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가서 택시를 탈지 그냥 다음 열차를 타고 갈지 고민하며 승강장을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콰앙!"

찌그러진 열차 안에 검은 후드 티의 남자가 있는 거예요! 멀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만약에 제가 내리지 않고 그 열차에 계속 타고 있었다면...... 제가 그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가 됐을까요? 그 검은 후드 티의 남자는 아직도 저를 노리고 있을까요?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언제 어디서 검은 후드 티의 남자를 또 만나게 될지 몰라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좀 특이한 눈을 가지고 있어요.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저는 보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신내림 받을 정도는 아니었고요.

‘그래 뭐........ 대낮이고 사람도 많은데 별일 있겠어?‘
다행히 정말 별일은 없었어요.

그런데요. 아까 점심때와는 달리 가게 사장님들이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시더라고요. 화장실로 향하면서 보니 다들 가게 앞에 가림막을 치면서 영업을 마감하는 분위기였어요.

1달 전쯤에 제 의지로는 절대로 가지 않는 곳을 갈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네, 망했습니다. 스태프들 점심을 시장 안에 있는 2층 식당가에서 먹기로 했다는 거예요.

건물 바로 앞에 대형 골동품 시장인 ‘ㅇㅇ풍물시장‘이 있었거든요. 2층으로 된 엄청 큰 대형 시장인데 건물 안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 밖에도 골동품들이 막 쌓여 있었어요. 다른 촬영 스태프들은 신기하다고 밖에서 구경하고 그랬는데 저는 그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열일하는 척을 했죠.

제가 그냥 겁이 많은 것일 수도 있죠. 근데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것들을 아는 척했다가는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거든요.

폐건물 이런 곳은 안 보여도 무서우니까 당연히 안 가고요. 묘지나 장례식장, 박물관 그리고 골동품 파는 곳도 피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영(靈)들이 많이 모여 있을 법한 장소는 웬만하면 피하는 거죠. 못 본 척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떼로 모여 있으면 그중에서 절 알아보는 놈들이 있거든요. 특히 밤에는 절대로 안 갑니다.

재빨리 일을 마치고 나왔는데 그 몇 분 사이에 이미 점포들은 영업을 마감하고 사람이 싹 빠져서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낮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아까는 신기하기만 했던 골동품들이 왠지 을씨년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높고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 그걸 시작으로 풍물패 같은 국악기들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얼어 버렸어요. 왜냐고요? 사람이 다 빠진 시장 안에서 풍물패 소리가 왜 나겠어요. 어쩐지 낮에 너무 별일이 없더라니,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싶었습니다.

눈앞이 갑자기 도떼기시장처럼 변했거든요. 다만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우글거렸을 뿐이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공황 장애가 몰려와요.

근처에 전시돼 있던 옛날 농기구들 앞에서 세발괭이를 휘두르는 농사꾼부터, ‘응답하라 1984‘에 나올 것 같은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는 뽀글 파마 아주머니, 도자기에서 튀어나오는 호랑이, 고풍스러운 샹들리에를 그네처럼 타는 원숭이들, 전등을 켰다 껐다 하며 까르르 웃는 동자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일제 강점기 때복장의 청년에게 일본도를 꺼내든 순사가 달려와 서로 싸우는 모습, 고대 화석같이 생긴 돌에서 튀어나오는 중국인, 선글라스에 라이더 재킷 차림으로 시가를 물고 구경하는 외국인까지.

"쟤 사람이야?"
"사람이지?"
"뭐 땜시 여태 있는겨?"
"신참인가?"
지나가는 길마다 저를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 때문에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때"히익!"

순간 제가 가장 바란 건 뭐? 투명인간이 되는 거요.

"쟤 보인다!"
"보인다고?"
"보여? 보여?"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냅다 달렸습니다. 그러자 뒤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도 덩어리져 함께 뒤쫓아 왔습니다.
"왜 따라오는 건데!"
진짜 망했다 싶은 생각에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볼 겨를 없이 그냥 무조건 달렸습니다. 코너를 도는데 누군가 제 머리끄덩이를 잡아챘어요.
"아악!"

"백구야, 나온나."
그 말에 할머니 놋그릇 옆에 있던 막사발에서 하얀 진돗개가 튀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할머니를 쳐다보는 거예요.

돌아보니 아까 일본 순사와 싸우던 독립투사 청년이었어요. 몰려오는 존재들을 막아서며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더군요. 너무 고마웠지만 인사할 여유조차 없는 저는벌떡 일어나 다시 달렸어요.

"여기 숨겨 줄게. 들어와!"
꽃이 만발한 정원이 그려진 그림 액자 속에서 귀부인 같은 여자가 상체를 내밀고 팔을 뻗어 온 거였어요. 상냥하게 웃는 모습에 잠깐 망설이는 찰나, 귀부인의 손을 찰싹 때리는 뭔가가 보였습니다. 효자손이었어요.
"요망한 것이 어딜!"
낡은 놋그릇에 몸을 반쯤 담고 있는 할머니가 불호령을 내리자, 귀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귀신같이 변해서 악을 쓰는 거예요.

"내 거야! 내가 잡았어!"
"어딜 산 사람을 건드리노!"

"할머니, 제발 살려 주세요! 어디로 가야 돼요?"

재미있을 것 같나요? 그럼 해 진 뒤 골동품 시장에 직접 한번 가 보세요. 들어갈 수 있다면요. 다만 뭔가 보인다면 절대 보이는 티는 내지 마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저는 경고했어요.

