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이런 더운 여름엔 무서운 이야기가 더욱 귀에 솔깃하다. 은밀한 어둠 그리고 속삭임... 이들에게도 역사는 있을 것이다.

 

 

 

 

<신화로 보는 악과 악마>의 저자의 이력을 보니까, 철학을 전공하고 그 후에 종교와 신화에 대한 많은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도 단지 흥미에 기댄 것보다 뭔가 체계성이 보인다. 먼저 악이 무엇인지를 묻고, 신화, 철학, 종교에서의 악의 개념을 살핀다. 그리고 악마의 유래나 어원 같은 기원을 소급하는 것에서부터 괴물, 용 같은 악마의 전이-변신 문제, 이 책의 하이라이트 성격인 악신 열전 그리고 민담과 문학에서의 악-악마의 드러남을 다루고 있다. 책값도 적당하니 한번 구경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악마의 역사>는 1900년에 처음 나왔다니까, 꽤 된 책이다. 그 당시 어떻게 자료를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대 이집트, 아카드와 셈족, 페르시아, 인도의 브라만, 힌두교와 불교 등 동아시아를 제외하곤 흘러 살필 곳들은 잘 찾아가는 것 같다. 이 책은 악과 악마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지금보다 100년전의 연구성과인 만큼 그 당시 인문학자의 시선이 어떠했는지도 더불어 살필 수 있을 것 같다.  

<육체의 악마(Le Diable au Corps'1923)>, 이 소설은 레이몽 라디게가 스무살에 발표했다고 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제목이 비슷한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육체와 악마 Flesh and the Devil'1926)>와는 다른 영화다.

 

 

 

 

SXE.. 이 뒤바뀜, 알파벳의 꼬인 자세가 에로틱하다. 성에 대한 종교, 예술, 문화 전반에 걸쳐 고대부터 현대의 포르노까지 춘화까지 결들이며 충만하게 꾸며진 듯 하다. 그냥 생리적인 호기심만이 아니라 그것을 좀 더 미지근한 지적 시각으로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우리나라의 성은 어떤 음침함과 어둠속에서 묘하게 엉키는 심리보다는 해학과 자연과 교감하는 건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성 숭배문화>은 이러한 한국인, 한국문화의 성을 그래도 전문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보이는데,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전에 <악마의 정원>를 봤었는데, <식탁 위의 쾌락>도 그런 엇비슷한 주제를 가진 책 같다.

카마수트라.. 이 책은 그 야릇한 명성에 비해서 그렇게 야한 책은 아니다. 아니 야하기 보다는 차라리 진지한 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인도인에게서 남자와 여자는 소우주의 각기 다른 씨앗이고 해와 달을 상징하는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세속적으로 보면, 건강의 차원이고 좀 더 시각을 넓히면 우주 에너지 교감의 활성화의 차원에서 이러한 남녀의 자세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동물의 영혼>은 독특한 책 같다. 동물과 인간의 어떤 연결고리를 유념한 책으로 보이는데, 특히 고대부터 신화와 상징을 통해 인간과 더불어 교감했던 흔적들도 살피는 것 같다.   인도 사원에는 돌로 조각된 많은 동물들이 보인다. 그들이 사람처럼 성교를 하는 장면, 혹은 사람과 같이 그것을 하기도 한다. 우연찮게 두 책은 그런 면에선 공통점이 있다.   <이거룡의 인도 사원 순례>도 이렇게 더운 여름 저녁에 한번 펼쳐보고 싶은 이국적인 돌들의 모양들이다.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어떤 포즈들로 우리의 시선을 맞이할까?

어떤 책을 보다가 연금술과 관련된 파라켈수스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부랴부랴 파라켈수스를 검색해보았지만, 그를 다룬 책은 정말 없었다. 그거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말로 된 책으로는 이 책 <파라켈수스>가 유일하다. 이 신비스러운 남자는 어떤 비법들을 품고 있을지 궁금하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의 언어>라.. 난 여태 이런 종류의 책을 보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갔다. 그런데, 독불장군처럼 자기 멋대로 언어를 휘두르고 사는 것 보다는 부드러운 언어의 궤도를 짐짓 알고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함께 사는 세상 아닌가?                   <만화로 보는 중국신화> 이런건 아이고 어른이고 없다. 있으면 뚜딱 헤치우고 싶다.

