브뉴엘은 세속적인 것들을 건드려도 그 방식에서 미학의 궤도를 밑으로 떨구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무엇을 꼭 바싹 다가가서 건드릴 필요는 없다. 강박적으로 좁히는 거리감은 그냥 말 그대로 '일상'이 되고 만다. 그걸 굳이 카메라에 담는 게 무의미해진다. 즉 예술도 '양자(역학)적 긴장'이 유효할 때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완전히 까발리려는 욕망은 다른 편의 무언가를 여지 없이 놓칠 수  있다].

오! 수정을 뒤늦게 봤는데, 여배우 이은주에 대해 아련한 감정이 들었다. 이 영화와 주홍글씨라는 영화가 번갈아 가며 이은주의 이미지를 맥박치듯 연결짓는데, 영화 배우 이은주가 아닌 여자 이은주가 그녀에게 더 크질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자로서도 배우로서도 참 아까운 사람이다.

 *덧붙임* 브뉴엘(루이 브뉴엘, 루이스 부뉴엘.. 정확한 발음을 알고 싶다!)의 <안달루시아의 개>를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니 놀랍고도 다행스럽다. 살바도르 달리와 같이 작업한 이 영화는 첫 장면에서 직접 출연한 브뉴엘을 만나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눈알을 베는 전설이 되어 버린 장면도..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6-30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해둡니다. 좋은정보 고맙습니다.

TexTan 2007-06-30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하이힐이군요. 야외 나가서 포크가 없을 때 요긴하게 쓰이겠어요^^
더운데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TexTan 2007-07-03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영화 '히든'하고 '미지의 코드(Code Unknown)'하고 헤깔렸네요. 다시 고치고 내용을 조금 손봤습니다.
 
일루셔니스트
닐 버거 감독, 에드워드 노튼 외 출연 / 팬텀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에드워드 노튼은 전천후 연기자인가?

미친 남자에서부터 새침한 청년까지.. 그리고 대중 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오고가는 그는, 정말 소리없이 강한 연기자 중 한 사람인거 같다.

이번에는 아이젠하임이라는 이름으로 19세기 한 마술사가 되어 나타났다. 비밀스럽게 기른 턱수염과 진실과 거짓이 절묘하게 섞인 눈빛을 가지고...

아이젠하임은 아주 독특한 무대를 마련해 주목을 받는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들여 억울한 하소연을 듣거나 하는 것인데, 그것이 단지 죽은 이의 목소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모습까지 출현한다는 데 놀라움이 있다. 이것이 결국 문제가 되어 아이젠하임은 큰 곤혹을 치르게 된다. 이런 경직된 사회(19세기 비엔나)에서 죽은 자의 귀환은 매우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귀신이 무대 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는 대중적 충격 말고도, 이들이 지니고 있는 건 바로 가려진, 억울한 '진실'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이미 처리한 것들이 뒷구멍을 통해 슬금슬금 기어오른다는 건 누군가의 입장에선 꽤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정말 아이젠하임이 이들 죽은 자를 불러왔는가? 아니면 어떤 마술적 장치를 통한 하나의 속임수였던가? 경찰은 아이젠하임에게 이것이 어떤 장치를 통한 속임수였음을 사람들 앞에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보았는가? 아이젠하임의 그 표정..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그러나 이 귀신?소동에서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가가 아니다. 누가 효과적으로 영화 속에서든 영화 밖에서든 진실로 보이는가이다.

이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자. 아이젠하임은 위험한 짓을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황태자의 여인 소피다. 물론 어릴 적에 둘은 애틋하고 아련한 기억이 있다. 막 발아하려던 사랑.. 긴 시간을 뛰어 넘어 이렇게 다시 둘이 만나게 된 것이다. 마저 사랑의 열매를 맺으려는 그들의 열정은 사회의 축(팽팽한 힘을 가진 황태자)을 건드리고, 그 도발에 대한 징벌이 두 사람에게로 곧장 향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위험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이 남자 아이젠하임에게 떨어진 절대절명의 일이다. 아름다운 소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대중들의 인기는 한 가득 가질 수 있지만, 권력하고는 먼 이 남자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술사 아이젠하임이 말이다.

