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8 - 바로크 문명과 미술 : 시선의 대축제, 막이 오르다 ㅣ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8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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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역사를 읽으며] 『난처한 미술이야기』 로마 바로크
― 위대한 미술과 건축 뒤에 가려진 권력, 노동, 그리고 길


『난처한 미술이야기』 8권의 첫 번째 무대는 로마다.

책을 펼칠 때만 해도 바로크 미술을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장 지나지 않아 미술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교황과 추기경이 나오고, 종교개혁과 가톨릭의 대응이 나오고, 성당과 광장, 도로와 수로가 이어졌다. 그림과 조각을 읽다 보니 어느새 도시와 권력의 역사를 읽고 있었다.

로마 바로크의 화려함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교황의 권력과 막대한 돈이 있었고, 예술가의 천재성이 있었으며, 그 뒤에는 돌을 나르고 벽돌을 쌓고 높은 비계에 올라가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화려함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번 로마 바로크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 그 질문을 하게 되었다.


1. 위대한 건축물 아래에서 사라진 사람들

회화와 조각에는 대개 작가의 이름이 남는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베르니니라고 하면 작품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거대한 건축물은 다르다.

설계자의 이름은 남지만 실제 건물을 만든 사람은 수백, 수천 명이다. 돌을 채석한 사람, 운반한 사람, 비계를 세운 사람, 돌을 다듬은 사람, 벽돌을 쌓은 사람의 이름은 대부분 사라졌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공사를 서두르던 식스토 5세 시기에는 수백 명의 노동자가 투입되었고 야간에는 횃불을 밝히며 작업했다고 한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좋은 노동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완성된 돔을 올려다보며 미켈란젤로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 높은 곳에서 횃불을 밝히고 일했던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위대한 건축에는 늘 위대한 건축가가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건축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과 문화유산을 존중한다는 것

앞서 『난처한 미술이야기』의 서문을 읽으면서 나는 ‘존중’이라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로마 바로크를 읽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우르바노 8세는 베르니니를 아끼고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교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판테온 현관의 고대 청동이 뜯겨 나갔고, 상당량은 산탄젤로 성의 대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로마에는 이런 조롱까지 생겼다.

“야만인이 하지 않은 일을 바르베리니가 했다.”

예술을 사랑한 사람이 과거의 문화유산까지 존중했다고 할 수 있을까.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에 이르면 더 심하다. 뛰어난 미술품을 알아보는 안목은 탁월했지만, 갖고 싶은 작품을 얻는 방법은 권력자의 그것이었다.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매장」은 페루자의 성당에 있던 제단화였지만 1608년 어느 밤 수도사들의 협조 아래 몰래 반출되어 로마로 옮겨졌고, 결국 시피오네 보르게세의 소유가 되었다.

화가 주세페 체사리가 불법 무기 소지 혐의를 받자 그의 소장품 105점이 압수되었고, 교황 바오로 5세는 그것들을 조카 시피오네에게 넘겼다. 그 가운데에는 카라바조의 초기작도 들어 있었다.

도메니키노의 경우는 더욱 기가 막힌다. 보르게세가 그의 「아르테미스의 사냥」을 탐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라 도메니키노가 넘기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작품을 강제로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화가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림이 탐나는데 화가가 안 준다고 감옥에 처넣은 것이다.

이쯤 되면 미술 사랑이라기보다 권력을 이용한 소유욕에 가깝다.

오늘날 보르게세 미술관에 가면 수많은 명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미술을 사랑하는 것과 미술을 존중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소유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 역시 같은 말이 아니다.


3.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로마의 십자가 아래 서기까지

로마 곳곳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했다.

로마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이집트에서 옮겨온 것들은 고대 로마에서 제국의 권력을 과시하는 상징이 되었다. 다시 수백 년이 흐른 뒤 교황들은 그것을 로마의 주요 광장과 성당 앞에 세우고 꼭대기에 십자가를 올렸다.

하나의 돌기둥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권력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집트의 종교적 상징에서 로마 제국의 권력과 전리품의 상징으로, 다시 교황권의 상징으로.

식스토 5세가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옮겨 세우는 과정도 놀랍다. 수백 명의 인력과 수십 마리의 말, 수많은 권양장치를 동원해야 했다.

누군가는 저것을 미술사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종교사로 볼 것이다.

나는 자꾸 공사부터 보였다.

저 무거운 돌을 어떻게 들었을까.
어떻게 운반했을까.
어떻게 세웠을까.

토목쟁이는 어쩔 수 없다.


4. 발로 뛴 개혁가, 카를로 보로메오

가톨릭교회 내부에서도 모든 사람이 권력과 예술에만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카를로 보로메오는 교구를 직접 돌아다니며 성당과 수도원을 살피고, 사제 교육을 정비하고, 교리교육을 확대했다. 책에 따르면 수백 개에 이르는 교리학교가 운영되었다.

그가 죽은 뒤 고향 아로나에는 높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다. 내부로 들어가 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동상이고, 훗날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바르톨디도 그 구조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거대한 동상도 흥미롭지만 나는 보로메오의 ‘발로 뛰는 개혁’ 쪽에 더 눈이 갔다.

교회가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거대한 성당을 짓던 시대에 직접 현장을 돌아다닌 성직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5. 식스토 5세가 한 일은 성당만이 아니었다

식스토 5세 역시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권력을 과시했고 로마를 가톨릭의 중심도시로 재편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쿠아 펠리체 수로를 건설하고 도로망을 정비했다.

성당은 교황권의 얼굴을 만들었지만 수로는 시민에게 물을 공급했다.

여기서 나는 속으로 한마디 했다.

건축은 사치, 토목은 실용.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다. 그래도 수로와 도로가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바꾼다는 점에서는 토목쟁이로서 괜히 어깨가 올라간다.

특히 식스토 5세는 주요 성당과 순례지를 도로로 연결했다. 의도는 종교적이었다. 순례자가 움직이고 교황권의 공간이 서로 연결되어야 했다.

그런데 길이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교황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다니고, 수레가 다니고, 물건이 이동하고, 장사가 이루어진다.

권력을 위해 만든 길도 결국 시민이 이용한다.


