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의 주장에서 옳은 점이 있다면, 여성 자체가 과정 중에 있는 용어라는 것, 즉 시작하거나 끝난다고 당연하게 말할 수 없는 구성 중에 있다는 것, 되어가는 중에 있다는 입장을 따른다는 점이다. … 젠더는 본질의 외관, 자연스러운 듯한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 오랫동안 응결되어온 매우 단단한 규제의 틀 안에서 반복된 몸의 양식화이자 반복된 일단의 행위이다. (『젠더 트러블』, 147쪽)

여성만이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남성 역시 그러하다. 인간은 구성 중에 있다. 언제나... 되어가는 중이다.

인간이 인간과 맺는 여러 관계 중에 가장 중요한 관계 중 하나는 당연히 엄마와의 관계이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가는, 아이에게 중요하고. 그리고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는 엄마에게 중요하다.











김현철은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의 첫 챕터의 제목을 이렇게 적었다. '인생 성취의 8할은 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한계, 그리고 국가의 역할'. 8할이나?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8할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는 나의 선천적 조건, 즉 '유전'을 결정짓는 혹은 결정지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후천적 조건, 환경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모만 그럴까. 부모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유유상종'이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을 마리아 포포바는 『진리의 발견』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도록 태어났고 우리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다. 우리라는 인물의 형태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 주조되며, 색이 부여된다. 우리의 감정이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리의 발견』, 94쪽)


인간은 그가 만나는 사람에 의해 구성된다.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결론이 환경 결정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환경 결정론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난 사람, 자신이 처해진 조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화된다. 이 문장조차 그렇다. 나는, 내가 읽은 문장 안에서 사고하고, 내가 읽은 문장을 가지고 그 사고를 조직해 나간다. 내 문장은 내가 읽은 문장 중에 내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장들이고, 그래서 여기 쓰인 문장은 내 문장임과 동시에 나를 규정하고 구성해 나간다. 이 문장들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바로 지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제일 매혹되는 부분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능력'해지는 지점이다. 영어 단어로는 'vulnerable'이 떠오른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또 자신의 정서적, 인지적, 정치적 결정에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마땅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나는 미루어 생각한다. 이른바, 콩깍지가 씌인 상태 혹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 자신의 안위와 기쁨과 행복을 전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그녀에게 의존하는 상태, 비정상적 환각, 일시적 공황 상태.

나는 그런 상태의 가장 완벽한 예시가 어머니의 돌봄 아래 있는 아기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아기는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완벽하게 엄마에게 의존한다. 자신의 의지로 엄마의 관심을 얻을 수 없고, 자신의 노력으로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아기의 생존은 엄마에게 달려있다. 아기에 대한 엄마의 영향력은 강력하고, 견고하고 거의 절대적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트가 주창했던 '생애 초기 경험'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론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고, 실제에서도 그렇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다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엄마가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큼이나 무력하고 연약한 아기, 신생아조차도 엄마를 만들어 간다고, 엄마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떤 엄마를 만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엄마가 어떤 아이를 만났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랑 아빠는 동갑이고, 중매결혼을 했다. 아빠로서는 그렇게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엄마로서는 좀 늦은 결혼이었고, 결혼 초반에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듯싶다. 아빠는 한창때의 미모를 많이 잃어버리셨지만, 70이 넘는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호감상이셔서, 식구들끼리는 '아빠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아빠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한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큰 외삼촌에게도 합격점을 받았던 아빠였다. 하지만, 정작 아빠와 짝꿍으로 맺어진 엄마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고 한다. 싫다, 싫다 하면서 결혼을 했고 알콩달콩 신혼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삐걱거렸다. 층층시하 형님들 밑의 서울 시집살이는 무척 고생스러웠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엄마는 계속 아팠다. '이혼'이라는 말이 흔하지 않던 시기여서 '사네 못 사네'라는 말이 돌고 돌아 시골 할아버지에게까지 전해져, 할아버지가 제일 총애하시던 셋째 아들과 셋째 며느리는 본가로 불려가고. 엄마는 그때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했는데, 그때 이후로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셨으니까, 남자 인생 3번 울음 중에 한 번을, 아빠는 그때 사용하셨나 보다. 그랬었다. 엄마는 아빠랑 사는 게 힘들었고, 아빠도 엄마랑 사는 게 힘들었다. 그러다 내가 태어났다.