-----------------------

스포일러를 피하려는 나의 글쓰기도 약간 줄타기 같다. 참고로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그 기계장치는 바로 환등, 카메라옵스크라와 비슷한 장치들로 보인다. 이것들이 카메라의 원조로 일컬어지는데, 그 당시엔 사람들에게 진귀한 구경거리를 제공했던 것들이다. 즉 과학적 원리로 공간 안에 뿌려진(투사된) 영상들인데, 이것이 눈속임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퍽 흥미롭다. 그 당시로서는 최첨단 과학인데 그것을 마술로 써먹는다는 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풍기를 슬슬 돌리기 시작할 즈음..

나는 요새 돈 주앙에 관한 책을 하나 집어 들고 막 재미를 붙이려는 참이다.

<돈 주앙의 읽어버린 일기>..460페이지가 넘는 두께라서 처음엔 망설였는데, 잠깐 구경 삼아 보다가 벌써 약 3분의 1은 본 거 같다. 특히 '은밀한 방문'이란 제목을 가진 장은 꽤 재미가 있다. 책 맨 앞부분에서 저자 더글러스 에이브람스는 누군가에게 '돈 주앙의 일기'를 건네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정말인지 아니면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려는 하나의 장치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보는 돈 주앙의 삶의 태도는 그러나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운율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여자들을 누리면서도 남다른 품위를 지켜나갈 수 있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책의 저자 더글러스 에이브람스(Douglas Abrams)의 좀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그는 대주교, 요가 수행자 그리고 태국의 기공 수련가로 유명한 만탁 치아 등과 같이 집필 작업을 한 것으로 나온다.  아래와 같은 약간 민망하지만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의 책들이다.

멀티가 이런데도 쓰이는구나...

 

 

 

좀 의아한 맛도 있긴 한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돈 주앙의 이미지에 필요한 동양적 비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돈 주앙이 누구인가. 바로 여자의 욕망을 깨워서 기쁨을 되찾아 주는 남자가 아니었던가. 그가 스스로 터득한 여자에 대한 철학과 기술도 충분했겠지만, 돈 주앙과 성도인술의 매치는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경계 말고는 꽤 잘 어울리는 짝이다. 그걸 돈 주앙은 전혀 전수받을 도리가 없었겠지만, 현재 그를 소설로 만든 저자가 대신 성도인술과 접속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어쨌든 과거의 돈 주앙과 현재의 더글러스 에이브람스와 만탁 치아라는 삼각구조를 통해 성도인술을 익힌 (귀족적) 호색한이 잠깐 생성하는 모양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소주천 수련에 의한 자가치유건강법>

 만탁 치아의 책은 국내에 꽤 많이 나온 편이다. 그러나 같은 책이 중복된 경우가 있다. 아마 <성도인술>이란 책이 <멀티 오르가즘 맨>과 같을 것이다. 아마 그 이전에 <제목이 필요 없는 책>으로도 나왔을 것이다(그 당시만 해도 출판사와 역자가 그래도 수줍음이 있었나 보다). 대개 이런 쪽이 처음에 이목을 끌다가 사이비로 몰려서 금방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만탁 치아의 경우는 꽤 오래 가는걸로 봐서 뭔가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기공마사지>

 

하여튼, 만탁 치아의 책은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정력을 증진시키는 기공법쯤 될 거 같다. 돈 주앙의 잃어 버린 일기에서 성도인술로 이끌린 이 욕망의 블로그는 대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OW TO READ 니체 How To Read 시리즈
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과연 니체를 어떻게 읽어야 잘 읽었다고 소문이 날까? 너무 세속적인 발언인가..

이 책에 이런 글귀가 있어 잠깐 옮겨 보고 시작해 보자.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본다는 생각 자체가 니체의 사유에서는 승인될 수 없는 주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감정이나 정서가 반영된 어떤 관점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지하기 때문이다."[106쪽]

이 말은 어쩌면 니체한테도 고대로 해당 될 것이다. '니체'를 객관적이고 안전하게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모든 대상, 모든 사람들이 해당하겠지만, 특히 니체는 원자적 해석이 매우 힘든 인물이고, 그러한 (과정적인) 텍스트를 발산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 역동적이고 중층적인 텍스트의 힘은 마치 신체와 같은 생리성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니체에 대한 개론적인 접근이란 것은 대단히 어색한 작업일 것이다.

