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lmore West..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유명한 공연장이다. 아마 지금은 사라진 걸로 알고 있다. 이 곳은 정말 내노라 하는 음악인들이 많이 거쳐 갔다. 내 기억으론 올맨 브라더스 밴드그레이트 풀 데스의 공연도 유명한 걸로 알고 있다.

제플린도 새파랗던 시절, 여기서 몇 차례 공연을 했다. 그 해가 1969년인데, 그 후에도 있었는지는 찾아봐야 할 터.. 어쨌든, 힘의 노련한 조절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야성이 흐르던 시기인 만큼 음악에도 그러한 것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음악을 좀 성급하게 듣는 시기에는, 강하고 분명한 것들에 왠지 솔깃해진다. 특히 하드락이나 메탈의 경우엔 보컬은 우렁차야하고 기타는 무지하게 빠르면 좋은 것이다. 이 시기가 좀 지나야 두두둥 거리는 베이스도 들리고 드럼 소리에도 신경을 쓰게된다.

제플린의 스튜디오 앨범은 만족하나, 가령 <더 송 리메인스..> 라이브 앨범에서 강하지 않다고 아쉬워했던 사람들이라면, 'Fillmore West' 공연은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이 여기선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이.. 뭐랄까? 보통 로버트 플랜트하면 샤우트 창법인데, 그거 하나로 그의 보컬을 설명하기는 좀 뭐하다. 가령 레드 제플린 따랑쟁이(모사 밴드) '킹덤 컴'의 보컬을 들어 보면 금방 구별할 수 있다. 무게감의 차이..? 로버트 플랜트는 가늘고 야리하게 높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중간 아래 어딘가에서 울려 퍼지는 진원지를 가지고 있는 듯이 들린다.

'Dazed And Confused'는 야드버즈 시절에 기본 골격이 만들어진 곡인데, 제플린에 와서 보컬이 더욱 강화되어 제대로 된 모습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인상적인 베이스와 힘이 넘치는 드럼이 가미되어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69년 4월 27일 공연에서 이 곡은 혼돈의 배경에서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 분출하는 힘이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 노련한 조화보다는 각자의 힘을 뿜어내려는 욕구가 더 앞서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아마 이런 상황을 지미 페이지는 좋은 현상이라 받아들이진 않겠지만(제플린은 무엇보다 멤버 전원의 조화로움을 가장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센걸 밝히는 무리들의 귀는 충분히 만족시키지 않을까? 오늘 새벽에 나도 그러한 무리의 귀를 갖고 이걸 들었다. 몇 번 들었다고는 말 못한다. 다들 알지 않은가? 이 곡 무지 길다는거..

이 외에도, I Can't Quit You, You Shook Me, Babe I'm Gonna Leave You, How Many More Times 등이 음질은 고약하나 그것을 참고서라도 듣게 만들 젊은 마력으로 도사리고 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지미 페이지가 로버트 플랜트를 처음 보고 나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니 저런 목소리를 가진 녀석이 왜 여태 못 뜬거지? 성격이 더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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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사진 작가 헬무트 뉴튼이 그렇게 자주 보던 흑백 고전 영화가 바로 막스 오퓔스 감독의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헬무트 뉴튼의 흑백 사진 중에는 그러한 영향을 짐작케하는 작품들도 더러 보인다.

 

 

 

 

이 감독도 프랑스 영화작가들에 의해 재발굴된 경우에 속하는데, 트뤼포는 그를 장 르느와르, 로베르 브레송, 장 꼭토 등과 함께 작가라는 격을 부여한다. 막스 오퓔스는 특히 인간의 '욕망'을 스크린이라는 그릇에 담는 독특한 재능을 갖고 있다. 이번에 여러 작품이 DVD로 나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무방비도시>는 최근에 손예진이 나오는 우리나라 영화의 제목하고도 같다. 물론 제목만..

 

 

 

감독의 이름에 미리 기대어 대표작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그렇게 대단한 영화라니, 도무지 통.."이라며 가벼운 찜찜함을 속으로 낙서하듯 되뇌이는 영화들이 있다. 전에 <독일영년>을 보고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동시에 그만큼 감정이 복원되기도 한다.

