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확장 과정에서 '집 안의 천사'는 가정의 지배자이자 이상적인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딸의 임무를 부여받는다. 흡사 천사와 같은 성정의 소유자라 여겨지는 '집안의 천사'는 역할이라기보다는 '존재만으로' 그 특징을 소유했다고 여겨진다.(119쪽)
'집안의 천사'와 관련해서는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4권이 나와 있다. 예전에 도서관 책으로 찍어두었던 사진이 반가워(공장 초기화 유경험자) 다시 올려둔다.
여기서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 보인다. 왜냐하면 -일반화해도 좋다면 ㅡ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손쉽게 관찰되지 않으며, 그녀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훨씬 덜 검토되고 검증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하루에서는 이렇다 하게 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요리한 음식은 먹어 없어졌고, 키워 놓은 자식들은 세상으로 나가 버렸다.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 소설가가 포착할 만한 두드러진 점은 무엇인가? 말하기 어렵다. 그녀의 삶은 극도로 곤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익명성을 지닌다. (『집 안의 천사 죽이기』,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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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구도에서 성은 젠더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종, 계급의 문제와 복합적인 방식으로 교차해 작동한다. 여성은 분명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그러한 불합리함을 수용하도록 강제되었지만, 영국의 백인 여성과 식민지의 유색인종 여성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본국의 백인 여성이 '집안의 천사'로 추앙받으며, '안전하게(?)' 남성에게 보호받을 것을 요청받는 것에 반해, 식민지의 여성은 백인 남성의 성적 환상을 시험하고, 성적 모험의 장으로서 인식되었다.
본국 백인 남성과 비백인 식민지 여성 사이의 성적 관계가 강압적인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오히려 비백인 여성들이 지칠 줄 모르고 남자를 밝힌다거나 혼전 순결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냄으로써, 비백인 여성에 대한 전방위적 성적 억압을 변명하려 했다.
<4. 서구 남성의 성적 열등감>은 크기에 대한 남성의 집착을 자세히 보여준다. 성의 과학화라는 현상과 여성 오르가슴의 발견(178쪽)으로 흑인 남성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해 버린 백인 남성은 불안에 휩싸인다. 백인 여성이 자신들보다 흑인 남성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걱정이 바로 그것이다. 불안의 근거는 크기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남성이 가진 매우 작은 성기가 그들의 '미성숙함'의 증거라 주장했던 과학자들은 흑인 남성의 엄청나게 큰 성기는 그들의 '동물성'의 증거라 주장했다. 하지만, '오르가슴'을 통해 여성이 남성의 성적 능력을 평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백인 남성들은 또 다른 이유를 찾아내어야만 했다. 작은 성기를 문제시했던 과학은 이제 지나치게 큰 성기를 문제시해야 했다. 그것은 백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도덕이 그 역할을 감당했다.
<엄청난 성적 능력을 가진> 흑인 남성과 성이라는 영역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그 구도에서 빠져나와 <도덕성>이라는 영역으로 스스로를 도피시켜 버린 것이다. 따라서 <성>은 드러내기보다는 은폐해야 할 것, 그리고 <도덕>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열등한 것이 되어버렸다. (185쪽)
도덕성으로 피신해 버렸음에도 흑인 남성의 엄청난 성적 능력에 대한 환상은 제국주의가 해체된 이후에도 백인 남성을 사로잡은 강력한 문화 전통이 되어 왔다.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크기다. 사이즈에 대한 집착이 그 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