따라서 정말 니체에 다가가려면, 일단 니체에 대해 '디오니소스적인 끌림'(객관성을 잠시 놓아 버린 상태)으로 축제 분위기에 몰입된 망아적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그렇다고 정말 정신을 놓아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의 저자 키스 안셀 피어슨은 너무 학자적인 모습, 안전한 방법으로 니체를 건드린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이 책은 이미 폭넓게 알려진 니체에 대한 것 말고, 다른 세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흔히 니체의 대표작이라 알려진 <힘에의 의지>는 제목이 주는 묘한 무게감 때문에 자칫 니체의 결정적인 책으로 오해 받기도 했는데, 단지 미완의 기획이었다는 점. 그리고 니체가 깊은 정을 품었던 (그러나 실패한) 루 살로메 이야기에서 좀 더 구체적인 몇 가지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전체적으로 이 기이한 '니체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은 작가의 거리두기 만큼, 독자도 생동감 있는 니체의 맛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특히 '영원회귀'에 대한 설명은, 뜻드 미지근하고 감질맛만 조금 내다 끝나 버린다. 너무 개론적인 방식에 충실하다고나 할까.. 물론 그렇기 때문에 니체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없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안전한 조망을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이렇다. 니체를 칭찬하려면 감정적으로 아주 많이, 그리고 니체를 비판하려면, 머뭇거리지 말고 아주 과감하게.. 니체의 탄력성만큼이나 탄력적인 시선이 필요할 것이다.

니체를 차분하고 얌전하게 바라보기엔, 니체라는 입자들은 너무도 쉬지 않는 춤을 즐기는 것 같기에 그러하다(비록 오늘 정밀하게 관측한 점들이라도 내일이면 찬란하게 부서질 것이다). 

 

--------------------짧은 한탄, 사후 반전!?

니체는 형이상학에 물든 자들을 '형이상학적 새잡이들'[이 책 81쪽]이라며 언짢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년에 니체는 그 형이상학 끄트머리에 감연된 자신을 (발견) 스스로 고발?하기도 했다.

니체는 정말 무엇일까? 그렇게 '건강'을 찬양한 사람이 정작 자신의 정신은 오락가락하고 병으로 드러눕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럼 니체 매니아가 한 명 나서서, 억지로라도 이것을 다른 차원으로 반전시켜보면 어떨까..

현상세계에서 니체는 건강을 앞세울 위인은 못되지만, 가상(의 세계)에서 니체는 건강했다고 고집을 피우는거다[니체의 '가상성'을 바로 니체(자신)에게로 향하게]. 니체의 텍스트에 바로 니체의 건강한 근육들이 활개치는걸 발견할 수 있다고 말이다. 거기다 들뢰즈의 바로크식 '주름'을 가지고 와서 좀 더 꾸며보자. 니체 텍스트 주름 안에는 수 많은 생성 가능한 가상의 세계가 있고, 거기에 온전한 니체가 살아 있는 걸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물론 형이상학에도 떳떳한 니체의 멋진 미소도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월말에서 6월 들어 구한 책들이다.

 

 

 

 

                                     <괴델 불완전성 정리>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이제서야 보게 됐다. 그런데 이 책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초판이 1983년인데, 내가 산 책은 2006년(23쇄)이니까 거의 20년 동안 개정(판)이 없었다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본문에 글씨 크기도 요새 책들과 달리 작은 편이다. 작은 바램이 있다면, 가독성을 살린 개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은 벌써 인터넷 서점 대부분 품절이다. 저자는 파리에서 일반언어학과 기호학을 전공했는데, 책의 구성은 논문 형식으로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구조주의에 걸쳐 기호학의 밀접한 힘을 다룬 것으로 보인다.     <괴델 불완전성 정리>는 다른 괴델의 책에 비해 두껍지 않고, (중학생도 이해할 만큼) 쉬운 설명을 시도했다는 머리말에 이끌려 고른 책이다. 얼핏 넘겨 봤는데, 그렇게 쉬워 보이진 않는다. 혹은 요새 중학생들 수준이 내가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수준이 높던가.. 끙!

