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한다면, 스스로를 이런 식으로 평가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국민 모두가 그 뜻을 새롭게 발견한 단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했을 때의 바로 그 감정)이 든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는
『The Midnight Line』을 구매하기 전에 이미
『웨스트포인트 2005』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번역서의 제목을 알고 있다면 원서를 찾기 쉬울 테지만, 원서의 제목만
가지고서는 번역서의 제목을 알기 어려울터(알라딘 책소개를 통해서도 알 수 없는 정보), 리차일드 작품 목록을 이리저리 두어번 검색하다가 제목 간의 연관성이 적은 번역서의 존재를 알게 됐다. 번역본이 있구나. 가벼운 마음, 가벼운
옷차림, 가벼운 자세로 마음 편히 잭 리처와의 여행을 시작했으나. 그러나
78페이지, 나는 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지 확인했고, 그래서 176페이지, 나는
도서관에 상호대차를 신청했다. 시작은 『The Midnight
Line』, 마무리는 『웨스트포인트
2005』.
다년간의 헌병 생활로 다져진 리처의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 능력은 단문으로 뚝뚝 끊어지는 문장의 리듬과 잘 어울린다. 두 개의 단어, 두 번의 액션. 처음에는
좋지 않았지만 몇 권째 읽어가며 익숙해져버린 그의 액션 장면 중 바이커 무리와의 한 판이 기억에 남는다. 리처를
잡으러 온 일곱 명의 바이커들은 부채꼴로 퍼지며 반원형의 대열로 그를 압박해 들어오다가 잠깐 멈춘 상태다. 아직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들은 도망치지 않는 리처의 심정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리처를 마주 보고 서 있을 뿐이다.
리처는 기다렸다.
장은 식료품 꾸러미를 안고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걸
주방 카운터에 내려놓았을 것이다. 양념통을 늘어놓고 칼도 꺼내 들었을 것이다. 스토브의 전원을 켰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위한 저녁식사. 적막한 저녁. 오히려 편안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바이커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30쪽)
처지나 환경에 상관 없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참 놀랍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생각을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는 것. 가끔 표정을 통해 어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추측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각의 내용은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다. 리처는 어리숙한 동네 깡패 일곱명과의 결전을
앞두고 자신을 떠나간 여인을 생각한다. 그녀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혼자만의 저녁을 준비하고 있겠지. 어쩌면 그녀는 지금의 상태를 더 편안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몰라. 나와 함께 했던 시간, 나와 함께 했던 저녁 시간에
그녀는 혼자 무엇을 하고 있을까. 팔꿈치와 발끝으로 한 명, 또
한 명을 제압해 가면서도 리처의 생각은 멈춰지지 않는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로 지금.
자신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리처의 ‘사람을 찾습니다’ 프로젝트에 동행이 늘기 시작하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와이오밍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라파호 족, 배노크 족, 블랙피트 족등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들소떼와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그 지역이다. 이제 그들은 사라졌고, 나무와 숲, 바람과 대지만 남아있다. 대자연이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곳.
스케일의 차이를 실감한다. 집에서 인천공항까지가 54킬로미터다. 전후좌우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에 산다. 이름은 마트지만 실제는 동네슈퍼에 걸어서 3분, 편의점 2개 2분내 주파가능한 지역에 사는 시민으로서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대자연의 절경이 속속들이 펼쳐진다.
그가 골짜기 가장자리로 다가가서 풍경을 감상했다. 시야가 80킬로미터 이상 툭 트여 있었다. 콜로라도의 한 자락도 그 풍경
속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와이오밍이었다. 엷고
맑은 대기, 광대한 황갈색 평원, 짙푸른 침엽수림, 장대하게 우뚝 선 바위들, 실안개에 가린 봉우리들.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행성 위에 홀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를 볼 수도 없고, 누구도 날 찾아낼 수
없는 곳. 혼자 숨어 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 (350쪽)
사건을 해결하고, 악당을 혼내주고, 미스테리 투성이었던 죽음의 이유를 듣고, 과제 해결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가는 이 모든 과정의 끝에 꼭 ‘섹스’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섹스야말로 인간 동물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언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한 감정의 언어가 꼭 섹스로 번역될 필요는 없지 않나.
『The Midnight Line』으로 시작해서 『웨스트포인트 2005』로 마무리. 이 책과는 이렇게 안녕이다. 나는 잭 리처를 좋아하네. 허나 아쉽지는 않으니 신에게는 아직 『Past Tense』가
남아있사옵니다. 움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