6. 길을 생각하다 톤유쿡이 떠올랐다

도로 이야기를 읽다가 돌궐의 톤유쿡이 생각났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한다”는 말이 흔히 톤유쿡의 말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문은 아니다. 다만 그가 돌궐의 힘은 정착과 성곽이 아니라 이동성에 있다고 보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톤유쿡에게 이동은 군사력이었다.

식스토 5세에게 이동은 종교와 도시를 조직하는 힘이었다.

시대도 장소도 목적도 전혀 다르지만 둘 다 움직임이 힘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벽은 막지만 길은 연결한다.

건축물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종교도 결국 길이 있어야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7. 금서와 화형, 감시와 검열

그러나 가톨릭이 미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만 보고 이 시대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는 없다.

교회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예술 후원자 가운데 하나였지만, 동시에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그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권력이기도 했다.

금서목록이 있었고 종교재판이 있었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1600년 로마에서 화형당했고 갈릴레오는 1633년 재판을 받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 했다.

베로네세의 그림은 종교재판소의 심문을 받았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그려진 나체에는 훗날 천이 덧그려졌다.

예술을 키운 손과 예술의 경계를 그은 손이 같은 손이었다.

그래서 바로크의 찬란함만 보고 있으면 한쪽을 놓치게 된다.

그 화려함 뒤에는 금서와 화형, 감시와 검열도 있었다.


8. 천지창조의 암흑버전, 카라바조

카라바조의 그림을 처음 보면서 내가 떠올린 말은 이것이었다.

천지창조의 암흑버전.

화면 대부분이 어둡다. 그런데 결정적인 부분에 빛이 들어온다.

「성 마태오의 순교」에서는 살인이 벌어지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매장」에서는 죽은 그리스도의 육체에 빛이 떨어진다.

어둠의 배경, 빛의 사건.

한마디로 하면 『어둠 속의 사건』이다.

발자크의 소설 제목인데, 카라바조의 그림에도 제법 잘 어울린다.

그의 빛은 아름다운 장식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빛이 들어오는 순간 사건이 시작된다.


9. 카라바조, 그림은 천재, 삶은 파국

카라바조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성인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성인과 사도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이상적인 존재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름지고 지친 얼굴, 더러운 발, 거리에서 만날 법한 사람의 몸을 하고 있다.

성 마태오의 순교도 성스럽고 장엄한 순교라기보다 로마 뒷골목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처럼 보인다.

나는 이 점이 카라바조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성인을 신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얼굴 속에서 성스러움을 찾았다.

미술사적으로 왜 위대한지는 알겠다.

그러나 솔직히 그의 그림에 정이 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너무 어둡고 거칠다. 빛은 강렬하지만 그 빛이 비추는 세계가 편하지 않다.

감탄은 하지만 내 곁에 두고 보고 싶은 그림은 아니다.

게다가 인간 카라바조의 삶까지 알고 나면 더욱 그렇다.

싸움을 일삼았고 결국 사람까지 죽였다. 살인 이후 로마를 떠나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를 전전했고, 교황의 사면을 기대하며 로마로 돌아오던 길에 1610년 생을 마쳤다.

그림에서는 전에 없던 세계를 열었지만 그의 삶은 끝까지 거칠었다.

그림은 천재, 삶은 파국.

그리고 카라바조의 빛은 그가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루벤스가 그 빛을 받아들였고, 네덜란드의 카라바조 추종 화가들을 거쳐 렘브란트에게도 이어졌다.

다만 빛의 성격은 달라졌다.

카라바조의 빛이 사건을 드러내는 빛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사람의 얼굴과 내면을 비추는 빛에 가깝다.

카라바조, 어둠의 배경, 빛의 사건.
렘브란트, 어둠의 배경, 빛의 인간.


10. 카라치는 신화를 그려도 종교화처럼 보였다

안니발레 카라치는 카라바조와 거의 같은 시대에 로마에서 활동했지만 방향은 전혀 달랐다.

카라바조가 거리의 현실을 화면 안으로 끌고 왔다면 카라치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전적 아름다움을 다시 구성했다.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인체와 구도를 연구했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파르네세 갤러리의 신화화를 보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로마 신들의 사랑 이야기인데도 꼭 종교화처럼 보인다.

소재는 신화인데 그림의 언어가 르네상스와 교회미술의 장엄한 전통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라치는 신화를 그려도 성당 천장처럼 보이고, 카라바조는 성인을 그려도 로마 뒷골목처럼 보인다.

두 화가의 차이가 이보다 선명할 수 있을까.


11. 천장이 사라졌다

안드레아 포초의 천장화에 이르자 바로크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림을 그렸는데 천장이 없어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실제 건축의 기둥과 그림 속의 기둥이 이어지고, 그 위에 다시 건축이 솟아오르다가 천장이 열리며 하늘이 나타난다.

실제 건축, 그림 속 건축, 열린 하늘, 천상의 세계.

고개를 들고 보면 천장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정해진 위치에서 바라보면 원근법이 정확하게 맞아 실제 건축과 그림의 경계가 사라진다.

카라치가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면 포초는 천장 자체를 없애버렸다.

17세기의 가상현실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12. 신들의 사랑이라지만, 여성에게는 사랑이 아니었다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와 「아폴론과 다프네」는 기술만 보면 경이롭다.

대리석에 손가락이 들어가 살이 눌리는 것처럼 보이고, 다프네의 손끝에서는 잎이 돋아난다.

그런데 이야기를 알고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강제로 데려간다. 아폴론은 자신을 원하지 않는 다프네를 계속 쫓아간다. 다프네는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버리고 나무가 되어야 한다.

신들의 사랑이라고 부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보다 권력과 폭력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아폴론 같은 남성 신들의 이야기를 오늘날의 눈으로 읽으면 참 써글 놈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고대의 신들에게 오늘의 도덕을 그대로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오늘의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남성 신의 욕망이 사건을 시작하고, 여성은 납치되거나 도망치거나 변신해야 끝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베르니니의 조각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표현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다.


13. 베르니니, 대리석은 뜻대로 했지만 땅은 뜻대로 하지 못했다

베르니니는 분명 천재다.

「페르세포네의 납치」에서 대리석을 살처럼 만들었고, 「아폴론과 다프네」에서는 딱딱한 돌을 잎과 나뭇가지로 바꾸었다.