인지과학에 대해 왠지 어설프게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아서, 일단 점검 차원에서 작은 책을 구했다. 무슨 전자제품 메뉴얼 크기와 두께 만한 책인데, 이 짧은 소책자에 인지과학의 개념을 어떻게 넣었을지 궁금해진다.      데이비드 보드웰의 <영화 스타일의 역사>는 제목과 달리 그리 만만한 책으로 보이진 않는다. 한국어판 저자 서문에 보면, 이 책은 제목처럼 단지 영화 스타일의 역사를 다룬 것이 아님을 밝힌다. 이어서 덧붙이기를 "하나의 연구 전통 안에서 서로 다른 학자들이 어떻게 하나의 공통된 질문에 대답하려 해왔는가에 관한 연구이다." 그 밑에 "즉 이 책은 학자들이 영화사를 기술해온 원칙들과 실천들을 연구한다. ... 나는 편집, 촬영, 기술, 연출 등 영화 테크닉 안에서의 변화와 연속성에 관해 학자들이 어떻게 이해해왔는가에 주목한다."라고 이 책의 성격을 표현한다. 잠깐 훑어 본 느낌은, 약간 전문적인 냄새(가령 쇼트 분석)가 나는 책으로 보인다. 책 표지도 그렇고, 판형도 약간 큰게 손맛도 부드럽고 괜찮다. 읽기도 전에 좋은 책일거란 예감이 온다.   

 

 

 

 

 

금강경은 여지껏 몇 권을 봤는데 역자의 시각이 가미된 해설서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리고 한역을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이라는 문명에 한번 걸려진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 구한 <금강경 역해>는 산스끄리뜨(범어) 원전을 번역한 것이다. 책의 구성은 먼저 산스끄리뜨 원문을 제시하고, 이어서 두 가지 한역인 구마라집과 현장역을 달고나서 우리말 번역을 실었다. 그리고 산스끄리뜨어 원문에 바로 우리말을 붙여 놓은 [대역]은 완전한 문장의 맛은 떨어지지만, 직관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끝으로 아마 이 번역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주해]가 있다. 각 단어에 대한 어원 해석과 더불어 이와 관련된 다양한 배경들을 알려준다.      붓다의 말씀이 담긴 가장 오래된 경전 중 하나인 <숫타니파타(小部阿含)>를 전재성 역주로 된 것으로 구했다. 이 책 역시도 한역이 아닌 빠알리어 원전 번역서다. 이 책은 어찌보면 읽기 수월한 감이 있는데, 바로 우리말 번역부터 나온다. 그리고 본문 아래 역주를 통해서 단어라든가 참고할 만한 것들을 꼼꼼하게 챙긴다(역주가 총 2582개가 된다). 따라서 처음엔 가볍게 역주를 무시하고 우리말로 번역된 것들만 읽어도 될 듯 싶다.

<능엄경>도 번역서가 여럿 있는데, 우선 이 책을 골랐다. 한역(반랄밀제 역)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 그냥 한문에 구애 없이 읽을 수 있다. 역주는 최소화해서 책 말미에 붙여 놓았다.      <좌선삼매경>은 초기 선경을 대표하는 경전으로 구마라집이 402년에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선입문서'로 괜찮은 책일듯 싶다. 이 책은 모사이트에서 사은품으로 염주까지 같이 받았는데, 염주 욕심에 고른 책이긴 하지만,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인도사 108 장면>은 인도역사를 108 주제를 통해서 고루하지 않게 볼 수 있게 만든 책으로 보인다. 책 표지도 그렇고 편집도 현대적이고 시원스러운 맛은 있는데, 본문에 들어간 사진들의 양이 적고, 크기도 작은 편이다. 그래도 주제들을 흥미롭게 잡은 것들이 눈에 띄어서 훑어 보기엔 좋아 보인다.

 

 

 

 

 

                     <사단칠정론> <동양의학의 기원> <불교 임상심리학>

<동양의 합리사상>은 동양의 합리성을 논리(학)적인 측면에서 다룬 책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1부는 인도사상, 2부는 중국불교와 중국 고대사상에서의 논리를 다룬다. 저자 쓰에끼 다께히로는 비트겐슈타인, 기호논리학 등에 관한 책을 썼고, 비교사상에도 큰 관심이 있는 학자로 보인다. 잘 눈에 띄지 않은 책이지만, 동양의 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한테는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사단칠정론>은 예전부터 사려던 책인데, 이제서야 구했다. 글자 크기가 작고 좀 두툼한데, 당장은 아니라도 나중에 천천히 볼 생각이다.      <동양의학의 기원>은 동양의학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이 모아져 있다. 저자(박희준)는 동양의학의 전문가는 아니고, 동양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 책은 동양의학의 역사를 5,000년 이상으로 보고 있으며, <도덕경>, <논어>, <장자> 속에서 의학을 살피기도 한다. 또한 주역, 황제내경 그리고 현대 물리학, 카오스, 시스템 이론 등도 짦막하게 다뤄진다.     <불교 임상심리학>은 불교 '유식학'을 저자의 시각을 통해 현대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있지만, 시선을 크게 끌 만한 것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의학의 진실>은 지금 현대 의학의 치부를 건드리는 건 아니고, 과거 거의 미신 행위에 가까운 (주로 유럽의) 의학을 드러내려는 책 같다. 나중에 천천히 읽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HOW TO READ 시리즈>로 

