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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이야기 - 작가가 수년간 추적한 공포 실화
이정화 지음, 조승엽 그림 / 네오픽션 / 2024년 7월
평점 :
[독서감상보고서] 『오싹한 이야기』, 귀신 이야기는 짧을수록 밤이 길어진다
나는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군가 실제로 겪었다며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마지막 한 장면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 그런 괴담 말이다. 그래서 《심야괴담회》 같은 프로그램도 좋아한다. 한 사연이 끝나면 잠깐 소름을 털어내고 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워떻게 됐댜?”
이 한마디 하면서 듣기에 괴담만 한 이야깃거리도 없다.
이정화의 『오싹한 이야기』가 딱 그런 책이었다.
책은 도시 괴담, 학교 괴담, 꿈 괴담, 외지 괴담, 해외 괴담으로 나뉜다. 「헬러윈 데이」, 「마라탕 중독」, 「지옥철」, 「해 진 뒤의 골동품 시장」, 「러닝 크루에서 홀로」, 「사이버 감옥」, 「거꾸로 매달린 아이」, 「연습실에서」, 「자각몽」, 「가위 당당」, 「5·16 도로」, 「폐사우나 체험」, 「저수지의 악몽」, 「야소보」, 「푸껫 채식주의자 축제」까지 열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제목만 죽 훑어봐도 내가 좋아하는 괴담 종합선물세트다.
이런 이야기의 좋은 점은 귀신이 특별한 장소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만날 수 있고, 운동을 하다가도, 학교에서도, 핼러윈 축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내가 오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곳이 내일 괴담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공동묘지는 안 가면 그만이지만 지하철은 내일도 타야 하고, 한강도 다시 가야 한다.
그래서 이런 귀신 이야기가 더 께름칙하다.
가장 먼저 내 발목을 잡은 건 「지옥철」이다.
주인공은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검은 후드 티를 입은 남자를 본다. 시계는 오후 3시 13분에 멈춰 있고, 열차 칸의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등을 돌리고 선다. 순환선인데도 상왕십리역이 종점이라는 기괴한 방송이 나오고, 검은 후드 티의 남자는 주인공에게 죽음을 예고한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난다.
현실의 열차는 정상적으로 상왕십리역에 도착하지만 주인공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이 들린다. 뒤따라오던 열차가 상왕십리역에서 아직 출발하지 않은 앞 열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조금 전까지 주인공이 타고 있던 바로 그 열차의 마지막 칸이었다.
날짜가 마음에 걸렸다.
2014년 5월 2일.
찾아봤더니 정말 그날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 추돌사고가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이야기가 갑자기 더 오싹해졌다. 사고 뒤 찌그러진 열차 안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던 검은 후드 티의 남자. 그는 정말 주인공을 데리러 왔던 저승사자였을까.
사고는 실제로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괴담은 바로 이런 틈으로 들어온다.
「헬러윈 데이」의 붉은 원피스 여자도 소름을 돋게 한다.
주인공은 축제 한쪽 구석 벤치에서 혼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다. 그런데 불과 1초도 되지 않아 찍힌 다음 사진에서는 그 여자가 주인공의 어깨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있다.
곧 사람의 뼈를 에는 듯한 한기가 몰려오고, 여자는 주인공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며 “넌 내 거야”라고 외친다.
핼러윈은 원래 사람들이 귀신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날이다. 그러니 진짜 귀신 하나가 그 틈에 섞여 있어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가짜 귀신 수백 명 사이에 진짜 하나가 들어가 있는 셈이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분장인지 아닌지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러닝 크루에서 홀로」 역시 일상의 공간인 한강을 공포의 장소로 바꾼다.
동트기 전 한강에서 크루들과 달리던 주인공은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의 발소리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짙은 물안개 속에서 어떤 여자가 달려오는데, 속도가 사람이 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결국 여자와 부딪히고 만다.
가까이에서 본 얼굴은 익사체처럼 검게 변해 있고, 두 눈은 짐승처럼 붉다. 그 여자는 주인공의 뒷덜미를 잡고 강가로 질질 끌고 가 한강으로 뛰어드는 행동을 반복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더 무서운 것은 장소가 한강이라는 점이다. 특별히 흉흉한 곳도 아니고, 밤이나 새벽이면 운동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 물안개 짙게 낀 새벽 한강에서 저 멀리 누가 혼자 달려오고 있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빠른지는 굳이 재보지 않는 편이 좋겠다.