「성 테레사의 황홀」에서는 조각 하나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제단을 무대로 만들고, 조각을 배우처럼 배치하고, 코르나로 가문의 사람들을 극장의 관객처럼 양쪽 벽면에 앉혔다. 위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까지 이용해 하나의 장면을 만들었다.

조각, 건축, 빛, 관람자까지 모두 계산한 공간 연출이었다.

그런 베르니니에게도 뼈아픈 실패가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탑이다.

기존 종탑 기초는 선임 건축가 카를로 마데르노가 마련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 위에 베르니니가 자신이 설계한 거대한 종탑을 올리면서 발생했다.

기존 기초와 지반에 이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베르니니의 책임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그 위에 새로운 구조물을 올리기로 했다면 기존 기초가 추가 하중을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더구나 마데르노가 종탑용 기초를 만들던 단계에서 이미 파사드에 균열이 나타났다면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

17세기에 오늘날 같은 지반조사와 구조해석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기존 구조물의 상태와 새로 추가되는 하중을 살펴야 한다는 생각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탑과 성당 파사드에 균열이 나타나자 1645년 여러 건축가에게 원인과 대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미 베르니니와 결별해 독립 건축가가 된 보로미니도 여기에 참여해 종탑의 안정성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철거를 주장했다. 반면 보강을 통해 살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인노첸시오 10세는 1646년 종탑 철거를 결정했다.

베르니니에게는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기초 자체의 선행 문제도 있었지만, 그 기초 위에 자기 종탑을 올린 최종 설계자로서 베르니니의 책임 역시 크다.

그래서 토목쟁이인 나는 이 대목에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재 건축가도 기초를 우습게 보면 망한다.

조각에서는 대리석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 건축에서는 땅과 기초가 허용하는 한계를 잘못 판단했다.

대리석은 뜻대로 했지만 땅은 뜻대로 하지 못했다.


14. 좁은 땅에서 자기 건축을 만든 보로미니

보로미니는 베르니니와 전혀 다른 종류의 천재였다.

처음에는 베르니니 밑에서 일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발다키노 작업에서도 베르니니를 도왔다.

그러나 훗날에는 독립된 건축가가 되었다.

이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다. 보로미니가 베르니니의 조수였다는 이야기에 이어 종탑 문제에서 베르니니를 비판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자칫 종탑을 만들던 당시에도 보로미니가 베르니니의 조수였던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종탑 공사가 본격화되었을 때는 이미 둘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 점을 책에서 한 문장이라도 분명하게 구분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로미니의 진가는 산 카를리노 성당에서 더욱 잘 보인다.

그가 받은 땅은 넉넉하지 않았다. 작은 부지 안에 성당과 예배공간, 수도사들의 생활공간까지 집어넣어야 했다.

그런데 보로미니는 좁은 부지를 핑계로 삼지 않았다.

타원과 오목한 면, 볼록한 면을 이용해 공간을 짜고, 흰색과 구조 자체만으로 내부에 움직임을 만들었다.

넓은 공간을 받아 크게 짓는 것보다 이런 조건에서 필요한 기능을 모두 넣고 아름다움까지 갖추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다.

현실의 제약이 설계자의 능력을 드러낸 셈이다.

베르니니가 색과 조각과 빛을 끌어와 공간을 연출했다면, 보로미니는 선과 면, 구조 자체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이렇게 구분해 보고 싶다.

베르니니는 공간을 연출하는 천재이고,
보로미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천재였다.


15. 베르니니의 화려한 재기보다 보로미니 쪽에 더 마음이 갔다

두 사람의 경쟁에서 결국 더 화려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베르니니였다.

종탑 실패로 큰 위기를 맞았지만 코르나로 가문의 의뢰를 받아 「성 테레사의 황홀」을 만들며 자신의 능력을 다시 보여주었다.

나보나 광장의 콰트로 피우미 분수에서도 베르니니는 다시 교황의 마음을 얻었다.

보로미니는 이미 1647년 콰트로 피우미 분수 설계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베르니니가 별도로 만든 분수 모형을 본 교황은 결국 베르니니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 책에 실린 두 사람의 설계안과 모형을 비교해 보면 결과적으로 교황이 왜 베르니니의 안을 선택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보로미니의 안은 단순하고 정제되어 있는 반면, 베르니니의 모형은 오벨리스크 아래를 과감하게 비우고 거대한 바위와 조각을 배치해 훨씬 극적인 장면을 만든다.

그 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광장이라는 거대한 공간까지 만들어 로마 바로크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보로미니의 삶은 달랐다.

그 역시 독창적인 작품을 계속 남겼지만 후원 관계와 공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고 성격도 베르니니와 달랐다.

둘은 불과 약 100미터 거리를 두고 각자의 성당을 만들기도 했다.

베르니니의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와 보로미니의 산 카를리노.

가까운 거리에서 두 천재가 서로 전혀 다른 건축을 만들고 있었다.

보로미니는 1667년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의 죽음을 단순히 베르니니와의 경쟁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하나의 이유만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래도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베르니니의 화려한 재기보다 보로미니 쪽에 더 마음이 갔다.

그는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건축양식을 분명하게 보여준 또 하나의 천재였다.


16. 화려함만으로는 로마 바로크를 설명할 수 없다

로마 바로크를 처음 보면 화려하다.

성당은 거대하고, 천장은 열리고, 조각은 움직이는 것 같고, 분수와 광장은 도시 전체를 무대로 만든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로마 바로크는 내게 화려함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 뒤에는 교황권이 있었고, 종교개혁과 가톨릭의 대응이 있었으며, 문화유산을 자기 시대의 필요에 따라 사용한 권력이 있었다.

이름이 남지 않은 노동자들이 있었고, 금서와 종교재판도 있었다.

그리고 길과 수로가 있었다.

카라바조는 성인을 거리의 인간으로 그렸고, 카라치는 고전의 아름다움을 다시 구성했다. 포초는 천장을 없애버린 듯한 환상을 만들었고, 베르니니는 조각과 건축과 빛과 도시를 하나의 무대로 만들었다. 보로미니는 주어진 공간 안에서 자기만의 건축양식을 만들어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다.

천재도 실패했다.

예술을 사랑한 후원자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빼앗기도 했고, 화가를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찬란한 예술을 후원한 교회가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래서 로마 바로크는 내게 단순한 미술양식이 아니었다.