 

 

 

 

 

<철학 지도 그리기>, <펼쳐라 철학>, <철학의 구라들>은 비슷한 무게를 지닌 대중을 위한 책으로 보인다. <세계사를 바꾼 철학의 구라들>은 제목만 보고서도 이 책이 그런 철학자들의 구라들을 조목조목 따지는 책이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하나의 역설인데, 정말 그러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무겁고 날카로운 책이라면, 그런 제목을 붙이진 않았을 것이다(물론 우리나라에서 이런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부터 현대철학까지 그러한 비판 작업을 수행할 사람도 드물뿐더러 그 방대한 작업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언다. 이런 종류의 책으론 전에 출판사 책세상에서 나온 <철학의 큰스승 50>이 괜찮았던 거 같다. 물론 지금은 새책으로 구할 수 없지만..

좀 무거운 책을 한 권 찾아봤다. <과학적 발견의 패턴>은 과학 연구 방법에서 "귀납이다 연역이다" 하는 뻔한 것에 회의적인 시각이 담긴 듯 하다. 인과성의 문제도 중심적으로 다룬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양자 물리, 입자 물리에 더 비중이 담긴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을 보니까 언뜻  폴 페이어아벤트(P. Feyerabend)의 책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 Outline of an anarchistic theory of knowledge, 1975>이 생각난다. 이 책도 과학과 철학의 긴장된 관계, 그리고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지적인 도전이 담겨 있다. 이 멋진 책이 내 방 어디선가 사라졌다.

이 유령이 된 책 -찾기 놀이-를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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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자크 라깡 - 백의신서 31
마단 시럽 지음 / 백의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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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가가 골고루 들어 있어 우리 몸에 이롭다. 영양이 한쪽으로 과한 것보다 적당히 여러가지가 야문게 낫다. 

우리는 라캉에 관한 책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입문서로 좁혀 본다 해도 그렇다. 그리고 번역도 그 안에서 되먹임 효과가 있었는지 전보다 매끄럽게 나온다. 이젠 라캉에서 자주 나오는 '왜상 (anamorphosis) 효과'를 원하지도 않던 번역서(글)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경우는 어느 정도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 나는 덜 매끄러운 번역서 한 권을 골랐다.  이때는 라캉이 라깡으로 불렸나 보다. <알기 쉬운 자끄 라깡>. 10년의 시간이 우리나라에선 이 남자 이름에서 'ㅋ'이 'ㄲ'를 억압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젠 그의 유령을 부르는 주문에서 '라캉'이 더 효과적인 기표의 자리를 차지했다.

마단 사럽(Madan Sarup)의 이 책(Jacques Lacan, 1992)은 우리나라에서 1994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그래서 그 당시에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지금보다 더 불리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선 조금 불편하고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가지 용어를 융통성 있게 유의해서 본다면, 그리 험난한 독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우선 다음과 같은 용어 세트를 주의하면 좋을 것 같다.

욕망(desire), 욕구(need), 요구(demand)

요새는 위와 같이 대개 번역되는데, 이 책에선 'need'를 '필요'라고 번역했다. '필요'라고 나오면 그것을 '욕구'로 대체해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필요 -> 욕구(need)

그리고 또 라캉에게서 중요한 '(소파의) 누빔점, 고정점(points de capiton)'은 이 책에선 '닻 내리는 지점'이라고 나온다. 더 문학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쓰이는 걸로 이해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주이상스(jouissance)는 '희열'로 번역했다. 여태 향유, 향락 등으로 어쩔 수 없는 미끄러짐을 겪었는데, 그냥 '주이상스'로 하는 게 무방해 보인다.

 

이 책은 라캉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기보다, 라캉이 등장하기 전 사회의 사상적 배경으로 좀 더 넓은 맥락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시 클로즈업해서 개인 라캉에게 영향을 준 여러 인물들도 단계적으로 탐색해 들어간다. 즉 (원격)거리조절을 통해서 라캉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매만진다. 그리고 수평적인 이동도 여러 단계를 거친다. 기본적으로 시간적 순서를 따르긴 하지만, 프로이트-초현실주의-철학-언어(학)를 통과하고, 주요 배경이자 인물인 라캉에게 심도(딥 포커스)를 준다. 그의 대표 저작인 <에크리>와 핵심 개념이 담긴 트라이 앵글-상상계, 상징계, 실재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수평 이동은 계속 되는데 풍경이 좀 더 다채로워진다. 성 사랑 페미니즘-영화-문학으로 이어지면서 라캉에 대한 입체적인 스펙트럼은 한껏 뽐냄을 멈춘다.

