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듣는 책은 <Lucy by the Sea>이다. 크레딧이 모였는데 딱히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다시 읽을 책으로 사자, 하는 마음에 샀다. 운전할 때만 잠깐씩 듣는데 참 좋다. 내용도 평이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시제는 좀 까다로운 편) 마음 편히 듣고 있는데, 읽어주시는 성우 분이 과하지 않게 읽어주셔서 더 편안하다.


 




전작<Oh! William!>에서의 윌리엄과 이 책 속의 윌리엄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Lucy by the sea>를 읽고 윌리엄과 화해했다. 그를 다시 받아주기로, 그를 안아주기로 했다. 루시의 어떠함을 보충해 주는 그를 알게 되었고, 이제 루시도 그의 어떠함을 안아줄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Oh, William!>을 꺼내 읽다가 재미있는 문단을 발견했다. 루시는 결혼 후 재혼했고, 윌리엄은 에스텔을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두 사람은 가끔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하는데, 그날, 윌리엄은 루시에게 전화해서는 크리스마스 때 에스텔에게 값비싼 꽃병을 선물했고, 에스텔에게서 조상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회원권을 선물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렇게나 재미있다.

 

 

그가 그 선물에 실망했다는 것을 말투로 알 수 있었다. 윌리엄에게는 늘 선물이 중요한 의미였지만, 나는 한 번도 그걸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에스텔이 머리를 잘 썼네." 내가 말했다. "아이디어 정말 좋은데." 내가 말했다. "당신은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잖아, 윌리엄.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그는 그저 "그래. 그럴지도"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나를 지치게 만든 게 바로 윌리엄의 그런 모습이었다. 기품 있고 유쾌한 태도 이면에 존재하는 잘 토라지는 소년. 하지만 그러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가 더이상 내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안도였다. (<, 윌리엄!>, 49)

 

 

당연히 이 문단의 하이라이트는 이 문장이 되시겠다. But I did not care, he was no longer mine. 그는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사람의 투정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빠는 호감형이다.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이 아빠를 좋아하는데, 특별히 아빠가 그 사람들에게 유익할 만한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아빠를 좋아한다. 까다롭기로 하면 이 세상 누구도 안 부러울 시어머니가 상견례를 마치고 나서 아버지가 참 좋으시다고 하셨다. 친정 에어컨을 수리해 주셨던 분이 우리 집에도 잠깐 들르셨는데, 아빠가 너무 좋으시다는 이야기를, 일을 보시는 내내 계속하시는 거다. 기사님, 저희 아빠를 30분 만나셨잖아요. 우리 아빠를 어떻게 아시죠? 그분이 제 아빠라니깐요.

 


아빠는 호감형이고,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를 별로라고 하신다. 사고 방식, 문화 양식, 행동 방식이 안 맞는다고 하신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젊은 시절의 신나는(?) 부부싸움 올나이트 시절은 물론이고, 심지어 첫인상부터 안 좋았다 하시니, 이 결혼의 신비를, 나는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전혀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아무튼 엄마는 아빠가 마음에 안 들고, 아빠도 엄마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신다. 이런 엄마, 아빠를 별로라 하시는 엄마가 아빠의 생활 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신다. 아빠의 건강과 행복한 노년은 자식으로서는 너무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엄마랑 단둘이 생활하시니 엄마의 삶에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겠지만, 엄마의 걱정은 그 정도를 넘어선다. 물론 아빠의 생활 습관이 건강을 해치기에 딱 알맞은 것은 사실이고, 건강 관리가 인생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인 엄마 같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적지 않겠지만, 요는. 엄마의 걱정은 진지하다는 거다.

 


엄마는, 진지하게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고, 듣는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든 고농도의 잔소리 폭격으로 아빠를 지치게 한다. 왜 그럴까. 왜 엄마는 좋아하지도 않는아빠의 건강을 이다지도 걱정하시는 걸까.


 

 

루시의 말에 답이 있다. 아빠는 엄마꺼니까. 엄마의 관리하에 있으니까. 엄마의 관할 아래 있으니까. 아빠의 일은 엄마의 일이고, 엄마는 거리 조절에 자주 실패하시니까. 왜냐하면, 아빠는 엄마꺼니깐. 좋아하지 않지만, 내 꺼니깐. 칠순의 엄마에게 이혼을 권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혼자만 알고 있기로 한다.

 

 


윌리엄은 루시꺼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루시꺼다.

엄마는 모르시는 것 같던데, 아빠는 엄마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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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22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언젠가부터 아빠를 미워하고 계시거든요. 여러가지 이유로요. 이건 다소 진지한 버젼이죠. 물론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지금도 끊임없이 엄마는 아빠한테 잔소리를 하시고 아빠는 듣다가 가끔 버럭 하십니다. 그 잔소리는 식단에 관한 것이고, 아빠는 심근경색에, 신장이 안좋아 식사 조절을 하셔야 하는게 맞아요. 그런데 조절하라고 하면 그것은 아빠에게 잔소리가 되고 아빠는 화를 내고. 저는 옆에서 보다가 ‘엄마, 그냥 둬. 아빠가 뭘 드시든 말든. 말하는 엄마 스트레스고 듣는 아빠 스트레스고. 아빠는 아빠 책임이야. 죽고 사는 문제는 다 자기가 결정하는거야.˝ 라고 했답니다. 엄마도 이제 잔소리 안할거라고 하면서 또 잔소리를.. 저는 두분 다 이해가 안되는데, 오늘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아빠가 엄마꺼라서 그런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꺼 하기 싫지만, 그런데 엄마꺼라서.. 어쨌든 엄마꺼니까.....

단발머리 2024-01-22 09:16   좋아요 0 | URL
네, 그러니깐요. 엄마들의 잔소리는 건강에 관련된 거네요. 식단과 생활습관... 저희 엄마는 아빠 핸드폰 많이 하시는 것도 잔소리 엄청 하시거든요. 눈 나빠진다고요. 그렇다면.... 그런 면에서 보면....

엄마가 아빠를 더 좋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빠는 엄마한테 큰 관심이 없으세요. 아빠는 친구가 많으신데 엄마를 간절히 찾는 경우는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 안 계실때에요. 너희 엄마 어디 갔니? ㅋㅋㅋㅋㅋ아빠, 저도 몰라요 ㅋㅋㅋㅋㅋ전화를 안 받는다 ㅋㅋㅋㅋㅋ 다시 해보세욬ㅋㅋㅋㅋㅋ
엄마들의 잔소리는 무척 간절하잖아요. 저는 부담스럽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어지는 잔소리.
그 강도와 빈도와 농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