로마 바로크는 위대한 예술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교황의 권력과 종교, 도시를 만든 기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노동이 함께 들어 있는 시대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화려한 성당과 조각 사이에서 나는 자꾸 길을 보았다.

권력자가 만든 길이든 순례자를 위한 길이든, 길이 만들어지면 결국 사람이 걷는다.

로마 바로크를 읽으면서 미술을 보았지만, 그 미술을 가능하게 했던 도시와 사람도 함께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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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이야기 - 작가가 수년간 추적한 공포 실화
이정화 지음, 조승엽 그림 / 네오픽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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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보고서] 『오싹한 이야기』, 귀신 이야기는 짧을수록 밤이 길어진다


나는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실제로 겪었다며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마지막 한 장면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 그런 괴담 말이다. 그래서 《심야괴담회》 같은 프로그램도 좋아한다. 한 사연이 끝나면 잠깐 소름을 털어내고 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워떻게 됐댜?”

이 한마디 하면서 듣기에 괴담만 한 이야깃거리도 없다.

이정화의 『오싹한 이야기』가 딱 그런 책이었다.

책은 도시 괴담, 학교 괴담, 꿈 괴담, 외지 괴담, 해외 괴담으로 나뉜다. 「헬러윈 데이」, 「마라탕 중독」, 「지옥철」, 「해 진 뒤의 골동품 시장」, 「러닝 크루에서 홀로」, 「사이버 감옥」, 「거꾸로 매달린 아이」, 「연습실에서」, 「자각몽」, 「가위 당당」, 「5·16 도로」, 「폐사우나 체험」, 「저수지의 악몽」, 「야소보」, 「푸껫 채식주의자 축제」까지 열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제목만 죽 훑어봐도 내가 좋아하는 괴담 종합선물세트다.

이런 이야기의 좋은 점은 귀신이 특별한 장소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만날 수 있고, 운동을 하다가도, 학교에서도, 핼러윈 축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내가 오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곳이 내일 괴담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공동묘지는 안 가면 그만이지만 지하철은 내일도 타야 하고, 한강도 다시 가야 한다.

그래서 이런 귀신 이야기가 더 께름칙하다.


가장 먼저 내 발목을 잡은 건 「지옥철」이다.

주인공은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검은 후드 티를 입은 남자를 본다. 시계는 오후 3시 13분에 멈춰 있고, 열차 칸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등을 돌리고 선다. 순환선인데도 상왕십리역이 종점이라는 기괴한 방송이 나오고, 검은 후드 티의 남자는 주인공에게 죽음을 예고한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난다.

현실의 열차는 정상적으로 상왕십리역에 도착하지만 주인공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이 들린다. 뒤따라오던 열차가 상왕십리역에서 아직 출발하지 않은 앞 열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조금 전까지 주인공이 타고 있던 바로 그 열차의 마지막 칸이었다.

날짜가 마음에 걸렸다.

2014년 5월 2일.

찾아봤더니 정말 그날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 추돌사고가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이야기가 갑자기 더 오싹해졌다. 사고 뒤 찌그러진 열차 안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던 검은 후드 티의 남자. 그는 정말 주인공을 데리러 왔던 저승사자였을까.

사고는 실제로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괴담은 바로 이런 틈으로 들어온다.


「헬러윈 데이」의 붉은 원피스 여자도 소름을 돋게 한다.

주인공은 축제 한쪽 구석 벤치에서 혼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다. 그런데 불과 1초도 되지 않아 찍힌 다음 사진에서는 그 여자가 주인공의 어깨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있다.

곧 사람의 뼈를 에는 듯한 한기가 몰려오고, 여자는 주인공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며 “넌 내 거야”라고 외친다.

핼러윈은 원래 사람들이 귀신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날이다. 그러니 진짜 귀신 하나가 그 틈에 섞여 있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가짜 귀신 수백 명 사이에 진짜 하나가 들어가 있는 셈이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분장인지 아닌지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러닝 크루에서 홀로」 역시 일상의 공간인 한강을 공포의 장소로 바꾼다.

동트기 전 한강에서 크루들과 달리던 주인공은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의 발소리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짙은 물안개 속에서 어떤 여자가 달려오는데, 속도가 사람이 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결국 여자와 부딪히고 만다.

가까이에서 본 얼굴은 익사체처럼 검게 변해 있고, 두 눈은 짐승처럼 붉다. 그 여자는 주인공의 뒷덜미를 잡고 강가로 질질 끌고 가 한강으로 뛰어드는 행동을 반복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더 무서운 것은 장소가 한강이라는 점이다. 특별히 흉흉한 곳도 아니고, 밤이나 새벽이면 운동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물안개 짙게 낀 새벽 한강에서 저 멀리 누가 혼자 달려오고 있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빠른지는 굳이 재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


가장 기괴했던 이야기는 「마라탕 중독」이었다.

주인공은 배달 앱에서 늘 시켜 먹던 마라탕집이 계속 준비 중으로 뜨자 직접 식당을 찾아간다. 장소는 관악산 어귀, 상호도 제대로 없는 허름한 식당이다.

그런데 주방에서 본 것은 음식점에서 볼 만한 광경이 아니었다.

척추가 기괴하게 꺾이고 덩치가 큰 아저씨가 자신의 팔뚝을 중식도로 그어 붉은 피를 가마솥에 뚝뚝 떨어뜨리며 “다 마셔!”라고 외친다.

나중에는 강령술에 쓰인 부적의 기운이 마라탕을 통해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무당의 설명까지 나온다.

배달 음식이라는 것이 생각해 보면 참 묘한 구석…… 아니, 찝찝한 구석이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주방에서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현관 앞에 놓인 봉투를 받아 그냥 먹는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마라탕에 무엇이 들어갔느냐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께름칙해진다.

그래도 마라탕을 끊을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해 진 뒤의 골동품 시장」도 빼놓기 아깝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밤의 골동품 시장에서 갑자기 꽹과리 소리가 울린다. 농기구를 든 농사꾼부터 샹들리에를 타고 다니는 원숭이까지, 오래된 기물에 깃들어 있던 존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이 산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순간 수많은 시선이 한꺼번에 꽂힌다.

놋그릇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던 할머니 귀신과 막사발에서 튀어나온 진돗개 백구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온다는 대목도 재미있다.

골동품에는 이전 주인이 있다.