뭐.. 시점이니, 카메라와 대상과의 거리가 객관성과 주관성에 어떻다느니 하는 것은 생략하자. 어쨌든 다행히도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몇 편이라도 여기 이렇게 존재하니까. 특히 아직 보진 못했지만, 로셀리니의 여인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 한 <이탈리아 여행>도 있으니 좋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온 영화들>

 

 

히치콕의 <스펠바운드>와 <오명>에서 탱탱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기억에 남는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 <이창>에 나온 그레이스 켈리랑 가끔 헷갈리곤 한다.  <성 메리의 종>도 재미있게 본 영화고, 그녀의 대표작에 속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어릴 적에 명화극장 이런 데서 하는걸 언뜻 본 기억이 나지만, 제대로는 아직 못 본 영화다.      좀 안쓰러웠던 영화는 베리만(베르히만) 감독의 <가을소나타>이다. 한 시절 미모로 풍미했던 여배우를 나중에 늙은 모습으로 마주쳐야 할 때.. 왜 스스로 마음 속의 고개가 수그러드는 것인지..

 

 

 

 

 

장 피에르 멜빌은 꽤 이른 시기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누벨 바그 영화에도 영향을 줬는데, 특히 저예산과 짧은 시일에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그러하다. 악당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는데(알렝드롱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도 있음), 관객을 그들에게 동화시키긴 하지만 결국엔 죄값을 치르게 하는 냉정한 결말을 고수하기도 한다.

고전으로 유명한 <선셋 대로>의 감독 빌리 와일더는 미국 영화의 거물이라 봐도 손색이 없다. 마릴린 먼로가 나와 유명한 <7년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 그리고 오드리 햅번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브리나> 등 여배우 복도 많지만, 대중들에게도 큰 호응을 받은 감독이다. 대중의 기호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화를 내 놓기도 했지만,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도 이 감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나는 빌리 와일더 영화 중에서는 <이중배상>을 재미있게 봤다. 1940년대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봐도 구성이 허술하지가 않다. 팜므파탈이 나오는 고전적인 수법이긴 하지만, 히치콕과는 또 다른 긴장감을 간직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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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의 <주말>를 보고 받은 인상에 대한 짧은 느낌을 적는다.

난 그렇게 고다르의 영화가 확 땡기진 않는다. 실험적인걸 좋아하지만, 그의 방식에는 작가(즉 고다르 자신)의 과잉된 의도들이 팽팽한 힘줄처럼 영화 끝까지 고집스럽게 버틴다. 그래서 가끔 재미있는 장면이나 대사가 나와도 배꼽 속에 감겨진 매듭이 다 풀리듯 웃게 되진 않는다.

 

 

 

 

<주말Weekend>(1967)은 스크린 안에서 분출되는 혁명, 즉 '이미지 게릴라전'이라고 볼 만한 치고 빠지기 같은 진행이 돋보인다. 컷도 정말 '내(고다르) 멋대로' 식이긴 하지만, <작은 병정(Le Petit soldat)>(1963)같은 영화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보기에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마치 정신분석 상담을 하는 듯한 두 남녀의 정적인 대화가 묘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 후에 장면은 역동적으로 바뀌는데, 자동차의 끊임 없는 질주와 사고 등 무정부 상태를 연상케 하는 거리의 혼란이 이어진다.



고다르, <주말(Week End)>

 

 

 

 

그리고 정말, 뒤로 가면 과격한 젊은이들의 집단(흡사 해방군?), 이들의 카니발적인 게릴라 행동들을 지켜볼 수 있다.    이렇게 연속적이지 않은 이야기 안에 끼어드는 감독의 목소리 -많은 영화 제목들(가령 전함포테킨을 암호로 사용한다든지)과 모르간의 인류학이나 엥겔스 등의 혁명 이론들, 그리고 알제리 전투에 대한 프랑스(유럽)의 위선을 풍자하는 대사 등이 즐비하다.

그리고 다소 충격적인 영상-돼지 멱따는 장면은 짧지만, 마치 <지옥의 묵시록>에서 소를 죽이는 장면처럼, 보고 나서도 계속 모호함을 띤 불쾌감으로 남을 거 같다.



고다르, <주말(Week End)>

 이 장면은 사람들이 숲으로 소풍을 와서 보디 페인팅도 하며 노는 장면이 아니다. 차마 말 하기가 그렇다. 아 짓궂은 고다르..