가장 기괴했던 이야기는 「마라탕 중독」이었다.
주인공은 배달 앱에서 늘 시켜 먹던 마라탕집이 계속 준비 중으로 뜨자 직접 식당을 찾아간다. 장소는 관악산 어귀, 상호도 제대로 없는 허름한 식당이다.
그런데 주방에서 본 것은 음식점에서 볼 만한 광경이 아니었다.
척추가 기괴하게 꺾이고 덩치가 큰 아저씨가 자신의 팔뚝을 중식도로 그어 붉은 피를 가마솥에 뚝뚝 떨어뜨리며 “다 마셔!”라고 외친다.
나중에는 강령술에 쓰인 부적의 기운이 마라탕을 통해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무당의 설명까지 나온다.
배달 음식이라는 것이 생각해 보면 참 묘한 구석…… 아니, 찝찝한 구석이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주방에서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현관 앞에 놓인 봉투를 받아 그냥 먹는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마라탕에 무엇이 들어갔느냐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께름칙해진다.
그래도 마라탕을 끊을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해 진 뒤의 골동품 시장」도 빼놓기 아깝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밤의 골동품 시장에서 갑자기 꽹과리 소리가 울린다. 농기구를 든 농사꾼부터 샹들리에를 타고 다니는 원숭이까지, 오래된 기물에 깃들어 있던 존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이 산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순간 수많은 시선이 한꺼번에 꽂힌다.
놋그릇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던 할머니 귀신과 막사발에서 튀어나온 진돗개 백구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온다는 대목도 재미있다.
골동품에는 이전 주인이 있다.
누군가 평생 아끼던 물건이었을 수도 있고, 죽는 순간까지 곁에 두었던 물건일 수도 있다. 그 물건에 기억만 남는지, 다른 무엇까지 따라붙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오래된 물건을 함부로 집 안에 들이지 말라는 이야기도 괜히 생긴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런데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게 느껴진 이야기도 있었다.
「사이버 감옥」이다.
고등학생 다연은 죽은 학생의 계정으로부터 계속 메시지와 알림을 받는다. 다른 계정은 무음으로 돌릴 수 있는데 유독 그 아이의 계정만 무음 설정이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라는 물건은 늘 손에 들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니 도망갈 곳도 없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죽은 학생을 괴롭혔던 아이들이 다섯 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연도 바로 그 5인방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죽은 아이가 자신을 찾아오자 다연이 내뱉는 말들이 섬뜩하다.
“네가 알아서 죽은 거잖아.”
“다른 애들도 괴롭혔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나는 이 말이 이 책에 나오는 웬만한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다연은 자신이 괴롭히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도 괴롭혔지만 다른 아이들도 함께했다는 데 기대어 자기 몫의 책임을 어떻게든 줄이려 한다. 결국 피해자의 죽음마저 “네가 알아서 한 일”이라며 피해자에게 돌린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다른 애들이 더 심했잖아.’
‘설마 그것 때문에 죽었겠어.’
다연까지 포함한 5인방 모두가 한 아이를 괴롭혔으면서, 막상 책임을 물으면 각자는 자기보다 더 나쁜 누군가를 찾아 뒤로 숨는다.
여럿이 함께 저지른 폭력이 어느 순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폭력이 되는 것이다.
죽은 학생의 계정이 끊임없이 다연을 따라다니는 설정도 잘 어울린다. 학교에서 끝나지 않고 SNS와 메신저를 통해 피해자를 집까지 따라갔던 괴롭힘을, 이번에는 죽은 피해자가 같은 방법으로 가해자에게 돌려준다.
귀신이 휴대전화 속에서 복수한다는 설정이 무섭지는 않고 통쾌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말 오싹했던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돌아보기 전에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부터 묻는 마음.
어쩌면 귀신보다 그게 더 무섭다.
그리고 「5·16 도로」에서는 귀신 이야기를 읽다가 토목쟁이 버릇이 발동했다.
친구 둘과 제주 여행 중 안개 낀 산길을 지나던 화자는 신체가 훼손된 수많은 귀신들을 본다. 숙소로 돌아와 찾아보니 자신이 지나온 곳은 5·16도로, 지금의 지방도 제1131호선이었다. 책에서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귀신 목격담이 전해지고, 과거 도로공사 과정에서 많은 인부가 희생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화자는 자신이 본 사람들이 그때 죽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기서 귀신보다 먼저 도로가 궁금해졌다.
