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이 책을 읽고 있다. 1938년생 사노 요코의 책은 유쾌하다. 이 분 책을 펼치면 인생사 쩔쩔매던 커다란 문제들이 작아져 보이고 금방 다시 웃게 된다. 모두가 가난하기에 가난이 싫지 않고, 30년 전 추억은 오늘에도 미소 짓게 한다. 게다가 유머.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유머다.


앗짱에겐 장님인 할머니와 서른다섯 살 이후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앗짱 엄마가 고생한다는 걸 알았다.

서른다섯 살에 집에 틀어박힌 할아버지는 중국의 학자처럼 흰 수염을 길렀고 마을에서 제일가는 지식인으로 통했다. 앗짱 집의 하얀 창고를 서재로 개조하여 어설프게 묶은 책을 쌓아놓고 늘 공부만 했다. 앗짱은 숙제를 전부 할아버지한테 시켰다. (47)


나는 남자와 여자가 할 것 같은 행위를 하는 부분에서만 눈을 크게 뜨고 읽었다.

그런 책이 아니면 야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으니까.

<비계 덩어리>에 눈을 딱 붙이고 보는데 아버지가 책을 낚아채며 이런 책은 읽지 마!”라고 호통을 쳤다. 모파상이 야하다는 걸 알았을까? 다음 날 아버지가 도서관에서 세계문학전집의 제1, 루소의 <고백록>을 빌려왔다.

나는 읽자마자 기겁을 했다. 루소가 마차 안에서 묘령의 여인을 유혹한다. 아버지는 <고백록>을 읽지 않은 것이다. (54)


17년전, <초급 일본어> 교재를 하나 사서는 일찍 출근한 날이면 자리에 얌전히 앉아 히라가나를 외우곤 했다. 가타카나를 외우던 중, 문자들 사이의 심각한 유사성에 기겁해 일본어 배우기를 포기해 버렸다. 역시나 나다운 이른 포기였다. 나는 외국어로서 일본어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시내 대형서점에 나가면 이런 책을 하나씩 구입해 기념촬영을 한다.


 












사노 요코 때문에, 그녀의 문장 때문에 나를 괴롭혔던 가타카나를 다시 시작해야되나 생각해본다.

나름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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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몽사’라는 출판사가 만든 <세계 명화 100선>을 보면서 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그 책에 나오는 누드화가 걸작인 줄 몰랐어요. 그냥 ‘야한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ㅎㅎㅎ 그런데 그 책을 안 봤으면 서양미술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 거예요.

단발머리 2018-06-23 11:45   좋아요 0 | URL
계몽사,는 익숙한데 <세계 명화 100선>은 처음 듣네요. cyrus님의 서양 미술 입문사가 무척 특별하네요.
시작부터 고급스럽게 시작하셨어요^^

2018-06-23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3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