 

 

고다르는 이 시기에 정말 밖으로 분출하고 싶은 것이 많았었나 보다. 이런 기세를 몰아, '68혁명' 이후에는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만들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통해 정치 투쟁을 벌인다.

그럼 끝으로, 이탈리아 감독 베르톨루치와 얽힌 일화를 하나 옮겨본다. 베르톨루치도 초기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작을 만들었는데, 1970년에 파리에서 <순응주의자> 첫 상영이 끝나고 고다르를 만났다고 한다. 고다르는 아무말도 없이 그에게 종이 한 장을 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종이에는 메모가 적힌 것이 아니였다. 그대신 모택동의 초상화가 엄중하게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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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단히 두 권을 보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루이 페르디낭 셀린(셀린느)를 자기 이론 전개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룬다. 그녀에게는 '아브젝시옹의 작가'인 셈인데, <공포의 권력>에서 자세히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는 작가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제임스 조이스와도 비슷한 기질이 있는 사람인가보다.

 어쨌든, 이 작가를 찾으려고 검색을 해보니 한 권이.. 딱 걸린다.

<밤 끝으로의 여행>, 이 책은 오래 전에 민희식 씨가 <밤의 끝까지 여행을>로 번역한 바 있다. 이분은 요새 불교방송에서 강의도 하시던데..

 

<하트의 역사>라는 책 제목에서 왜 '하트'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나뒀을까? 그냥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여기에 이 책이 지향하는 두 갈래의 잔잔한 흐름성이 있다. 즉 '심장의 역사'나 '마음의 역사'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그 둘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의적인 표현으로 '하트'로 그냥 둔 것이다. 그러고보니 부제가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로 되어 있다.

그냥 제목만 보고 스스로 단순하게 무슨 남녀의 사랑과 관련된 역사적인 이야기쯤으로 여기고 골랐다가는 "어 이게 아닌데.."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작은 귀뜸을 한 것이다.

하트(심장과 마음)에 대한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작가의 지식욕과 이러한 주제로 책을 쓰겠다는 열정이 느껴진다. 즉 이 책에도 작가의 하트가 깃들어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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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힌두교>와 <인류학>이 어떨지 궁금하다. <푸코>, <니체>, <아인슈타인>은 이와 비슷한 다른 책이 없다면 봐도 좋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짤막한 책에서 기대하지 않은 통찰의 시각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함부로 그냥 그런 책이거니 하는 판단도 조심스러움.

 

 

 

 

 

이 줄도 영양가가 높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냥 우리와 먼 고대의 철학자는 아니다. 최근에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 긍정적으로 다룰 만한 것들이 여러 분야에서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가능태'와 '목적'이 시스템 과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는 카프라의 <생명의 그물>에서 조금 맛을 볼 수 있다. <사드>는 라캉 때문에 요새 다시 가치가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들뢰즈도 <매저키즘>에서 사드를 다루고 있다.        <언어학>은 그냥 가벼운 입문을 원한다면, 이 책이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나도 곧 이 책은 볼 생각이다.

 

 

 

 

 

케인즈가 뉴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연금술에 관한 문서도 경매에서 고가로 구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에겐 '과학의 대명사'로 알려진 뉴턴에게도 이중적인 모습이 따라붙는다. 바로 신비주의의 그늘인데, 그래서 그가 고대과학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흡수했다는 설이 있다.     <불교>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책인데(워낙 개론서가 많으니까), 이 책의 저자가 (<탄트라로 가는 길>, <지혜의 비>로 유명한) 초감 트룽파의 문하였다고 하니, 왠지 심상치가 않다.       <의식>, 이 책도 <언어학>과 함께 한 번 보고싶은 책 중 하나다.

 

 

 

 

 

-하룻밤의 지식여행- 마무리..

하룻밤이라지만, 그냥 몇 시간에 후딱 읽을 책에서부터 곱씹으면서 최대한 텍스트 영양소를 흡수할만한 알짜베기 책도 포함되어 있다.  <진화론>은 이 시리즈에서 <진화심리학>도 쓴 달런 에번스의 책이다. 그의 이름은 <라깡 정신분석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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