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를 슬슬 돌리기 시작할 즈음..
나는 요새 돈 주앙에 관한 책을 하나 집어 들고 막 재미를 붙이려는 참이다.
<돈 주앙의 읽어버린 일기>..460페이지가 넘는 두께라서 처음엔 망설였는데, 잠깐 구경 삼아 보다가 벌써 약 3분의 1은 본 거 같다. 특히 '은밀한 방문'이란 제목을 가진 장은 꽤 재미가 있다. 책 맨 앞부분에서 저자 더글러스 에이브람스는 누군가에게 '돈 주앙의 일기'를 건네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정말인지 아니면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려는 하나의 장치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보는 돈 주앙의 삶의 태도는 그러나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운율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여자들을 누리면서도 남다른 품위를 지켜나갈 수 있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책의 저자 더글러스 에이브람스(Douglas Abrams)의 좀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그는 대주교, 요가 수행자 그리고 태국의 기공 수련가로 유명한 만탁 치아 등과 같이 집필 작업을 한 것으로 나온다. 아래와 같은 약간 민망하지만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의 책들이다.
멀티가 이런데도 쓰이는구나...
좀 의아한 맛도 있긴 한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돈 주앙의 이미지에 필요한 동양적 비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돈 주앙이 누구인가. 바로 여자의 욕망을 깨워서 기쁨을 되찾아 주는 남자가 아니었던가. 그가 스스로 터득한 여자에 대한 철학과 기술도 충분했겠지만, 돈 주앙과 성도인술의 매치는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경계 말고는 꽤 잘 어울리는 짝이다. 그걸 돈 주앙은 전혀 전수받을 도리가 없었겠지만, 현재 그를 소설로 만든 저자가 대신 성도인술과 접속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어쨌든 과거의 돈 주앙과 현재의 더글러스 에이브람스와 만탁 치아라는 삼각구조를 통해 성도인술을 익힌 (귀족적) 호색한이 잠깐 생성하는 모양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소주천 수련에 의한 자가치유건강법>
만탁 치아의 책은 국내에 꽤 많이 나온 편이다. 그러나 같은 책이 중복된 경우가 있다. 아마 <성도인술>이란 책이 <멀티 오르가즘 맨>과 같을 것이다. 아마 그 이전에 <제목이 필요 없는 책>으로도 나왔을 것이다(그 당시만 해도 출판사와 역자가 그래도 수줍음이 있었나 보다). 대개 이런 쪽이 처음에 이목을 끌다가 사이비로 몰려서 금방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만탁 치아의 경우는 꽤 오래 가는걸로 봐서 뭔가가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기공마사지>
하여튼, 만탁 치아의 책은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정력을 증진시키는 기공법쯤 될 거 같다. 돈 주앙의 잃어 버린 일기에서 성도인술로 이끌린 이 욕망의 블로그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