프로이트 부분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블룸스버리 그룹), 초현실주의자들과의 영향 관계-로제 카이유와(동물의 의태 관련), 달리, 앙드레 브르통, 철학에서 스피노자와 헤겔, 문학에서 햄릿과 포우의 '도난당한 편지'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독회 참석 일화 등은 흥미로운 것들이다. 라캉의 핵(核)에 비유적 이미지로 다가갈 장치 중에 하나인 매듭-고르디우스, 보로미안과 뫼비우스 띠에 대한 부분도 주의 깊게 볼 부분이다.

 

그렇게 두꺼운 책이 아님에도 담긴 내용이 알차고 잘 꾸며졌다. 요새 세련된 표지로 나오는 책들에 비해 좀 알뜰한 모양새의 책이지만, 라캉 입문에서 한 수 크게 배울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론 이 책은 원서로도 구하기가 힘들다(아마존에서도 아마 새책 재고는 없는 걸로 안다). 이렇게 우리말 번역서로 만날 수 있다는 건 한편 다행이란 생각을 해본다. 번역이 약간 매끄럽지 않지만, 그 가치가 높기에 이 책에 대한 나의 평점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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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an 2007-08-1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개정판도 기대해 봅니다.
 

오늘부터 더 덥다더니, 정말 미묘하게 더 덥다. 일본은 40도가 넘는단다. 그렇다고 시간이 빨리 흘러 가을이 오기만 기다릴 수도 없다. 여름을 건너 뛰기 위해 젊음을 단축하는 건 아까운 일 아닌가..

최근에 <만들어진 신>이 강세다. 기독교는 약간 홀쭉한 인상을 지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또 조금 기다리다 보면, 여전히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그리고 나머지 세상은 전처럼 흘러가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젝의 신간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것도 마침 기독교와 관련된 책이다. 아마 <혁명이 다가온다>에서도 어렴픗이 기억이 나지만, 지젝은 무식하고 용감하게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더위의 종류처럼 미묘한 것인데,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지젝은 우리가 흔히 아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다른 차원의 기독교에 대해선 긍정적인 면도 보인다. 그러므로 이 책 <죽은 신을 위하여>는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거물급 투수가 올라와서 타자를 윽박지르듯 강속구로 간단히 삼진아웃 시키듯 기독교를 잡아대는 성질의 책은 아닐 것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

니체나 들뢰즈와 같은 反헤겔 사유의 열풍 속에서도 헤겔의 윤곽은 시들지 않는 것 같다. 지우려고 대는 순간 덧나듯이 헤겔의 부활 속도는 빨라 보인다. 거기다 라캉과 지젝의 역공이 드세다. 이 거대한 양진영에서 그나마 안전한 인물은 스피노자가 아닐까? 비토리오 회슬레의 <헤겔의 체계>는 최근에 나온 헤겔 관련 책 중에서도 왠지 무거워 보인다. 책소개에 플라톤 헤겔로 이어지는 '객관적 관념론'을 현대에서도 가능한 그 무엇으로 다져보고자 하는 의욕이 느껴진다. 나로서는 우선 장 아뽈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더 급한게 사실이다. 라캉에 대한 간접적 내공 심화를 위해 구한 책인데도 아직 열어보지도 못했다.

발터 벤야민의 수액을 아직 포만감을 느낄 만큼 빨아보지 못한 형편이라, 그에 대한 짧은 감상도 내놓을 형편은 아니다. 여태 귀로는 수도 없이, 혹은 다른 책들을 통헤서 이 남자의 이름을 동공에 희미하게 각인이 될 정도로 봐 왔으면서도..

그리고 흥미를 갖고 있으면서도 본격적으로 건드리지 않은 이유도 나조차 모르겠다.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이란 부제는 참 멋지고 힘차다. 게릴라의 행동미학이 뉴런들을 붉게 물들이고도 남겠다. 그 멋진 부제를 가진 <일방통행로>에서는 벤야민의 '몽타주적 글쓰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몽타주적 글쓰기라.. 이번달엔 이 남자를 생포해야 겠다.

 

들뢰즈가 현대영화의 시작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로 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누벨바그의 작가들 고다르, 트뤼포 등을 다룬 책 <뉴 웨이브>가 보인다.

<시네마 그라피티>는 아마 대학생들 읽기에 편하게 구성된 책으로 보인다. 옛날식 영화개론서와 달리 좀 더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개론서적 느낌이 나는 책같다.