누군가 평생 아끼던 물건이었을 수도 있고, 죽는 순간까지 곁에 두었던 물건일 수도 있다. 그 물건에 기억만 남는지, 다른 무엇까지 따라붙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오래된 물건을 함부로 집 안에 들이지 말라는 이야기도 괜히 생긴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게 느껴진 이야기도 있었다.

「사이버 감옥」이다.

고등학생 다연은 죽은 학생의 계정으로부터 계속 메시지와 알림을 받는다. 다른 계정은 무음으로 돌릴 수 있는데 유독 그 아이의 계정만 무음 설정이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라는 물건은 늘 손에 들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니 도망갈 곳도 없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죽은 학생을 괴롭혔던 아이들이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연도 바로 그 5인방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죽은 아이가 자신을 찾아오자 다연이 내뱉는 말들이 섬뜩하다.

“네가 알아서 죽은 거잖아.”
“다른 애들도 괴롭혔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나는 이 말이 이 책에 나오는 웬만한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다연은 자신이 괴롭히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도 괴롭혔지만 다른 아이들도 함께했다는 데 기대어 자기 몫의 책임을 어떻게든 줄이려 한다. 결국 피해자의 죽음마저 “네가 알아서 한 일”이라며 피해자에게 돌린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다른 애들이 더 심했잖아.’
‘설마 그것 때문에 죽었겠어.’

다연까지 포함한 5인방 모두가 한 아이를 괴롭혔으면서, 막상 책임을 물으면 각자는 자기보다 더 나쁜 누군가를 찾아 뒤로 숨는다.

여럿이 함께 저지른 폭력이 어느 순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죽은 학생의 계정이 끊임없이 다연을 따라다니는 설정도 잘 어울린다. 학교에서 끝나지 않고 SNS와 메신저를 통해 피해자를 집까지 따라갔던 괴롭힘을, 이번에는 죽은 피해자가 같은 방법으로 가해자에게 돌려준다.

귀신이 휴대전화 속에서 복수한다는 설정이 무섭지는 않고 통쾌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말 오싹했던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돌아보기 전에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부터 묻는 마음.

어쩌면 귀신보다 그게 더 무섭다.


그리고 「5·16 도로」에서는 귀신 이야기를 읽다가 토목쟁이 버릇이 발동했다.

친구 둘과 제주 여행 중 안개 낀 산길을 지나던 화자는 신체가 훼손된 수많은 귀신들을 본다. 숙소로 돌아와 찾아보니 자신이 지나온 곳은 5·16도로, 지금의 지방도 제1131호선이었다. 책에서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귀신 목격담이 전해지고, 과거 도로공사 과정에서 많은 인부가 희생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화자는 자신이 본 사람들이 그때 죽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귀신보다 먼저 도로가 궁금해졌다.

5·16도로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 만들어졌고, 왜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누가 이 길을 만들었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찾아보니 5·16도로라는 이름과 달리 길의 역사는 5·16보다 훨씬 오래됐다. 1930년대부터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횡단도로가 있었고, 해방 이후 한동안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다가 1950년대부터 복구됐다. 5·16 이후에는 한라산 횡단도로의 대대적인 확·포장공사가 추진됐다.

오늘날에는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을 넘어 서귀포로 내려가는 지방도 제1131호선이다. 성판악을 지나고 숲이 도로 위를 덮는 구간도 있으며, 급커브와 안개가 잦은 산악도로다. 실제로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반복돼 왔다.

밤에 안개까지 끼면 괴담 하나쯤 생겨날 만한 길이기는 하다.

그런데 책에 나온 “과거 도로를 깔 때부터 많은 인부들이 희생됐다”는 문장이 다시 마음에 걸렸다.

토목쟁이는 이런 데서 귀신보다 공사부터 본다.

정말 공사 중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누가 사업을 맡았고, 당시 제주에서 도로공사를 담당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1962년 제주도 산업개발국장 김한준이 사업을 총괄했다. 김한준은 북제주군수와 제주도 지방과장 등을 거친 행정관료였다. 실제 건설 실무 쪽에는 홍성림 건설과장이 있었다.

그러자 또 궁금해졌다.

홍성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확인되는 기록을 보면 홍성림은 당시 제주도 건설과장으로 5·16도로 공사 실무를 맡았고, 훗날 제주도 개발국장까지 지냈다. 도로와 건설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임은 확인되지만 정확한 직렬이 토목직이었는지, 토목공학을 전공했는지까지 보여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옛 제주지방국토관리청도 생각났다.

5·16도로 공사와 함께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이 나오기에 혹시 그것이 훗날 제주지방국토관리청으로 바뀐 조직인가 싶었다.

그것도 아니었다.

제주지방국토관리청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제주에 있던 제주축항사무소가 나오고, 국토건설단은 이와 별개의 조직이었다.

귀신 이야기 한 편 읽다가 도로의 역사와 옛 관청 조직까지 들여다본 셈이다.

토목쟁이가 귀신책을 읽으면 가끔 이렇게 된다.

다만 책에 나오는 ‘도로를 깔 때 많은 인부가 희생됐다’는 부분은 조금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5·16도로 공사에서 정확히 몇 명이 숨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식 사망자 명단이나 통계는 나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 화자가 본 신체가 훼손된 사람들이 도로공사 희생자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괴담의 영역에 남겨두는 편이 좋겠다.

귀신이 정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어도 그 귀신 이야기가 붙어 있는 길은 실제로 있고, 그 길의 역사를 찾아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괴담이 좋다.


물론 『오싹한 이야기』의 열다섯 편이 모두 똑같이 무서운 것은 아니다.

한 편을 읽고 “에이, 이건 좀 뻔헌디” 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바로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께.

나는 이런 옴니버스식 짧은 괴담을 아주 좋아한다. 하나의 거대한 공포를 몇백 쪽씩 끌고 가는 것보다 작은 공포를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방식이 좋다.

《심야괴담회》를 볼 때도 그렇다.

한 사연이 끝나면 무서웠던 장면을 잠깐 생각하다가도 금세 다음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뭔 일이여?”

그러면서 한 편씩 넘기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실소가 터지면서도 서늘한 것이 조금 남는다.

