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누구나 철학총서 3
박성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들뢰즈. 이 남자 죽고 나서도 여전하다. 창밖의 소멸은 혹시 그의 유기체, 윤곽선이 흐트러지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비유기체적 차원에서 그의 회귀는 열린 창문이라면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순간 짧은 단말마를 내 뱉는다.

"나간 구멍은 하나인데, 들어오는 구멍은 많구나"

그래서 내 방에도 창문이 있는 관계로, 오늘 입문서 성격의 희멀건 책을 펼쳐보는 나의 독서 후 감상을 시작한다.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하는 누구나철학총서-라며 출판사 '이룸'에서 장기적으로 인문학 책에 대한 큰 기획을 세웠나보다. 이 들뢰즈도 그 결과물 중 이른 시기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들뢰즈가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라 그런건지?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는 건 약간 과장이다. 그래서 너무 편한 마음으로 이 책에 순진한 기대는 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들뢰즈에 대한 입문서이긴 하지만, 들뢰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루진 않는다. 저자(박성수)는 구체적인 부분을 문지르는 기법을 택했는데, 그 두 지점은 영화와 회화이다. 결국 '이미지'인 것이다. 들뢰즈의 특성상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방식은 그렇게 효과적이라 보기 어려운데, 차라리 도드라진 부분을 자극하면서 거기서 드러나는 들뢰즈의 구체성에 바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제1부 '영화 이미지'에서는 베르그송을 기반으로 들뢰즈가 어떻게 이미지-영화 철학을 꾸려 나가는지, 그 하나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거기에 시간이 가미되면서 더 드라마틱한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과 알렝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에서>는 현실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주요한 모범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화가 뵐플린을 통해서 바로크 스타일인, '어긋난 각도'에 대한 부분도 흥미를 돋운다.

이렇게 지적인 땀을 흘리며 영화와의 씨름을 마칠 때 쯤, 프란시스 베이컨의 이쁘지 않은 덩어리들 (그림들)을 감상하라는 '입 벌린 고통의 외침'이 기다린다. 늘 이성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어느날 불쑥 누군가가 '감각'이 더 우월하다며 '자신의 윤곽선을 추월하려는 힘'을 보여준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 모양새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선 인간되기 보다 동물되기가 더 권장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미 익숙한 '겉'이 아니라 일(사건)들이 벌어지는 그 원초적인 현장에서 뻔한 스토리를 거부하고 새로운 생성을 긍정하자는 제안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그곳이 바로 '내재성의 평면plane of immanence', 윤곽선 안에 사로잡힘을 능히 떨칠 수 있는 소멸과 생성이 왕성한 곳이다. 이 고정되지 않은, 쉼 없이 부글부글 끓는 평면 위에 이 책도 놓여 있다. 그 평면을 유념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크게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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