늦은 나이에 이루어진 원하지 않던 결혼,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이라는 사람, 바로 옆집과 그 옆집 형님들의 고된 시월드 속에 살아가던 엄마에게, 내가 나타났다.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나를 돌보셨는데, 얼마나 닦이고, 씻기고, 입히고, 먹였는지 서울에 잠시 올라온 외할머니조차 감동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고, 계획한 바도 아니었지만, 엄마를 원하지 않던 삶, 불편하던 이 결혼 생활에 영원히 주저앉힌 사람이었다. 그 장본인이 바로 아기였던 '나'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그때, 그 시절의 엄마를 살린 사람이기도 했다. 나를 닦이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면서 엄마는 엄마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갔다. 이때 엄마에게 출산과 양육은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강제였고, 엄마는 그에 따라야만 했지만, 엄마는 그 일을 자신의 일로, 자신의 행복으로 만들어나갔다. 엄마의 경험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말했던 '제도로서의 모성'이라기보다는 '경험으로서의 모성'에 가까웠다고, 그 혜택을 온 세상에서 제일 많이 받았던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53쪽을 읽다가 이 글을 썼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어쩌면 나는 상처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른 이야기를 썼다. '아기'로서의 내 이야기는, '엄마'로서의 내 이야기보다 훨씬 더 쉽고, 훨씬 더 명랑하고, 훨씬 더 교훈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뤄둔다. 뭐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하드커버인 내 책의 쪽수를 일부러 밝혀둔다.

그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But as a teenager newly obsessed with my own search for a calling, I found it impossible to imagine a meaningful life without a career or at least as supplemental passion, a hob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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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1-16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단발머리 님. 저도 그런 아기였어요. 저희 부모님은 연애 결혼 하셨지만,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야 아빠가 많은 걸 속였다는 걸 알게 되셨고, 헤어지고 싶다, 헤어져야겠다, 라고 생각했을 때 뱃속에 제가 있었다고요. 제가 페미니즘을 만나고 고통스러웠던 지점이 아주 많았지만, 그중 가장 큰 부분이 엄마의 삶에 관한 것이었어요. 지금은 엄마의 삶을 내가 뭐라고 나빴다 좋았다 얘기할 수 있겠나, 생각하기는 하지만,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우리를 낳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엄마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훨씬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아빠로부터 날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거든요. 그 시간들이 너무 괴로웠어요. 엄마의 자유에 대해 정말 자주, 계속 생각합니다.

엄마란 뭘까요, 단발머리 님.
엄마란 도대체 뭘까요.

어제 여동생이 싱가폴에 왔거든요. 조카들이랑 영상통화하는데, 참 좋아보이더라고요. 여동생은 엄마를 가지기도 했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엄마이기도 하잖아요. 엄마를 가졌으면서 엄마이기도 한 삶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주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님이 이미 하고 계신 일이고요. 앞으로 남은 생 내내, 계속 누군가의 엄마일 거잖아요. 자식에게 계속 생각나는 사람, 의지되는 사람일 것이고요. 단단히 엮여있을테고요.

엄마에 대해 쓴 글들은 필연적으로 쓰여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러나 반칙같다고도 생각해요. 일단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정서를 얻고 시작하게 되잖아요. 미셸 자우너의 글을 읽기전에 이미, 이 글은 감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를 짐작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반칙 같은데, 그래서 또 읽어보게도 되고요.

돌체라떼 먹고싶네요. 저 여기 와서 단 거 엄청 먹어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인생 뭔지.....