귀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승사자가 정말 검은 후드 티를 입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강령술로 끓인 마라탕이 정말 있는지, 한강 물안개 속에 억울한 익사체가 숨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안개 낀 5·16도로에서 누군가 정말 그것들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굳이 확인해 볼 필요는 없으니께.

다만 밤늦은 2호선에서 검은 후드 티를 입은 남자가 맞은편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본다면 다른 칸으로 옮길 것이고, 새벽 한강 물안개 속에서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누군가 달려온다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혼자 화장실 가는 게 쪼까 망설여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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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말고 다른 애가 무덕이 본 적 있어?"
"몰라."
"그럼 혹시 거꾸로 말고 바닥에 내려와서 무덕이랑 논 적 있어?"
"아니." - P-1

"수상장(樹上葬) 하던 나무 말이야. 옛날에 아이가 죽으면 그 시신을 짚으로 싸 가지고 나무에 매달아 놓는 풍습을 가진 마을이 있다 하더마는, 여가 거긴가 보네." - P-1

"아이고야,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다. 이거 덕달이 나무고만. 뭐더러 학교 터에 이런 걸 남겨 놔 가지고……. 쯧쯧."
"덕달이…… 나무요?" - P-1

그리고 얼마 후, 학교의 허가를 받았는지 그 나무 밑에서 동네가 떠들썩하도록 커다란 굿판이 열렸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 주는 천도제였다고 합니다. - P-1

제가 외로울까 봐 좋은 곳으로 간 무덕이가 친구를 보내 준 것일지도 모르죠. 홀로 남겨진 아이가 느끼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무덕이는 겪어 봤을 테니까요.

벌써 15년도 넘은 일이네요. 제가 나온 대학교는 경기도에 있는 한 예술 대학인데요. 저는 실용음악과였고 그 안에서도 기타 전공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귀신들 중에는 예술을 좋아하는 귀신이 꽤 많은가 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딱히 귀신이 나올 만한 장소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학교 음악실이나 미술실,
연극 연습실 같은 곳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가 종종 있더라고요.

산안개가 끼면서 공기도 차갑고 축축한 느낌마저 들었고요. 신입생 때여서 연습실의 밤 분위기를 잘 몰랐던 거죠. 하지만 이미 셔틀버스는 끊겼고 터미널까지 가는버스도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집에 갈 수도 없었어요.

"호, 제법인데...... 잼을 걸어 볼까."
뮤지션들끼리 모이면 재미있는 게, 마음만 맞으면 즉석에서 애드리브를 겨루는 잼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때의 저는 프로 세션들처럼 수준급의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학교에 들어와서 잼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어떻게든 잼을 걸어서 그 곡을 같이 연주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연주를 하면서도 느껴지는 건, 피아노가 나를 리드하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저의 솔로 연주에 맞춰 코드를 변주하면서 살짝살짝서브 멜로디까지 얹는 게 들리자 절로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이 자식, 뭐지? 쩐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각 방에는 정말 아무도 없는 거예요. 복도 끝 계단 근처까지 오게 된 저는 왠지 오싹해져서 다시 제 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어요.
방금 그 피아노 연주는 대체 누가 했단 말인가요.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진짜 너무 오싹해서 체온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성호(聖號)를 그으며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어요. 그러자 이어폰이삑삑 하더니 고장이 나 버리는 거예요. 너무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때부터 제 귀에는 피아노 연주만이 꽂히듯 들려왔어요. 근데 이게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뇌에 때려 박는 느낌이랄까.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는 거죠.
‘환청인가? 내가 미친 건가? 갑자기?‘

갑자기 방 안의 불이 꺼졌어요.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렸고, 그 사이에 제 눈은 점점 어둠에 익숙해졌어요. 그러자 보였습니다. 아니, 보고 말았어요. 어떤 여자의등을요. 그 여자는 다름 아닌 제 방 안의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이후로 다시는 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렇게 점점 연습에 소홀해졌고, 결국 저는 현재 음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그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밤새도록 그 귀신과 잼을 나눴다면 저는 음악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하고요. 물론 그 뒤로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죠.

자각몽이라고 아시나요? 맞아요, 루시드 드림. 그게 자각몽이에요. 정확한 뜻을 말하자면 내가 꿈을 꾸고 있다. 현재 내가 꿈속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꿈을 꾸는 현상을 말합니다.

자각몽이라고 아시나요? 맞아요, 루시드 드림. 그게 자각몽이에요. 정확한 뜻을 말하자면 내가 꿈을 꾸고 있다. 현재 내가 꿈속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꿈을 꾸는 현상을 말합니다.

자각몽을 어떻게꾸게 된 거냐, 글쎄요. 어떤 사람들은 연습을 통해서 자각몽을 꾸기도 한다는데 저는 어느 날 꿈에서 그냥 알게 됐어요. ‘아, 꿈속이구나‘ 하고 한번자각몽을 꾸기 시작하면 그 빈도는 점점 늘어납니다. 그런데 자각몽을 자주 꾸게 되면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일 년에 한 번, 태국의 푸껫에서는 음력 9월의 첫날부터 9일 동안 ‘낀쩨(ñ, 채식주의)‘라 불리는 채식주의자 축제가 열립니다.

9일간 흰옷을 입고 중국의 도교에서 비롯한 아홉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채식만을 하는 금욕 생활과 고행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행운을 비는 행사라고합니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고,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보거나 체험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는괴이한 사건들이기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일지는 오로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귀신의 존재를 믿느냐‘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귀신은 있다‘보다는 ‘사람 눈에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가 더 정확한 저의 입장입니다.