5·16도로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언제 만들어졌고, 왜 그런 이름이 붙었으며, 누가 이 길을 만들었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찾아보니 5·16도로라는 이름과 달리 길의 역사는 5·16보다 훨씬 오래됐다. 1930년대부터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횡단도로가 있었고, 해방 이후 한동안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다가 1950년대부터 복구됐다. 5·16 이후에는 한라산 횡단도로의 대대적인 확·포장공사가 추진됐다.
오늘날에는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을 넘어 서귀포로 내려가는 지방도 제1131호선이다. 성판악을 지나고 숲이 도로 위를 덮는 구간도 있으며, 급커브와 안개가 잦은 산악도로다. 실제로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반복돼 왔다.
밤에 안개까지 끼면 괴담 하나쯤 생겨날 만한 길이기는 하다.
그런데 책에 나온 “과거 도로를 깔 때부터 많은 인부들이 희생됐다”는 문장이 다시 마음에 걸렸다.
토목쟁이는 이런 데서 귀신보다 공사부터 본다.
정말 공사 중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누가 사업을 맡았고, 당시 제주에서 도로공사를 담당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1962년 제주도 산업개발국장 김한준이 사업을 총괄했다. 김한준은 북제주군수와 제주도 지방과장 등을 거친 행정관료였다. 실제 건설 실무 쪽에는 홍성림 건설과장이 있었다.
그러자 또 궁금해졌다.
홍성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확인되는 기록을 보면 홍성림은 당시 제주도 건설과장으로 5·16도로 공사 실무를 맡았고, 훗날 제주도 개발국장까지 지냈다. 도로와 건설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임은 확인되지만 정확한 직렬이 토목직이었는지, 토목공학을 전공했는지까지 보여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옛 제주지방국토관리청도 생각났다.
5·16도로 공사와 함께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이 나오기에 혹시 그것이 훗날 제주지방국토관리청으로 바뀐 조직인가 싶었다.
그것도 아니었다.
제주지방국토관리청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제주에 있던 제주축항사무소가 나오고, 국토건설단은 이와 별개의 조직이었다.
귀신 이야기 한 편 읽다가 도로의 역사와 옛 관청 조직까지 들여다본 셈이다.
토목쟁이가 귀신책을 읽으면 가끔 이렇게 된다.
다만 책에 나오는 ‘도로를 깔 때 많은 인부가 희생됐다’는 부분은 조금 조심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5·16도로 공사에서 정확히 몇 명이 숨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식 사망자 명단이나 통계는 나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 화자가 본 신체가 훼손된 사람들이 도로공사 희생자였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괴담의 영역에 남겨두는 편이 좋겠다.
귀신이 정말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어도 그 귀신 이야기가 붙어 있는 길은 실제로 있고, 그 길의 역사를 찾아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괴담이 좋다.
물론 『오싹한 이야기』의 열다섯 편이 모두 똑같이 무서운 것은 아니다.
한 편을 읽고 “에이, 이건 좀 뻔헌디” 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바로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께.
나는 이런 옴니버스식 짧은 괴담을 아주 좋아한다. 하나의 거대한 공포를 몇백 쪽씩 끌고 가는 것보다 작은 공포를 하나씩 꺼내 보여주는 방식이 좋다.
《심야괴담회》를 볼 때도 그렇다.
한 사연이 끝나면 무서웠던 장면을 잠깐 생각하다가도 금세 다음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뭔 일이여?”
그러면서 한 편씩 넘기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실소가 터지면서도 서늘한 것이 조금 남는다.
귀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승사자가 정말 검은 후드 티를 입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강령술로 끓인 마라탕이 정말 있는지, 한강 물안개 속에 억울한 익사체가 숨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안개 낀 5·16도로에서 누군가 정말 그것들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굳이 확인해 볼 필요는 없으니께.
다만 밤늦은 2호선에서 검은 후드 티를 입은 남자가 맞은편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본다면 다른 칸으로 옮길 것이고, 새벽 한강 물안개 속에서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누군가 달려온다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혼자 화장실 가는 게 쪼까 망설여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