 

 

 

 

 

위의 책 다섯 권은 다르면서도 뭔가 비슷한 기운이 감도는 책들이다.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의 개정판 <정복은 계속된다>는 촘스키의 책으로 1492년을 시작점으로 그 후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지식인의 체계적인 접근이 담긴 책으로 보인다. '미국은 어떻게 서부를 개척(정복)했는가'의 세계버전이 아닐까?     윌러스틴은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식인의 관심을 잃지 않는 것 같다. <지식의 불확실성>은 지식체계에 대한 그만의 비전이 실린 것 같다. 19세기식 낡은 지식의 틀은 물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방법론에 대한 비판과 좀 더 트인 새로운 모색에 대한 노학자의 충고가 깃든 책인듯 하다.      <지도자의 조건>... 대선을 앞두고 시끄러운 요즘. 특히 와닿는 제목의 책이다. 지도자의 조건과 더불어 좋은 지도자를 뽑는 비결 같은 것도 무척 필요한 시기다.      신화와 경영이라.. <그리스, 로마 인간경영학>은 제목을 통해 대충 어떤 책인지 짐작이 간다. 세 명의 (역사) 학자가 참여햇다고 하는데, 고대의 (확실하다고 보장 못하는) 역사, 일화에서 현대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패턴을 찾아본다는 식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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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8-1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도서들이 살짝살짝 겹치기도 하는 거 같네요^^ 근데 혹시 코제브의 헤겔 관련 서적이 번역된 게 있는지 혹시 아시는지요? 라캉의 헤겔은 이뽈리뜨보다는 코제브의 것을 취한다고 읽은 거 같은데...

TexTan 2007-08-1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도서들이 겹친다니 반갑군요. 이쪽 분야가 원래 좀 그렇지 않나요^^. 바라님 말씀대로 라캉은 코제브의 헤겔 강의를 직접 듣기도 하고 영향을 받았다죠. 거기서 쟁쟁한 사람들과도 교우가 있었겠고요. 바따이유와도 거기서 만났고, 나중에 바따이유의 부인과 결혼도 한다죠^^ 아쉽게도 코제브의 책이 나왔다는 소문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어디선가 코제브 문서를 받은 기억은 있는데, 어디 뒀는지 가물하네요. 그런데 바라님 눈에서 레이저 나가는 만화 주인공은 뭔가요?

바라 2007-08-1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유유백서의 코엔마입니다(염라대왕 주니어;). 요새 케이블에서 해주길래 중학생 때 생각이 나서 한번 바꿔봤지요-_-
 
들뢰즈 누구나 철학총서 3
박성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들뢰즈. 이 남자 죽고 나서도 여전하다. 창밖의 소멸은 혹시 그의 유기체, 윤곽선이 흐트러지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비유기체적 차원에서 그의 회귀는 열린 창문이라면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순간 짧은 단말마를 내 뱉는다.

"나간 구멍은 하나인데, 들어오는 구멍은 많구나"

그래서 내 방에도 창문이 있는 관계로, 오늘 입문서 성격의 희멀건 책을 펼쳐보는 나의 독서 후 감상을 시작한다.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하는 누구나철학총서-라며 출판사 '이룸'에서 장기적으로 인문학 책에 대한 큰 기획을 세웠나보다. 이 들뢰즈도 그 결과물 중 이른 시기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들뢰즈가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라 그런건지?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는 건 약간 과장이다. 그래서 너무 편한 마음으로 이 책에 순진한 기대는 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에 대한 입문서이긴 하지만, 들뢰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루진 않는다. 저자(박성수)는 구체적인 부분을 문지르는 기법을 택했는데, 그 두 지점은 영화와 회화이다. 결국 '이미지'인 것이다. 들뢰즈의 특성상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방식은 그렇게 효과적이라 보기 어려운데, 차라리 도드라진 부분을 자극하면서 거기서 드러나는 들뢰즈의 구체성에 바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제1부 '영화 이미지'에서는 베르그송을 기반으로 들뢰즈가 어떻게 이미지-영화 철학을 꾸려 나가는지, 그 하나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거기에 시간이 가미되면서 더 드라마틱한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과 알렝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에서>는 현실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주요한 모범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화가 뵐플린을 통해서 바로크 스타일인, '어긋난 각도'에 대한 부분도 흥미를 돋운다.