이렇게 세 권을 구해서 읽었다. <라캉>이 제일 마음에 들었고, <니체>는 기대보다는 좀 밋밋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짧은 책 한권으로 그의 전기, 후기 사상을 정리해주는 것 만으로도 일단 만족한다.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자꾸 미루게 된다. 천성이 게으른가?  

 

 

이렇게 6월 들어 구한 책들 중에서 몇 개를 골라 올려봤다.

 

 

====================================================================

-본문과 관련이 있는 책들-

 

 [괴델 / 데이비드 보드웰]

 

 

 

 

융과 괴델이라.. 선뜻 이해하기 힘든 궁합이다. 거기다 갑자기 묘한 복잡함이 고개를 든다. 라캉은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라캉을 앞세운 활객 지젝은 융에 대해 비판적이다.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에 대해선 이미 <영화예술>이란 책을 통해, 그의 영화에 대한 식견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아카데믹하다고 해야 하나? 뭔가 체계적인 정리와 더불어 왠지 믿음직스러운 주장을 펼친다. 특히 작가주의 영화는 물론 대중영화, 그리고 영화사와 영화 이론 전반에 걸친 지식이 돋보이는 학자로 보인다. 동양권 영화에도 큰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오즈 야스지로나 홍콩 영화에 대한 책도 집필한 경험이 있다(<Ozu and the Poetics of Cinema'1988>와 <Planet Hong Kong'2000>). 거기에 부드러움과 위트를 바라는건 큰 욕심이겠지.. <세계영화사>, 이 책도 탐이 나는 책들 중 하나다. 곧 구할 예정인데, 특히 제 2권에 평소 관심 있던 영화작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어 우선 선택할 것 같다.

 

[인지과학 / 불교심리]

 

 

 

 

우선 <이미지와 마음>이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철학, 그리고 인지과학-이란 부제를 가졌는데, <영화인지기호학>과 같이 두뇌에 바로 지적인 자극을 안겨다 줄 책으로 보인다. 저자 그레고리 커리의 이력은 좀 특이한데, 경제학과 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특히 철학 분야는 저술 제목을 보니까 '분석철학'쪽이었던거 같다. 그러다가 그 후에 예술철학(미학)과 심리철학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아마 이런 경향으로 볼 때, 쉽게 비약하지 않는 분석적인 기류에 미학적인 감각으로 영화라는 예술-대상을 인지적인 측면에서 다루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읽기도 전에 지나친 추리를 남발한 것은 아닐까?        최근에 불교를 현대심리학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시도들이 자주 보인다. 아마 앞으로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좀 더 전문적인 연구들이 생겨날 거 같기도 하다. <불교와 심리>는 단행본은 아니고 2006년 창간호라 되어 있는데, 그렇게 눈에 띄는 주제들은 보이질 않는다.  알라딘에는 없지만, 가와이 하야오가 지은 <불교와 심리치료>는 불교와 심리를 주제로 한 책으로는 그래도 영양가가 있어 보인다.

 

[숫타니파나 / 능엄경]

 

 

 

 

 

 

[금강경]

 

 

 

 

 

 

 

 

<성명쌍수로 풀이하는 금강경 진해>

 

 

 

 

                                                                                             <금강경>  <금강경 파공론>

'금강경'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리고 이렇게 많은 금강경 중에서 좋은 금강경의 거울(번역, 해설서)을 고른다는 것도 참 어려울 것 같다. 여기에 독특한 제목을 가진 <천문학자가 풀어낸 금강경의 비밀>이 보인다. 대개 제목이 이렇게 뭔가 새로운 비밀을 알려줄 거 같은 책들이 실제로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어떨지.. 모르겠다.

이 많은 금강경 책 중에 잠깐 한 권을 짚어 보고, 끝내야 할 것 같다. 바로 지욱대사(智旭大師)가 지은 <금강경 파공론>이다. '파공론(破空論)'이란 글자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공을 깨부순다'는 것이다. 즉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시기(명나라)에도 '금강경'의 '공(空)'에 집착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러한  악취공자(惡取空者)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