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가 만나는 사람에 의해 구성된다.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결론이 환경 결정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환경 결정론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난 사람, 자신이 처해진 조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화된다. 이 문장조차 그렇다. 나는, 내가 읽은 문장 안에서 사고하고, 내가 읽은 문장을 가지고 그 사고를 조직해 나간다. 내 문장은 내가 읽은 문장 중에 내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장들이고, 그래서 여기 쓰인 문장은 내 문장임과 동시에 나를 규정하고 구성해 나간다. 이 문장들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바로 지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제일 매혹되는 부분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능력'해지는 지점이다. 영어 단어로는 'vulnerable'이 떠오른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또 자신의 정서적, 인지적, 정치적 결정에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마땅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나는 미루어 생각한다. 이른바, 콩깍지가 씌인 상태 혹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 자신의 안위와 기쁨과 행복을 전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그녀에게 의존하는 상태, 비정상적 환각, 일시적 공황 상태.
나는 그런 상태의 가장 완벽한 예시가 어머니의 돌봄 아래 있는 아기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아기는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완벽하게 엄마에게 의존한다. 자신의 의지로 엄마의 관심을 얻을 수 없고, 자신의 노력으로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아기의 생존은 엄마에게 달려있다. 아기에 대한 엄마의 영향력은 강력하고, 견고하고 거의 절대적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트가 주창했던 '생애 초기 경험'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론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고, 실제에서도 그렇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다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엄마가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큼이나 무력하고 연약한 아기, 신생아조차도 엄마를 만들어 간다고, 엄마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떤 엄마를 만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엄마가 어떤 아이를 만났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랑 아빠는 동갑이고, 중매결혼을 했다. 아빠로서는 그렇게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엄마로서는 좀 늦은 결혼이었고, 결혼 초반에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듯싶다. 아빠는 한창때의 미모를 많이 잃어버리셨지만, 70이 넘는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호감상이셔서, 식구들끼리는 '아빠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아빠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한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큰 외삼촌에게도 합격점을 받았던 아빠였다. 하지만, 정작 아빠와 짝꿍으로 맺어진 엄마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고 한다. 싫다, 싫다 하면서 결혼을 했고 알콩달콩 신혼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삐걱거렸다. 층층시하 형님들 밑의 서울 시집살이는 무척 고생스러웠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엄마는 계속 아팠다. '이혼'이라는 말이 흔하지 않던 시기여서 '사네 못 사네'라는 말이 돌고 돌아 시골 할아버지에게까지 전해져, 할아버지가 제일 총애하시던 셋째 아들과 셋째 며느리는 본가로 불려가고. 엄마는 그때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했는데, 그때 이후로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셨으니까, 남자 인생 3번 울음 중에 한 번을, 아빠는 그때 사용하셨나 보다. 그랬었다. 엄마는 아빠랑 사는 게 힘들었고, 아빠도 엄마랑 사는 게 힘들었다. 그러다 내가 태어났다.
늦은 나이에 이루어진 원하지 않던 결혼,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이라는 사람, 바로 옆집과 그 옆집 형님들의 고된 시월드 속에 살아가던 엄마에게, 내가 나타났다.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나를 돌보셨는데, 얼마나 닦이고, 씻기고, 입히고, 먹였는지 서울에 잠시 올라온 외할머니조차 감동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고, 계획한 바도 아니었지만, 엄마를 원하지 않던 삶, 불편하던 이 결혼 생활에 영원히 주저앉힌 사람이었다. 그 장본인이 바로 아기였던 '나'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그때, 그 시절의 엄마를 살린 사람이기도 했다. 나를 닦이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면서 엄마는 엄마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갔다. 이때 엄마에게 출산과 양육은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강제였고, 엄마는 그에 따라야만 했지만, 엄마는 그 일을 자신의 일로, 자신의 행복으로 만들어나갔다. 엄마의 경험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말했던 '제도로서의 모성'이라기보다는 '경험으로서의 모성'에 가까웠다고, 그 혜택을 온 세상에서 제일 많이 받았던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53쪽을 읽다가 이 글을 썼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어쩌면 나는 상처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른 이야기를 썼다. '아기'로서의 내 이야기는, '엄마'로서의 내 이야기보다 훨씬 더 쉽고, 훨씬 더 명랑하고, 훨씬 더 교훈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뤄둔다. 뭐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하드커버인 내 책의 쪽수를 일부러 밝혀둔다.
그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But as a teenager newly obsessed with my own search for a calling, I found it impossible to imagine a meaningful life without a career or at least as supplemental passion, a hobb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