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이던가, 아니면 7월 하순. 더운 여름의 어느 토요일, 남편은 강박사 결혼식에 참석할 계획이라 했다. 가까운 친구들 몇몇만 초대하는 자리라 가족도 같이 오라는 초청에 아롱이도 따라 나섰다. 식이 끝난 후, 인사 나누는 자리에서 강박사가 제자 중 한 명을 jtbc기자라고 소개했더란다. 화면으로만 보던 방송국, 그것도 자주 시청하는 jtbc 기자라는 말에 아롱이는 호기심이 발동해 근처에 앉은 사람에게 전해준 명함을 보고는 건너 건너 굳이 “저도 하나 주세요!” 말을 전해서는 명함을 한 장 받아왔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고, 당연히 화면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명함에는 ‘박민규’라고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이 이 사람이다.
서초동의 집회가 대규모로 폭발한 게 9월 28일 제7차 촛불집회 때이다. 나는 그 때 현장에 있었는데, 이 화면은 집으로 돌아와 jtbc 다시보기를 하면서 보았던 장면이다. 올해의 포토제닉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동영상을 보면 더 스펙터클한데, "진실보도!" "진실보도!"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에 기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진실보도! 시민의 목소리가 생중계되었다.
아직도 탄핵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믿는 일부 사람들에게 손석희는 천하의 대역 죄인이겠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최순실=대통령’의 수식을 밝혀낸 손석희에게 ‘평생까방권’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며 서운한 마음이 없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보수적인 중앙일보파 세력들과 패기 넘치는 젊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하니 손석희로서도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생중계로 방송된 위의 포토제닉 화면을 보고 많이 침울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는 하는데, 손석희 개인기로 여기까지 일어선 jtbc가 과연 앞으로도 중립적이고 엄정한 언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MBC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서 새로 탄생하려 하는가. 9월 28일 현장에도 당직 기자 한 명 덜렁 보낸 어떤 언론사와 달리 이미 주중에 ‘드론 촬영’을 신청하는 등 시민들의 움직임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9월 28일 현장을 보고도 ‘서초동, 도로 사이에 두고 조국 찬반 집회’라고 기사를 뽑았던 정신 외출한 언론이 있는가 하면,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라고 말한 MBC도 있다. 전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오고 있는 중인가. 기대가 크다.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며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 가감없이 드러났다. 정확히는 야당과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다. 나는 누구든 조국을 싫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국을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만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민주당을 지지하시던 가까운 혈족께서 ‘조국이 싫다’ 하시어 ‘왜 싫으냐’고 물어보았다. ‘시끄러워서’ 싫다고 하셨다. 야당, 검찰, 언론의 합작이 거둔 놀라운 성과이다. 싫어할 수도 있겠다. 보통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 경우는 의견과 감정이 동시에 작동한다. 조국이 ‘부정한 방법’으로 딸의 ‘진학’을 도왔다는 점이 싫다고 하면 그건 의견이다. 보기만 해도 싫다면, 얼굴조차 꼴보기 싫다면 그건 감정이고,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설명이 불가하다. 감정의 경우라면 ‘그냥 싫어’라고 말하면 되지만, 싫어하는 이유 혹은 조국이 장관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주장하려면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 이러이러해서 싫다. 그래야 듣는 입장에서도 수긍할 수 있는 법이다.
조국 장관이 후보자로 예정되고 언론의 검증이 시작되고 여야 합의불발로 청문회가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은 대규모 특수부 검사를 동원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를 국정농단 때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던데, 일개 장관의 임명이 국정농단 수사만큼의 무게를 갖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건지 거꾸로 묻고 싶다.
요는 조국 장관에 대한 혐의를 갖고 있는 검찰과 이를 검증해야 할 언론이 한 몸이 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피의 사실을 슬쩍 흘리고, 이를 그대로 받아쓰는 거대한 담합이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데 있다. 언론의 주장은 무조건 옳은가. 검찰은 절대선인가. 최근 진보와 보수가 각각 10년과 9년씩 정권을 쟁탈해왔지만 검찰은 정권에 상관없이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는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이다. 중립을 자처하는 언론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지 못하고, 검찰의 하수가 되어 사실 확인과 취재를 등한시하고, 초등학교 1학년도 아니면서 ‘받아쓰기’에만 급급하다. 이러한 현실이 과연 정상적인가.
최고의 엘리트들 수 십명이, 이렇게 오랜 기간, 이정도 압수수색에, 이정도 관련자 소환에, 이정도 피의사실 유포를 해왔다면, 이제는 내놓아야 할 것이다. 검찰개혁이 싫어서, 조국이 미워서 그랬던 게 아니라면 수사 결과로서 말하면 될 일이다.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별건 수사 하지 말고, 조국이 직접 관련된 증거를 내놓으면 될 일이다. 언론은 잘 모르겠다. 떼로 몰려다니는 무식하다고 폄하하는 대중의 시청료와 구독료가 우스운 언론이, 스스로 자정 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좀 게으름뱅이라 무슨 일을 하든 좀 느리고, 미루고, 몰아서 하는 편인데, 어제부터는 급부지런쟁이다. 가을 긴 옷을 다림질해 놓았고, 건조기 속 빨래를 정리해 두었고, 빨래를 한 번 더 돌렸다. 재활용 쓰레기 버릴 때마다 이사오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은데, 오늘은 그것도 단숨에 처리해 놓았다. 저번주에 사용했던 초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저번주에는 엉덩이가 아팠으니 작은 돗자리를, 저번주에는 추웠으니 두터운 후드티를 꺼내놓는다. 내일의 출정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영적인 힘이라거나 혹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어떤 좋은 에너지가 존재한다면, 내일 촛불집회를 쾌활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내 에너지의 일부를, 홍콩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에 맞서고 있는 홍콩 시민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마스크를 쓰고 손에 손을 맞잡은 10대 소녀와 소년에게도. 나의 지지와 응원, 그리고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
홍콩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