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는 않고 이어만 가는 독서 릴레이.
금요일에 읽은 책은 『전쟁과 죄책』이다. 정희진쌤의 공부 매거진 8월호의 에피소드 <악의 일상성>에 참고도서로 등장하는 책인데, 내내 안 읽고 보관만 해두었다가 금요일 아침에 시작했다. 추석의 적당한 선택인가,를 1초간 생각했다.
노란색 띠지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악의 평범성'을 말하지 말라"라고 쓰여 있어서 "네, 알겠습니다. 말하지 않을게요!"하고 시작했는데 아침부터 시작된 '731부대의 생체 해부 실험'. 거북한 느낌이 강하지만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죄, 죄의 실행, 그리고 죄로서의 '인식'이 나의 궁금 포인트다.
퇴근하면서는 도서관에 들러 『왓 이즈 섹스』를 대출해 왔다.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 에드워드는 사람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음으로써, 그 생각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까지도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 듣게 된 벨라가 그게 말이 되냐고 말한다. 레스토랑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에드워드가 말한다. "저 사람, 섹스. 저 뒤에, 섹스. 저 사람, 돈. 저 사람, 섹스. 그리고 저 사람... 고양이." 이게 정확한 비율은 아닌 거 같은데, 아무튼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는 가장 주요한 생각이 '섹스'임을 그 책의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라깡을 읽는 일이 필요할 듯한데, 역시나 첫 문장이 라깡의 문장이다. "지금 저는 섹스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섹스를 할 떄와 똑같은 만족을 느낄 수 있지요."(7쪽) 재미를 예상했으나 살짝 훑어본 바에 따르면 내가 예상한 재미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예상한 재미는 도대체 어떤 재미인가.
그리고 밤에는 철학. 생각보다 잘 읽히고 그림에도 무리가 없어서 페이지가 잘도 넘어가는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권을 읽는다. 밀리의 서재로 읽으면, 그러니깐 전자책으로 읽으면 더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현재까지는 막힘없이 쭉쭉 잘도 나간다.
아침에는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기다리던 손님. 바로 그분. 루시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김치냉장고 위에 책 두고, 사은품 두고 이렇게 사진 찍는 사람,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리,라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워하면서, 그러나 어쩔 수 없다,의 심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 놓고, 책을 쌓아놓고. 토요일에는 종일 여기저기 시장을 돌아다녔다. 선물 드릴 과일도 구경하고(배보다 사과가 비싼 편), 고기도 좀 봐두고. 다른 분들은 새우에, 생선에, 갈비에, 송편에 이것저것 많이들 사시는 것 같던데, 나는 찹쌀 도너츠랑 닭강정 사가지고 왔다. 점심으로는 냉면을 먹었다. '올해의 첫 냉면'이자 명태회냉면이자 나름 유명한 동네맛집 냉면.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우 더웠고, 올해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가 적용되는 해이구나 싶어,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릴레이 이어갈 생각은 안 하고, 신나게 노래만 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