단발머리 2026-01-16 19:05   좋아요 0 | URL
아... 어머님의 이야기에 마음이 뭉클하네요. 엄마는 아기를 낳고 그 삶이 완전히 달라지니깐요. 더 자유로워졌을 수 있죠. 다른 삶이 열렸을 수 있고요. 하지만 다락방님의 어머님은 좀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머님 삶은 주인공은 어머님이니깐요. 하지만, 저도 어머님의 자유에 대해서는 생각하게 되네요. 우리가 참 사랑하는 자유...

저는 이미 결혼을 했고, 지금도 결혼 생활 중에 있는 사람이라서요. 제가 생각하는 모성과 사랑, 애정과 돌봄이 이성애 가족의 틀 속에서 이해되고 상상된다는 점에 대해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은 자기합리화가 매우 자연스러운 존재라, 저 역시도 저의 선택, 저의 과거, 저의 결정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강할 테구요. 다만, 저는 단 한 번 뿐인 삶에서 나의 선택으로 이어진 만남의 소중함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내가 만난 사람, 나와 이어진 사람. 내 선택으로 이 세상에 왔지만, 내게 한없는 기쁨을 주는 그런 고마운 존재에 대해서요.

돌체라떼 참말로 맛있어요. 아껴 먹었는데도 ㅋㅋㅋㅋㅋ벌써 빈 통이 몇 개인 것입니까ㅋㅋㅋ 싱가폴 특유의 달콤한 음료 맘껏 마시는 시간 보내시길요. 여동생이랑 둘이 계신건가요? 아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잼나겠어요!

책읽는나무 2026-01-17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 나도 그런 아기였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엄마에게 아빠와 왜 이혼하지 않고 살았느냐고 물었던 적 있었거든요. 그때 엄마가 바로 너희들 삼형제 때문이었다고 나는 절대 내 아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죠. 그 말이 어린 시절엔 너무나 감동적이어 내가 정말 엄마에게 잘해야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었는데 내가 자라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 살아 보니 나도 역시 내 엄마의 분신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자긍심? 그런 맘도 있긴 하지만 한편으론 내 엄마에게 감옥을 만든 장본인이 나였던가? 그런 생각이 들면 좀 슬프기도 하더라구요.^^
지금 상황과 우리 부모님들의 상황이 참 많이 달라 부모님들은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산 세월이 많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현재 우리? 여성들이 내 어머니를 떠올려 반추하며 내 삶을 또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엄마라는 존재는 살아계셔도 돌아가셨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같은 책을 읽어도 단발 님의 해석은 늘 새롭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돌체라떼는 한동안 막내딸이 엄청 마셔대던 라떼였던지라 좀 웃음이 납니다.ㅋㅋㅋ
막내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일 년동안 먹는 타입이거든요. 그러다 다른 것에 꽂히면 또 그것만…ㅋㅋㅋ
그때 딸 때문에 돌체라떼 마셔보곤 저는 깜놀했던 기억이 나네요. 넘 맛있어서요.ㅋㅋㅋ

단발머리 2026-01-18 22:00   좋아요 1 | URL
아... 우리네 어머니들의 사연이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네요. 엄마를 묶어둔 사람은 정말 ‘우리‘였어요. 근데... 저는 글에도 썼지만, 그 때 제가 엄마를 묶어두기도 했지만 ‘살렸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엄마가 가끔 그 때 이야기를 하시면 그런 말씀을 하세요. 막 복잡하고 정신이 없을 때... ‘엄마, 엄마!‘ 저희 남매가 엄마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드셨다고요. 슬픈 생각이기는 하고 또 속상하기도 하죠. 그걸 부인할 수는 없는데, 또 그만큼 그 때 엄마의 그 선택이 중요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돌체라떼 정말 맛있어요. 저는 가끔 사먹기는 하는데, 친구가 박스로 보내줘서 쌓아두고 먹고 있습니다. 달콤한 그 맛을 보면 도대체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달콤한 나날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