‘단지 재미있는 공포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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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니발레 카라치, 이아손과 메데이아 이야기, 1583~1584년, 팔라초 파바 그림 양옆에 세워진대리석 조각까지 모두 그림이다. 사람들이 올려다봤을 때 진짜 조각상처럼 느끼도록 시선의 각도에 맞춰 그렸다. - P156

원래 파르네세 가문은 파르마 지역을 지배하는 명문가였습니다. 이런 집안이 교황까지 배출하면서 더욱 막강해집니다.
파르네세 가문 출신인 바오로 3세가 교황에 오르자 가문 사람들은 권위에 어울리는 대저택을 로마 한복판에 짓기 시작합니다. 오른쪽의 지도와 같이 주변 땅을 사들여 저택 앞에 큰 광장을 만들고,
길도 팔라초 파르네세를 중심으로 직선으로 다시 만들어버린 거죠. 그 결과 새로운 도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 P158

팔라초 파르네세, 1517~1589년, 로마 
현재는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 P158

파르네세 가문의 문장(왼쪽)
 팔라초 파르네세 2층 중앙 발코니에는 여섯 송이의 백합이 박힌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 위로 바오로 3세를 기념하는 교황의 관이 올라가 있다.
티치아노, 교황 바오로 3세와 그의 손자들, 1545~1546년,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오른쪽)
 바오로 3세는 파르네세 가문이 배출한 교황이다. 바오로 3세를 중심으로 왼쪽엔 추기경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오른쪽엔 파르마 공작인 오타비오 파르네세가 있다. - P159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신의 본질이자 큰 덕목입니다. 신들의사랑을 다룬 이 그림에서 우리는 종교적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분히 이중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다가 정작 안에서는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축제를 즐긴 셈이니까요. 그러나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던 시기가 바로 안니발레가 살던 17세기였고, 그 모순을 엿볼 수 있는 곳을 파르네세 갤러리라고 생각하면어떨까요? - P168

두 화가는 거의 동시에 로마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니발레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계보를 이으면서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를 고전적 아름다움을 계승한 정통파 화가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즉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이상화된 표현을 중시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풀어냈던 겁니다. - P169

반면 카라바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든 주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 과정에서 로마의 하층민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아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카라바조를 사실주의자로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두 화가는 그리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안니발레는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대상을 연구하고 체계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반면 카라바조는 관찰한모델을 드로잉 없이 캔버스 위에 바로 그렸습니다. 이 때문에 카라바조의드로잉은 거의 전해지지 않습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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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가서 택시를 탈지 그냥 다음 열차를 타고 갈지 고민하며 승강장을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콰앙!"

찌그러진 열차 안에 검은 후드 티의 남자가 있는 거예요! 멀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만약에 제가 내리지 않고 그 열차에 계속 타고 있었다면...... 제가 그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가 됐을까요? 그 검은 후드 티의 남자는 아직도 저를 노리고 있을까요?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언제 어디서 검은 후드 티의 남자를 또 만나게 될지 몰라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좀 특이한 눈을 가지고 있어요.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저는 보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신내림 받을 정도는 아니었고요.

‘그래 뭐........ 대낮이고 사람도 많은데 별일 있겠어?‘
다행히 정말 별일은 없었어요.

그런데요. 아까 점심때와는 달리 가게 사장님들이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시더라고요. 화장실로 향하면서 보니 다들 가게 앞에 가림막을 치면서 영업을 마감하는 분위기였어요.

1달 전쯤에 제 의지로는 절대로 가지 않는 곳을 갈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네, 망했습니다. 스태프들 점심을 시장 안에 있는 2층 식당가에서 먹기로 했다는 거예요.

건물 바로 앞에 대형 골동품 시장인 ‘ㅇㅇ풍물시장‘이 있었거든요. 2층으로 된 엄청 큰 대형 시장인데 건물 안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 밖에도 골동품들이 막 쌓여 있었어요. 다른 촬영 스태프들은 신기하다고 밖에서 구경하고 그랬는데 저는 그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열일하는 척을 했죠.

제가 그냥 겁이 많은 것일 수도 있죠. 근데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것들을 아는 척했다가는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거든요.

폐건물 이런 곳은 안 보여도 무서우니까 당연히 안 가고요. 묘지나 장례식장, 박물관 그리고 골동품 파는 곳도 피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영(靈)들이 많이 모여 있을 법한 장소는 웬만하면 피하는 거죠. 못 본 척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떼로 모여 있으면 그중에서 절 알아보는 놈들이 있거든요. 특히 밤에는 절대로 안 갑니다.

재빨리 일을 마치고 나왔는데 그 몇 분 사이에 이미 점포들은 영업을 마감하고 사람이 싹 빠져서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낮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아까는 신기하기만 했던 골동품들이 왠지 을씨년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높고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 그걸 시작으로 풍물패 같은 국악기들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얼어 버렸어요. 왜냐고요? 사람이 다 빠진 시장 안에서 풍물패 소리가 왜 나겠어요. 어쩐지 낮에 너무 별일이 없더라니,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싶었습니다.

눈앞이 갑자기 도떼기시장처럼 변했거든요. 다만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우글거렸을 뿐이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공황 장애가 몰려와요.

근처에 전시돼 있던 옛날 농기구들 앞에서 세발괭이를 휘두르는 농사꾼부터, ‘응답하라 1984‘에 나올 것 같은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는 뽀글 파마 아주머니, 도자기에서 튀어나오는 호랑이, 고풍스러운 샹들리에를 그네처럼 타는 원숭이들, 전등을 켰다 껐다 하며 까르르 웃는 동자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일제 강점기 때복장의 청년에게 일본도를 꺼내든 순사가 달려와 서로 싸우는 모습, 고대 화석같이 생긴 돌에서 튀어나오는 중국인, 선글라스에 라이더 재킷 차림으로 시가를 물고 구경하는 외국인까지.

"쟤 사람이야?"
"사람이지?"
"뭐 땜시 여태 있는겨?"
"신참인가?"
지나가는 길마다 저를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 때문에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때"히익!"

순간 제가 가장 바란 건 뭐? 투명인간이 되는 거요.

"쟤 보인다!"
"보인다고?"
"보여? 보여?"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냅다 달렸습니다. 그러자 뒤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도 덩어리져 함께 뒤쫓아 왔습니다.
"왜 따라오는 건데!"
진짜 망했다 싶은 생각에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볼 겨를 없이 그냥 무조건 달렸습니다. 코너를 도는데 누군가 제 머리끄덩이를 잡아챘어요.
"아악!"

"백구야, 나온나."
그 말에 할머니 놋그릇 옆에 있던 막사발에서 하얀 진돗개가 튀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할머니를 쳐다보는 거예요.

돌아보니 아까 일본 순사와 싸우던 독립투사 청년이었어요. 몰려오는 존재들을 막아서며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더군요. 너무 고마웠지만 인사할 여유조차 없는 저는벌떡 일어나 다시 달렸어요.