이렇게 지적인 땀을 흘리며 영화와의 씨름을 마칠 때 쯤, 프란시스 베이컨의 이쁘지 않은 덩어리들 (그림들)을 감상하라는 '입 벌린 고통의 외침'이 기다린다. 늘 이성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어느날 불쑥 누군가가 '감각'이 더 우월하다며 '자신의 윤곽선을 추월하려는 힘'을 보여준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 모양새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선 인간되기 보다 동물되기가 더 권장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미 익숙한 '겉'이 아니라 일(사건)들이 벌어지는 그 원초적인 현장에서 뻔한 스토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생성을 긍정하자는 제안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그곳이 바로 '내재성의 평면plane of immanence', 윤곽선 안에 사로잡힘을 능히 떨칠 수 있는 소멸과 생성이 왕성한 곳이다. 이 고정되지 않은, 쉼 없이 부글부글 끓는 평면 위에 이 책도 놓여 있다. 그 평면을 유념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크게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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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나카자와 신이치 외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거장 소리를 듣는 일본의 두 지식인이 얼굴을 맞대고 불교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현란한 빛깔이 화살 날아가듯 머리를 시원하게 뚫고 지나간다. 이런 더운 여름에 짜릿하게 맛볼 수 있는 지적 쾌감이다.

나이가 지긋이 들었는데도 그들의 입담에서는 주름지고 늘어진 사고를 보기 힘들다. 가와이 하야오가 대가다운 넉넉함으로 놀이판을 자연스레 옮기거나 확장시키면, 나카자와 신이치는 유순하게 따라가면서도 팽팽한 활시위를 놓지 않는 패기가 있다. 그리고 결정적일 때 과녁을 맞춘다.  

첫 장 '불교로의 회귀'는 상당히 몰입도가 좋다. 불교에만 제한되지 않고 인문학 전반에 걸쳐 옹골찬 시선으로 짚는 빼어난 솜씨가 보인다. 그리고 평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불교와 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성에 대한 고뇌와 불교'에는 감각적인 재미마저 있다. 그것 뿐이던가? 바로 부록처럼 책 중간에 끼여 있는 팔리어를 번역한 '석존과 제자의 섹스 문답집'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에 대한 규정들이 노골적이지만 태연하게 적혀 있다. 이것만을 주제로 삼아 책을 만들어도  대단히 흥미로울 것 같다.

그리고 약간 잠잠한 기운이 든다. 연못에 놀던 개구리들도 숨었는지 활달한 풍경은 아니다. '불교와 부정', 여기서 두 학자는 유독 불교에 '부정'의 기운이 강하게 감돌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연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타당함도 느끼면서 약간 명쾌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인도 전통 철학을 고수하는 브라만 학자들이 '단정'하는 버릇이 있고, 이에 맞서는 불교에서는 '부정'의 테크닉이 발달했을 수 있다는 식이란 것이다. 그런데 인도의 전통 사유도 가령 우파니샤드에서도 '네티 네티 neti neti'라는 부정 어법이 강한 편이다. 왜냐하면 (진리, 진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음을, 언어를 통해 꼭 집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이 책의 끄트머리에서 예상치 못한 번뜩임과 섬광이 팍팍 터지는걸 구경하게 된다. '대일여래의 한숨-과학에 대해서'라는 제목이 붙은 장이다. 잠깐 핵심어(구절)를 골라 본다면, 양자론과 만다라, 가상의 레벨, 행렬, 매트릭스는 바로 만다라, 태장계, 금강계, 대일여래의 의도와 동시성syncronicity,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의 패러독스, 자궁과 뇌의 결합체-어머니와 아들의 결합체, 만다로 모양의 중공中空구조.. 등이다. 대충 어떤 풍경이 담겼을지 짐작은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간혹 인문학자들이 (개론적인 수준의) 현대물리학을 끌어다가 보기엔 멋드러진데, 알맹이 없는 것들을 내 놓는 일들을 많이 봐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특히 나카자와 신이치는 그런 수준들보다 레벨이 높아 보인다. 만다라를 가상의 시공에서 끝없이 퍼져 나가는 숫자들의 연속적인 흐름(행렬, 매트릭스), 그 자체의 총체로 설명하는 양자론적 시각은 여태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된 지적인 향유로만 이어졌다면, 오히려 더한 여운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간 이후에 약간 잠잠한 맛이 끝에 활달한 기운을 만나 기분좋게 솟는 느낌. 이것은 <불교가 좋다> 이 책이 가진 자연스러운 리듬감인데, 그 높고 낮음의 율동이 불교를 통해 한바탕 즐거운 두뇌춤을 추게 만들었다. 두 연주자의 솜씨는 물론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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