서울의 한강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경치도 훌륭하고 달리기 코스도 좋고 휴식하기도 좋은 곳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동트기 전의 한강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소속감도 생기고 좋을 것 같아서 러닝 크루에 가입했습니다. 가입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네요.

철벅, 휘익, 첨벙, 철벅, 휘익, 첨벙.
반면 사라진 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크루 멤버들의 소리였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이의 숨소리, 발소리가 사라진 겁니다.

제가 선두에 서게 됐고, 뒤에서 오는 멤버들을 간간이 독려하며 달렸습니다.
"자자, 모두 힘들 내세요!"
삼사십 분쯤 달리다 보니 선두에 있는 저와의 간격이 꽤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멤버들끼리의 간격도 아마 비슷하게 벌어졌을 거예요.

우리 크루가 즐겨 찾는 장소는 다양한 코스가 있는 한강 공원입니다. 원래 저도 한강 코스를 좋아하는데,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스죠. 서울 어디서든뛸 수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그때, 뒤쪽으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어떤 여자가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그 여자만 보였다는 게 제일 먼저 소름 돋는 포인트지만,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흠칫해서 뒷걸음질 치게 되더군요.

이상 여자를 주시할 수도,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뛰기 시작하자마자 여자도 휘익 제 쪽으로 달려오는데 아니, 달려오는 건지 날아오는 건지 모르게 다가오는 게, 이건 사람의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소리는 점차 빨라졌고, 급기야 저를 향해 돌진한 여자와 몸을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저는 계속 달리고 있었는데, 달리는 동안 몇 번이나 저 소리를 들었다는 건 제 주변을 맴돌면서 강으로 뛰어드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어느새 물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습니다. 멤버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도 강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뒷덜미가 붙잡힌 채 강가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여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익사체처럼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고 양쪽 눈알은 짐승의 눈처럼 붉은색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분이었다면, 정말 몇 날 며칠 자살을 고민했던 분이라면, 그저 누군가의 관심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지만 지금이라도 이 말을 하고 싶네요. 당신을 그렇게 만든 누군가를 대신해서 제가 사과할 테니 이제 강에는 그만 들어가시라고, 차가운 한강에서 벗어나 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미스터리를 취재하던 도중, SNS상의 DM으로 믿을 수 없는 제보를 받고 난 후부터 시작된 현재 진행형 이야기이다. 제보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직접 겪은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모바일이나 SNS상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보면 모르세요? 예뻐서죠, 당연히. 보는 눈이 없으시구나! SNS에서도 존예 댓글 겁나 많이 받거든요! 제 얼굴이 증거잖아요. 작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 추종자가 좀 많아요. 알지도 못하는 남자애들한테서 DM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오거든요. 보여 드려요?"

"그야 그 애를 직접 괴롭힌 애들이죠. 있어요, 4인방."
Q. 4인방이 누구인가요? 설마 다연 학생도 그 무리 중에 한 명인가요?
"전 아니에요. 우리 학교에 좀 노는 애들이에요. 그런 애들 있잖아요. 좀 극성인 친구들요."

"사실은요, 무음으로 설정이 안 되는 게 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무음 설정이 안 되는 상대가 있어요. 저도 이렇게 저렇게 열라 많이 시도해 봤거든요. 하, 근데이상하게 걔 아이디만은 깨톡도 DM도 무음 설정이 안 돼요. 어이없어 진짜."

Q. 알림을 무음으로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되는 거 누가 몰라요? 알죠, 아는데."

Q. 왜 연락을 할 수가 없나요?
"걔는 죽었으니까요."
Q. 죽은 사람이 연락을 한다고요? 어떤 아이였죠? 친한 친구였나요?
"친구 아니에요! 내가 걔랑 왜 친해요.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도 없고 흐리멍덩하게 생긴 애랑."

"더 미치겠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알림이 안 꺼진다는 거예요. 알림 울릴 때마다 제가 놀란댔잖아요. 맞아요, 스트레스 오져요. 진짜 피 말려 죽이겠다는 거지, 이거는!"

Q. 복수?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어 진짜."
"누군가가 죽은 애 아이디랑 이름으로 걔가 당한 걸 똑같이 저한테 하고 있으니까요. 깨톡 감옥이요. 걔가 당한 원인이 저라고 생각하나본데, 어이없

Q. 그 학생 모르게 뭔가 한 게 있나 보죠?
(다연이는 말문이 막힌 듯이 입을 다물었다. 곧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퍼뜩 뭔가 떠올랐는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질문을 퍼붓기시작했다.)

"네가 알아서 죽은 거잖아! 왜 나한테 그래? 다른 애들도 괴롭혔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저, 벌 받는 거 맞죠? 저도 그 애처럼 죽게 되는 걸까요?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해 줄까요?"
Q. 진심인가요?
"됐고, 제발 제 핸드폰 알림 좀 꺼 주세요. 진짜 미치겠어요."

난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민주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사람들 그건 4인방이 아닌 5인방이었다. 리더 다연이를 포함한 5인방. 그리고 이 미스터리한 저주는 5인방이 대가를 치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리라는 것을.

"나처럼 거꾸로 매달리는 거 좋아하는 친구."
"어머 그래? 잘됐네. 그럼 학교에서 둘이 같이 매달려 노는 거야?"
"응!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걔만 똑바로 보여."

어릴 때의 저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30대 후반이 된 지금과는 달리, 어릴 때는 좀 소심한 성격이어서 그랬는지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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