"여기 숨겨 줄게. 들어와!"
꽃이 만발한 정원이 그려진 그림 액자 속에서 귀부인 같은 여자가 상체를 내밀고 팔을 뻗어 온 거였어요. 상냥하게 웃는 모습에 잠깐 망설이는 찰나, 귀부인의 손을 찰싹 때리는 뭔가가 보였습니다. 효자손이었어요.
"요망한 것이 어딜!"
낡은 놋그릇에 몸을 반쯤 담고 있는 할머니가 불호령을 내리자, 귀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귀신같이 변해서 악을 쓰는 거예요.

"내 거야! 내가 잡았어!"
"어딜 산 사람을 건드리노!"

"할머니, 제발 살려 주세요! 어디로 가야 돼요?"

재미있을 것 같나요? 그럼 해 진 뒤 골동품 시장에 직접 한번 가 보세요. 들어갈 수 있다면요. 다만 뭔가 보인다면 절대 보이는 티는 내지 마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저는 경고했어요.

서울의 한강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경치도 훌륭하고 달리기 코스도 좋고 휴식하기도 좋은 곳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동트기 전의 한강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소속감도 생기고 좋을 것 같아서 러닝 크루에 가입했습니다. 가입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네요.

철벅, 휘익, 첨벙, 철벅, 휘익, 첨벙.
반면 사라진 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크루 멤버들의 소리였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이의 숨소리, 발소리가 사라진 겁니다.

제가 선두에 서게 됐고, 뒤에서 오는 멤버들을 간간이 독려하며 달렸습니다.
"자자, 모두 힘들 내세요!"
삼사십 분쯤 달리다 보니 선두에 있는 저와의 간격이 꽤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멤버들끼리의 간격도 아마 비슷하게 벌어졌을 거예요.

우리 크루가 즐겨 찾는 장소는 다양한 코스가 있는 한강 공원입니다. 원래 저도 한강 코스를 좋아하는데,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스죠. 서울 어디서든뛸 수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그때, 뒤쪽으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어떤 여자가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그 여자만 보였다는 게 제일 먼저 소름 돋는 포인트지만,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흠칫해서 뒷걸음질 치게 되더군요.

이상 여자를 주시할 수도,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뛰기 시작하자마자 여자도 휘익 제 쪽으로 달려오는데 아니, 달려오는 건지 날아오는 건지 모르게 다가오는 게, 이건 사람의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소리는 점차 빨라졌고, 급기야 저를 향해 돌진한 여자와 몸을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저는 계속 달리고 있었는데, 달리는 동안 몇 번이나 저 소리를 들었다는 건 제 주변을 맴돌면서 강으로 뛰어드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어느새 물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습니다. 멤버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도 강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뒷덜미가 붙잡힌 채 강가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여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익사체처럼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고 양쪽 눈알은 짐승의 눈처럼 붉은색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분이었다면, 정말 몇 날 며칠 자살을 고민했던 분이라면, 그저 누군가의 관심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지만 지금이라도 이 말을 하고 싶네요. 당신을 그렇게 만든 누군가를 대신해서 제가 사과할 테니 이제 강에는 그만 들어가시라고, 차가운 한강에서 벗어나 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미스터리를 취재하던 도중, SNS상의 DM으로 믿을 수 없는 제보를 받고 난 후부터 시작된 현재 진행형 이야기이다. 제보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직접 겪은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모바일이나 SNS상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보면 모르세요? 예뻐서죠, 당연히. 보는 눈이 없으시구나! SNS에서도 존예 댓글 겁나 많이 받거든요! 제 얼굴이 증거잖아요. 작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 추종자가 좀 많아요. 알지도 못하는 남자애들한테서 DM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오거든요. 보여 드려요?"

"그야 그 애를 직접 괴롭힌 애들이죠. 있어요, 4인방."
Q. 4인방이 누구인가요? 설마 다연 학생도 그 무리 중에 한 명인가요?
"전 아니에요. 우리 학교에 좀 노는 애들이에요. 그런 애들 있잖아요. 좀 극성인 친구들요."

"사실은요, 무음으로 설정이 안 되는 게 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무음 설정이 안 되는 상대가 있어요. 저도 이렇게 저렇게 열라 많이 시도해 봤거든요. 하, 근데이상하게 걔 아이디만은 깨톡도 DM도 무음 설정이 안 돼요. 어이없어 진짜."

Q. 알림을 무음으로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되는 거 누가 몰라요? 알죠, 아는데."

Q. 왜 연락을 할 수가 없나요?
"걔는 죽었으니까요."
Q. 죽은 사람이 연락을 한다고요? 어떤 아이였죠? 친한 친구였나요?
"친구 아니에요! 내가 걔랑 왜 친해요.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도 없고 흐리멍덩하게 생긴 애랑."

"더 미치겠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알림이 안 꺼진다는 거예요. 알림 울릴 때마다 제가 놀란댔잖아요. 맞아요, 스트레스 오져요. 진짜 피 말려 죽이겠다는 거지, 이거는!"

Q. 복수?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어 진짜."
"누군가가 죽은 애 아이디랑 이름으로 걔가 당한 걸 똑같이 저한테 하고 있으니까요. 깨톡 감옥이요. 걔가 당한 원인이 저라고 생각하나본데, 어이없

Q. 그 학생 모르게 뭔가 한 게 있나 보죠?
(다연이는 말문이 막힌 듯이 입을 다물었다. 곧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퍼뜩 뭔가 떠올랐는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질문을 퍼붓기시작했다.)

"네가 알아서 죽은 거잖아! 왜 나한테 그래? 다른 애들도 괴롭혔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저, 벌 받는 거 맞죠? 저도 그 애처럼 죽게 되는 걸까요?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해 줄까요?"
Q. 진심인가요?
"됐고, 제발 제 핸드폰 알림 좀 꺼 주세요. 진짜 미치겠어요."

난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민주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사람들 그건 4인방이 아닌 5인방이었다. 리더 다연이를 포함한 5인방. 그리고 이 미스터리한 저주는 5인방이 대가를 치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리라는 것을.

"나처럼 거꾸로 매달리는 거 좋아하는 친구."
"어머 그래? 잘됐네. 그럼 학교에서 둘이 같이 매달려 노는 거야?"
"응!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걔만 똑바로 보여."

어릴 때의 저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30대 후반이 된 지금과는 달리, 어릴 때는 좀 소심한 성격이어서 그랬는지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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