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배우는데 정해진 나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있고, 망설여지는 나이가 있다. 서른 아홉에 피아노를 배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서른 아홉에 피아노를 시작했다면 무슨 일인지, 무엇 때문인지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최근에 나온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가 생각난다.










 






저자 서진은 부산대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캘리포니아를 유랑하던 중 소설을 쓰리라 결심한다. 2007년 세번째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힘들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2년간 캘리포니아에 거주했던 경험 이후로 잠들어 있던(?) 방랑벽이 살아났다. 결혼 전에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지, 결혼 후에는 하와이와 동남아시아, 로마 등지에서 두세 달씩 살고 있다. 2015년 봄부터 제주에서 문어를 잘 잡는 여자, 늙은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은 제주집을 비워두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다.

 


 

이상했다.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세상은 유유히 잘 돌아가고 있다니. 인생의 중대한 고비도 그러한데 내가 소설을 완성하든 말든 세상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나는 3년째 잡고 있던 소설을 실패라고 인정하고 집필을 중지했다. 오피스텔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억울하고, 아쉽고, 슬프고,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결말을 지었으니까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겠지. (25)

 


 

실패는 나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실패는 내 것이다. 세상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 실패를 알지 못 한다. 세상은 내 실패를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 실패가 나만의 것이라면, 그렇게 많이 낙심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렇게 많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실패는 나만의 것이고, 뼈아픈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물론 다시 시작할 무언가가 무엇일지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말이다.

 


화창한 오후다. 나만의 실패와 실랑이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실패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바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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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4-2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문장은 절창인데요!!♥^^

단발머리 2017-04-28 13:38   좋아요 0 | URL
히이잉~~~~ 감사해요 순오기님^^
저도 하트하트 뿅뿅을 순오기님께 날립니다.*^^*

해피북 2017-05-0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패가 나만의 것이라면 그렇게 많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실패는 나만의 것이고, 뼈아픈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

이 부분이 참 좋네요.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ㅎ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읽고 있어서인지 마음에 훅 들어왔어요~~잘 읽고 갑니다^~^

단발머리 2017-05-08 12: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해피북님이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고 그래서.... 더 즐겁네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 다음날 마셨구요.
저도 오늘은 따뜻하게 한 잔 해야겠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